저만치 누군가 손을 흔들었다. 만리타국에서 나를 아는 이가 있을 리 만무했다. 아니지 싶으면서도 걸음을 멈추고 서 있는 나를 향해 여자가 달려왔다. 챙에 얼굴이 반쯤 가려져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Is it me?”라고 묻자 고개를 끄덕였다. 고국을 떠나온 지 사십 년이라며 내 노트북에서 한글을 보았다고 했다. 오랜 이민 생활 때문이었을까. 여자의 목소리에 설렘이 묻어났다. 뜬금없는 만남에 들뜨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한 달을 계획하고 떠나온 여행이었다. 도착한 첫날 숙소 부근에 환하게 불을 밝힌 건물이 보였다. 도깨비불에 홀리듯 따라간 그곳은 토론토 플리전트리지 도서관이었다. 사람들의 외모와 언어가 다른 공간은 공기마저 달랐다. 그들 사이로 슬며시 섞여 알아보지도 못하는 꼬부랑글씨를 훑어가며 서가를 돌았다. 그러다 한 곳에서 눈이 번쩍 뜨였다. ‘한국도서코너’였다. 반가움으로 터져 나오는 탄성을 간신히 삼켰다. 이곳 도서관에 버젓이 자리를 잡은 이유가 한류 영향인지, 한인들이 많아서인지 알 수 없었다.
그곳에는 다양한 장르의 책이 있었다. 철지난 베스트셀러도 보이고 최근에 영화로 제작된 소설도 보였다. 손때 묻어 부풀어진 몸을 부려놓고 있는 도서들은 어떤 경로로 이곳까지 왔을까. 서가에 꽂힌 『한국이 싫어서』라는 소설 속 주인공처럼 무작정 건너온 것은 아닐 터였다. 여행의 힘은 멀리 보는 시야에 익숙해지는 것이라는데 어쩌면 내게도 그런 힘이 필요했던 걸까. 뜻하지 않은 만남이 이번 여행 최고의 선물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일정이 없는 날이면 노트북을 싸들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 충만한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는 것 같았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침묵을 즐길 수 있고, 아는 사람이 없으니 딴 데 눈을 돌리지 않아도 좋았다. 자판을 두들기거나 코너에 꽂힌 책을 뽑아 읽다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갔다. 책상 위에 놓인 내 노트북은 커서만 깜빡이다 잠이 들곤 했지만 혼자서 보내는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가 나타났다. 도서관과 붙어 있는 체육센터에서 운동을 마치고 나면 이곳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며칠째 나를 지켜보다 용기를 내 말을 걸었다며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그날 이후 여자가 싸온 도시락을 먹고 도서관 주변 공원을 몇 바퀴씩 거닐었다. 오래된 기억을 꺼내 말하는 여자의 말에 나는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정지된 독백이 반복될수록 나는 점점 이야기 밖으로 밀려났다. 여자의 고유한 시간 속에 나란 존재는 청자에 불과했다. 감정의 소모를 견디지 못할 때면 구석진 자리로 몸을 숨기곤 했다.
그곳에서 읽은 책 중 인상에 남는 것은 작가들의 문학에 대한 견해가 실린 산문집이었다.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작의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들의 창작론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내 수필집을 서가에 꽂아두고 싶던 욕심은 어느새 사라졌다. 그렇더라도 글쓰기는 덫이고 닻이며 감옥이자 해방이라는 어느 작가의 변이 깊은 위안으로 다가왔다. 절망과 기쁨의 경계를 넘나들다 저녁때가 되면 숲속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숙소로 돌아왔다.
떠나온 곳과 달리 이곳은 가을이 한창이었다. 구름을 삼켜버린 하늘은 광활하게 푸르고 색색의 단풍이 거리를 물들이고 있었다. 늦가을 날씨라기에는 챙겨간 두꺼운 옷이 무색할 정도로 포근했다. 겨울로 접어들기 직전 따뜻한 날이 계속되는 이 시기를 인디언 서머(Indian summer)라 한다던가. 북미지역의 인디언들은 겨울을 채비하기 좋은 이때를 신이 내려 주는 축복으로 여겼다고 한다. 다르게는 늙은 아낙네의 여름이라고도 부른다는데 나는 그 이름에 마음이 더 끌렸다. 이제 아이들은 다 자라 제 자리를 찾아갔고 오롯이 나로 돌아와 고요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지금의 나와 걸맞은 이름이었다.
나처럼 생애 가장 화창한 날을 맞고 있다는 여자는 어쩌면 낯선 땅에서 모국어가 그리워 나를 불러세웠는지 모른다. 그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하고 도망치기에만 바빴던 나는 준비해 간 수필집을 전하지 못하고 떠나왔다. 얼치기 작가의 미완의 원고처럼 마침표 없는 짧은 인연이 잔상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