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나란히 누웠다. 뻗은 손끝에 그의 몸이 닿고 고개를 돌리면 동굴처럼 커다란 콧구멍이 눈에 들어왔다. 놀라 몸을 뒤척이자 넘기려던 침이 목에 걸렸다. 그는 눈을 지그시 내리깔고 나를 바라보았다. 얼굴에 닿는 남자의 입김에 숨이 턱 막혔다. 천장을 향해 몸을 돌리고 눈을 감았다. 그가 내게 남자인 적이 있었던가. 나는 그에게 아직 이성이기나 할까.
농번기가 끝나서인지 물리치료실은 환자들로 가득했다. 무리하게 밭일을 하다 탈진한 나는 링거라도 맞아야 할 것 같아 병원을 찾았다. 여기저기서 노인들의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칸막이도 없는 공간에서 사람들의 움직임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비어 있는 곳은 내 옆자리뿐이었다. 좁은 침대를 나란히 붙여놓아 한 자리나 다름없는 그곳으로 불쑥 나타난 그가 웃옷을 벗고 누웠다. 아무리 깨복쟁이 친구라지만 침대 위에서 만날 일은 아니었다.
민망한 분위기를 깨며 간호사가 링거를 들고 나타났다. 먼저 맞고 있는 내 상태를 살피고는 뒤미처 온 그의 팔에 바늘을 꽂았다. 치료를 받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나란히 누운 우리에게 와 꽂혔다. 주사바늘을 찌를 때보다 더 따가웠다. 쉬지 않고 떨어지는 노란액체가 어지럼증을 부추겼다. 그도 민망해서였을까. 나가려던 간호사를 붙잡고는 그녀가 아내의 친구 딸이라고 내게 소개했다. 그러더니 목소리를 높여 읍내에서 실력이 최고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간호사는 별 대꾸 없이 사라졌다.
돌침대에서 몸을 지지고 있던 사람들은 재미난 구경거리라도 만난 듯 눈을 반짝였다. 두런거리는 소리마저 잠잠해졌다. 나는 덫에 걸린 짐승처럼 꼼짝없이 누워 시답잖은 말들을 지껄였다. 나의 귀향 살이 적응기며 가을걷이 이야기와 그가 전하는 동무들의 근황이 치료실 안에 생중계 되었다. 환자들은 아예 중앙에 있는 우리를 향해 몸을 틀었다. 그 바람에 얼굴도장까지 찍혔다. 좁은 바닥에서 몸을 사려야 할 사람은 외지에서 온 나보다 지역 유지인 그였다.
어릴 적 그는 무던히도 나를 쫓아다녔다. 우리 동네를 뻔질나게 드나들며 제 집 전방에서 가져온 풍선껌이나 사탕을 들이밀었다. 물질공세가 먹혀들지 않자 서로 좋아하는 사이라며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녔다. 그도 모자라 학교 화장실 벽에 둘이 뽀뽀했다는 낙서까지 해놓았다. 대놓고 화풀이도 못하고 냄새가 진동하는 화장실에서 눈물을 흘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가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으면 하는 바람은 나의 전학과 함께 끝이 났다.
그를 다시 만난 것은 각자 결혼을 한 후였다. 소문에 번창한 사업가가 되었다더니 얇실하던 얼굴에 살이 붙고 풍채도 당당했다. 혼잡한 읍내 터미널에서 그가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칠 뻔 했다. 악수를 했던 것도 같고 자신은 한 번도 고향을 떠난 적이 없다고 말했던가. 기껏 불러놓고 반색은커녕 처음 보는 사람처럼 데면데면하게 굴었다. 그에게 관심이 없다고 하면서도 심드렁한 반응이 씁쓸했다. 고향 근처에 집을 마련한 이후 북적대는 장바닥이나 시내 한복판에서 마주치는 일이 잦아졌다.
그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어디가 아파 왔느냐고 물었다. 어지럼증 때문이라는 내 말에 대뜸 왜 그렇게 부실하냐며 혀를 끌끌 찼다. 제가 보호할 대상이라도 되는 양 애잔하게 바라보는 눈길에 마음이 말랑해졌다. 사고는 먼 곳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더니 이러다 정분이 나는 걸까. 그럴 리 없다고 고개를 저어보았지만 외간남자에게서 풍겨오는 정체모를 기운이 새로웠다. 링거액이 모래시계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오래전에 그가 건넨 사탕과 풍선껌을 받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도 때로는 나와 한 침대를 쓰는 상상을 해 본 적이 있을까.
꼬리를 무는 상상에 빠져들고 있는데 어디선가 숨 끊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화들짝 정신이 들어 돌아보니 그새 잠든 그가 입을 떡 벌리고 냅다 코를 골아 대고 있었다. 예전 같았다면 외간 여자를 곁에 두고 저리도 태연히 잠들 수 있었을까. 몸살 기운만은 아닌 것 같았다. 세월의 힘은 육체뿐 아니라 감정까지도 잠재워 버렸다. 링거를 꽂은 팔을 늘어뜨린 채 세상모르고 잠에 취한 그는 식은 열정을 콧바람으로 빼내고 있었다.
남편의 코골이 때문에 각방을 쓰는 터에 누구와 산다한들 매한가지일 게 뻔했다. 컥컥거리며 무호흡증에서 깨어난 그가 “나, 코 골더냐?”하고 물었다. 나는 그때서야 참았던 숨을 몰아쉬며 소용돌이치던 감정들을 재빠르게 거두어들였다. 주사액이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벌건 대낮에 한 침대에 누웠던 우리는 나란히 병원 문을 나섰다. 길 건너에서 기다리던 남편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걸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