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마늘 내음이 진동했다. 엉덩이에 빨간 방석을 매단 일꾼들이 꽃게 마냥 밭을 누볐다. 바닷바람과 햇볕을 쏘이며 건조를 기다리는 마늘은 밭이랑에 뉘어지고, 팔려 갈 것들은 즉시 공판장으로 실려갔다. 흙이 채 마르지 않은 마늘을 쌓아 올린 경운기들이 도로 위를 뒤뚱거리며 달렸다.
알싸한 냄새와 함께 고흥 살이가 시작되었다. 이곳이 처음은 아니었다. 어느 해 여름 아이와 함께 외나도로에 있는 나로우주센터에 온 적이 있었다. 우주 체험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뙤약볕 아래서 올려다본 하늘이었다. 시간마저 쉬어가는 듯한 무한한 공간에 구름들이 게으름을 피우며 흘러가고 있었다. 그저 바라만 보아도 마음 한켠이 느슨해졌다. 천리나 떨어진 이곳으로 다시 오게 된 것은 그날 하늘이 내게 남긴 울림 때문이었다. 병원 생활이 끝나고 난 직후 아이의 도농 체험을 핑계 삼아 100일 동안의 휴가를 얻었다. 아이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한 박자 느린 일상을 선물하고 싶었다.
체험자를 위한 숙소는 학교 뒤 관사였다. 방 한 칸에 작은 부엌이 딸린 허름한 집이었다. 살림이라고는 달랑 책상과 이부자리가 전부였지만 집 앞으로 넓은 뒤뜰이 펼쳐져 있었다. 그 곁 빈터에는 석류나무와 잡초가 뒤엉켜 무성했다. 문을 열면 군락으로 피어있는 자운영이 나를 반기고, 창문마다 나지막한 산과 드높은 하늘이 액자처럼 걸렸다.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던 아이는 급우들과 금세 친해졌다. 수업이 끝나면 토끼장 앞에 쪼그리고 앉아 토끼들과 재잘거렸다. 그러다 우르르 운동장으로 몰려갔다. 놀이기구에 올라타거나 잔디 위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파도처럼 밀려다녔다. 놀이에 흠뻑 빠진 아이들은 해 질 녘에야 집으로 돌아갔다. 도농 교류 신청서에는 농촌의 가치와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농촌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함이라고 썼지만 실상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연의 일부로 녹아들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었다. 어쩌면 체험이 필요한 사람은 아이보다 나였는지 모른다.
어렸을 적 나를 들뜨게 하는 것도 놀이였다. 물놀이를 하고 사장 나무에 올라가 젖은 몸을 말릴 때, 마을 어귀에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리기 시합을 할 때, 짚 둥가리 속 참새를 쫓을 때, 찬바람에 맞서 연을 날릴 때, 싸움이 벌어져 눈물 콧물을 찍어 낼 때라도 그 순간은 전율이 일었다. 나의 이런 성향은 인간을 놀이하는 존재로 규정한 호모 루덴스라는 개념을 입증하기에 충분했다.
어린 시절엔 당연하듯이 누리던 자유였지만 성장을 하면서는 그 자리에 책임과 의무가 차지했다. 가끔은 몰래몰래 놀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어김없이 죄책감이 따라붙었다. 무언가를 그저 즐긴다는 건 더 이상 용납되지 않았다. 경제적인 가치만이 삶의 기준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나는 스스로를 몰아치며 살았다. 쉴 틈을 주지 않고 시간을 재단하다 몸에 병이 들고 말았다.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고 하는 이곳에서 나의 일과는 눈에 들어오는 것들을 그저 바라보는 일이었다. 아침 공기에 젖은 꽃잎, 흘러가는 구름, 푸른빛을 머금은 산, 좌판대 위에서 팔딱거리는 생선, 밤마다 반짝이는 무수한 별들…. 언제나 한자리에 머물러 있는 그것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있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놀이에 빠져들수록 종종거리던 조급함은 뒷걸음질 쳐갔다.
마늘 냄새는 초여름이 되도록 바람을 타고 돌았다. 나는 방안을 뒹굴며 신화 속 이야기를 떠올렸다. 마늘과 곰, 그리고 백일의 서사. 그것은 어쩌면 내 존재의 한 조각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흥에 닿은 건 오래전부터 예정된 일이었는지 모른다. 세상의 리듬에서 한 걸음 비켜선 나는, 인간이 되기 위해 고난을 견뎌야 했던 곰처럼 스스로를 고요한 굴속으로 밀어넣었다.
그 안에서 처음으로 나 자신과 마주했다. 소리를 내는 대신 깊은숨을 쉬고 굼뜬 몸을 굴리며 매운 냄새를 묵묵히 삼켰다. 침묵 속에서 더디게 흘러가는 시간은 내 안의 무너진 것들을 다시 쌓아 올리는 손길 같았다. 그 순간 문득 깨달았다. 하늘을 향해 날아오른 우주선이 자신만의 궤도를 그리듯 나도 이제는 남의 시선에 맞추지 않고 내 속도대로 걸어가도 충분하다는 것을.
떠나온 후 열 번도 넘는 봄이 지나고 나서야 다시 고흥을 찾았다. 불현듯 그 시절로 돌아온 나를 먼저 반긴 것은 바람에 일렁이는 마늘밭이었다. 그 초록의 물결 앞에 서 오래된 기억을 품어 안았다. 그때 동굴의 시간은 숨기 위함이 아니라 마침내 나로 돌아가기 위한 은밀한 귀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