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행 전철이 곧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무거운 가방을 치켜들고 에스컬레이터를 뛰어 내려갔다. 몇 발짝만 더 가면 플랫폼에 닿을 수 있었다. 정신없이 달려가던 순간 지팡이를 옆으로 뻗은 노인이 앞을 가로막았다. “좀 비켜주세요.” 급한 마음에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는 서두르는 내 발걸음을 붙들어 두고는 무심한 표정으로 돌아봤다. 그러곤 곧 고개를 돌렸다. 오도 가도 못하는 사이 눈앞에서 문이 닫혔다. 허탈한 마음으로 다음 차를 기다렸다.
여유를 부린 게 화근이었다.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서 전철역까지 천천히 걸었다. 가는 길에 줄지어 늘어선 상가를 기웃거렸다. 음식점, 카페, 화장품, 휴대폰, 병원, 은행, 과일, 의류까지…. 종류도 분위기도 제각각이었다. 군데군데 ‘임대’ 딱지를 붙인 점포들이 주변을 휑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의류점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바람에 나부끼는 화사한 색상의 옷들이 시선을 붙잡았다.
종일 창밖을 내다보며 손님을 기다리던 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먼지를 마셔가며 입에 단내가 나도록 떠들어도 밥벌이가 되는 날은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게 장사라더니, 제법 매출이 올라도 본전치기를 벗어나긴 어려웠다. 포부를 안고 시작했던 옷 가게는 몇 해를 넘기지 못하고 접을 수밖에 없었다. 끝내 안고 있었다면 더 피폐해졌을지도 모른다. 미련 없이 놓아버린 게 다행이었다.
다음 전철은 온다간다 소식조차 없다. 예전에 꼼꼼히 읽어뒀던 기차표 환불 규정이 머릿속을 스쳤다. 혹시 나도 기차를 놓쳐 그런 상황을 맞게 되는 건 아닐까. 불길한 예감에 숨이 가빠지고 아랫배가 조여왔다. 마음을 가라앉히려 숨을 길게 들이마셨다. 아버지와 함께 기차를 타던 때는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어린 시절 방학이 끝날 무렵이면 으레 아버지를 따라 기차를 타곤 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날은 새벽부터 서둘렀다. 가고 싶지 않다는 말은 끝내 꺼내지 못한 채 아버지 뒤를 졸졸 따랐다. 아버지는 늘 가야 하니까 가는 거라고 말했다. 내게 그 시절의 기차는 마음과는 상관없이 떠밀리듯 타야 했던 수단이었다.
잠이 덜 깬 채 역에 도착하면 기다리는 시간이 유난히 길고 지루했다. 역 앞 중화 요릿집에서 짜장면을 먹고 나면 더는 갈 곳도, 할 일도 없었다. 대합실 의자에 앉아 무심히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싫증이 나면 고개를 숙이고 멍하니 신발 코를 응시했다. 기다리는 것은 단지 기차만이 아니었다. 다음 방학과, 그리고 아버지를 벗어나 혼자 기차를 타는 날이었다.
방학은 어김없이 돌아왔다. 하지만 동행 없이 기차에 오르게 된 날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처음 혼자가 되었던 그날, 설렘은 잠시였다. 시간을 잘못 읽어 전혀 엉뚱한 기차를 탈 뻔했다. 수십 번이나 오갔던 익숙한 역이 그날따라 낯설기만 했다. 미리 나오지 않았더라면 허둥대다 길을 잃었을지 모른다. 그날 이후, 나는 시간을 놓칠까봐 미리 단도리하던 아버지의 방식을 자연스레 따라 하게 되었다. 반복되는 기다림 속에서 체념과 수긍도 조금씩 익숙해졌다.
플랫폼 끝자락에 한참을 서 있었다. 마치 나만 시간 밖으로 밀려나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날의 공기와 짜장면 냄새, 사람들의 웅성임, 그리고 역무원의 딸깍거리는 검표 소리가 겹겹이 되살아났다. 조금 전 길을 막았던 노인이 나를 향해 입술을 달싹였다. 그의 얼굴이 어렴풋이 아버지의 모습과 겹쳐졌다. 소리는 멀고 흐릿해서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에게 다가가려던 순간, 전철이 들어온다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노인이 내게 하려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혹시 아버지를 대신해 놓쳐도 괜찮다고 말해주려던 건 아니었을까. 아버지는 끝내 놓치지 않으려 애쓰며 살았지만 나만은 여유를 갖길 바라셨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살면서 놓쳐버린 것들이 어디 이 한 번뿐이었을까.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던 어린 날의 꿈, 뱃속에서 잃은 첫 아이, 어영부영 멀어진 사람들, 그리고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마저 나는 놓치고 말았다. 놓쳐버린 그 하나하나가 나를 지금의 자리로 데려왔다. 그것들이 결코 실패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동안 나는 그때의 아버지 나이를 훌쩍 넘겼다. 아버지도 그렇게 당신만의 방법으로 삶을 끌어안고 버텨왔으리라.
떠나간 것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기차를 놓친 게 뭐 그리 대수일까. 사는 일은 어쩌면 매번 다른 플랫폼에서 또 다른 여정을 준비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놓쳐버린 열차는 아쉬움이 아닌, 다음 출발을 위한 숨 고르기일 뿐이다. 오늘만큼은 그 기다림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 아버지와 함께 기차를 타던 그곳으로 되돌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