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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백 Nov 20. 2020

도시의 수문장

     

현관문을 여니 음식 냄새가 진동한다. 어제는 김치찌개로 유혹을 하더니 오늘은 생선 조림인가 보다. 계단을 내려가다 말고 한참을 서서 냄새를 맡았다. 얼마 전 아래층 아저씨가 퇴직을 하면서부터 점심때가 되면 냄새가 올라왔다. 부부가 식탁에 마주 앉아 얘기꽃을 피우는 모습을 상상하며 장난스레 문자를 보냈다.

 

  ‘때마다 구수한 내가 솔솔 나요. 맛나게 드세요.’

  ‘우리 아무것도 안 해 먹는데? 아! 지하에서 경비아저씨가 끓여 드시나 보더라.’ 


그러고 보니 냄새는 어두운 지하에서 올라오고 있다. 


이곳에 이사 오면서 아파트 앞에 떡 버티고 있는 경비실이 부담스러웠다. 주택에 살 때는 대문을 열어 놓고 마음대로 드나들었다. 수시로 들고 나는데 그때마다 감시를 당하는 것 같아 영 불편했다. 시간이 지나면서는 아저씨가 안 보이면 허전했다. 아파트 한 동이 촌락이라면, 아저씨들은 마을 수문장이나 다름없다. 그들은 이웃처럼 친근했다. 


아랫녘이 고향인 아저씨는 철 따라 올라오는 농산물을 문 앞에 살짝 놓고 가곤 했다. 덕분에 가지 못하는 곳에 그리움을 대신 달랬다. 딸아이 놀이방이 있던 옆 동 아저씨는 지날 때마다 손주처럼 예뻐하며 먹을 것을 쥐어 주었다. 아이는 그분을 할아버지처럼 따랐다. 종일 선비처럼 앉아 책을 읽던 점잖은 아저씨는 주민들이 오히려 방해되지 않도록 조용히 지나다녔다. 


지하창고는 그들의 휴게공간이다. 불을 켜지 않으면 사방을 분간할 수 없을 만치 어둡다. 물건이 쌓여있는 한쪽으로 간단한 취사도구와 쉴 수 있는 작은 방이 있다. 그곳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새벽에야 얕은 잠을 청했다. 한때는 도시락을 싸오는 부인과 다정하게 계단을 내려가는 아저씨도 있었다. 그때만큼은 지하 계단이 환해 보였다. 나는 마른 도시락에 목을 축일 수 있는 국물을 들고 가끔 지하를 오르내렸다. 


말수가 적고 얌전해 보이는 경비아저씨가 오신 것은 아랫집 아저씨 퇴직과 비슷한 시기이다. 솜씨가 좋은 줄도 모르고 지하 계단에 음식을 놓고 온 것이 부끄러웠다.  혼자서 밥을 먹는 날이면 오히려 아저씨 요리 냄새로 내 배를 채웠다. 


언제부턴가 오래된 아저씨들이 하나 둘 떠나갔다. 경비 체제가 용역으로 바뀌면서 일 년 단위로 계약을 한 때문이란다. “저 오늘이 마지막이에요”라는 인사를 남기고는 슬그머니 사라졌다. 처음에는 하소연도 해봤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일자리를 보장받을 수 없는 아저씨들은 스스로를 파리 목숨이라 했다. 


얼마 전에는 아파트 입구에 차단기를 설치하겠다며 주민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경비절감을 위해서란다. 그동안 사람이 해오던 일을 막대기 하나 걸쳐 놓은 것으로 대신하겠다는 방식에 사람들은 반대했다. 아이들을 손주 보듯 귀애해주고, 오가며 나누는 인사며 정성들여 화단을 가꾸는 일을 기계가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두 동에 한 사람을 두는 것으로 인원을 줄였다. 맞설 힘이 없는 아저씨들은 항변하지 못하고 묵묵히  받아들였다. 아저씨들을 대신에 관리실에 찾아가 따져 보았지만 규정대로 할 뿐이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인정이라는 항목이 없는 새 규정은 콘크리트 벽처럼 단단했다. 평소 안면이 있는 주민들도 안타까워할 뿐 떠나는 그들을 붙잡을 도리가 없었다. 


경비실이 비었다. 구수한 냄새도 더는 나지 않는다. 마을이 텅 빈 것 같다. 자식들에게 부담 주고 싶지 않다던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아저씨가 먹이를 주던 비둘기 두 마리만 주변을 맴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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