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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백 Dec 28. 2020

먹자골목 일미터

혹시 육촌 오빠가 아닐까?

집 부근 먹자골목이었다. 화려한 조명 아래 한껏 몸을 부풀리고 서 있는 풍선 입간판과 사람들로 북적이는 그곳에 남자가 있었다. 가죽 가방을 어깨에 메고 양 손에는 커다란 캐리어를 들고 있었는데 여행에서 막 돌아온 듯한 모습이었다. 머리에 쓴 체크 베레모와 단색 바지에 받쳐 입은 셔츠가 잘 어울렸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육촌 오빠를 닮은 남자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그날 이후 남자가 자주 눈에 띄었다. 아침이면 짐을 싸들고 골목을 따라 어디론가 떠났다가 저녁이면 돌아왔다. 가방은 매번 다른 것으로 바뀌었다. 때로는 빈손으로 골목을 두릿두릿 실피며 걸을 때도 있었다. 여행용 가방만 들었을 뿐 그 부근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에 여행자가 아니라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오빠는 매사에 반항적이었다. 어른들에게 고분고분하지 않고 청개구리처럼 엇나가는 행동을 일삼았다. 논에서 삽질을 하다가 갑자기 사라져 산속에 오두막을 짓고 틀어박혀 있거나 도시로 나가 몇 달씩 지내다 오곤 했다. 돌아와서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농사일에 매달렸다. 나는 제멋대로인 오빠가 장난꾸러기 같아 보였다. 오빠는 나를 친동생처럼 귀애했다. 순한 얼굴로 뻐드렁니를 감추며 소리 없이 웃어주는 모습도, 따뜻한 눈빛도 좋았다. 여름날 물이 불어난 개울을 업어 건네주던 오빠 등이 푸근했다.

 

비둘기 떼가 먹이를 찾아드는 아침이면 남자는 어김없이 나타났다. 우연히 뒤를 따르던 날, 취객들이 밤새 토해놓은 토사물을 새들이 쪼아 먹는 사이 사람들이 버린 음식을 모았다. 기름이나 국물이 얼룩덜룩하게 묻은 비닐을 들추거나, 일회용 도시락에 남은 음식을 젓가락으로 집어 봉지에 넣었다. 예상 못한 남자의 행동에 놀라 나는 몸을 숨겼다. 매일 먹잇감을 찾아 거리를 떠돌고 있었단 말인가. 말이라도 걸어볼까 곁을 슬몃거리던 나는 남자의 비밀을 훔쳐본 것 같아 재빠르게 자리를 떴다. 


먹자골목 끝에 남자의 세간살이가 있다. 음식점과 편의점, 호텔을 바라보며 동그랗게 놓여 있는 의자 위에 아이스박스와 색색의 보따리들이 몸을 맞대고 주인을 기다렸다. 갈수록 대담해진 남자는 박스를 열어 일회용 용기에 음식을 쏟아붓고 그 옆에 앉아 식사를 했다. 플라스틱 숟가락으로 벌건 국물도 떠 넣고, 뒤엉킨 국수랑 돈가스도 입으로 가져갔다. 행인들은 게걸스럽게 음식을 해치우는 모습을 못마땅한 눈으로 흘낏거렸다. 사람들은 먹고 사는 일 외에 추구하는 다른 무엇이 있을까. 꽃도 피고 지는 시기가 제각각이고 빛과 바람에 따라 다른 향기와 빛깔을 만들어낼 뿐 어느 것이 더 우월하다 말할 수 없지 않은가. 


태생의 비밀에 발목이 잡혔던 것일까. 답답하고 인색한 도시는 사람 살 곳이 아니라던 오빠는 어느 해 집을 나간 후 소식이 끊겼다. 사춘기 시절 시작된 방황은 제 뿌리를 찾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의붓어머니에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가방 공장에 다닌다는 사람도 있고 영등포 역전에서 떠도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식사를 마친 남자는 몸을 늘어뜨리고 해를 향해 앉아 바닥에 널려 있는 음료수 캔과 담배꽁초를 발로 톡톡 건드렸다. 그러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를 간간이 바라보았다. 투명한 유리 안에서 가게 주인들이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를 지켜보았다. 행색만으로도 손님에게 위화감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지 편의점 주인이 문을 밀고 나와 까무룩 졸고 있는 남자에게 비켜나라 소리쳤다. 듣는 시늉도 않던 남자는 바지를 탈탈 털고 일어났다. 영역다툼에서 불리한 쪽은 항상 약한 쪽이다. 흐르지 못하는 남자는 먹자골목 일 미터 반경을 돌고 돌아 다음날이면 또다시 같은 자리에 앉았다. -


몇 달째 남자가 보이지 않았다. 의자 위 보따리도 사라지고 아침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프기라도 한 것인지, 거처를 옮긴 것인지, 나는 남자가 기웃대던 골목을 서성였다. 오빠를 향한 그리움이 남자 뒤를 쫓게 한 것일까. 어쩌면 남자도 가죽을 만지던 기억으로 줄레줄레 가방을 끼고 다니는 것은 아닐지. 오빠가 떠난 동네처럼 골목이 텅 비어보였다. 


추적추적 실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공원 벤치에 남자가 누워 있었다. 반가웠다. 제멋대로 자란 머리카락에 얼굴이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잠이 들어 있었다. 그을린 맨발을 의자 등받이에 걸치고 고르게 숨을 내쉬었다. 나는 슬며시 발치로 다가가 깨기를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려도 기척이 없다.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보며 지나갔다. 그 눈빛에 덜컥 겁이 났다. 남자가 혹시 해코지라도 하지 않을까. 도움을 청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단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뿐이었던 나는 남자가 깰까 슬며시 행인들 사이로 섞여 들었다. 냉정하게 눈길로만 쫓는 나는 그에게 먼 이웃일 뿐이다.  


그와 나는 생의 한 순간을 무심히 지나친다. 코로나 19로 불황이 겹쳐 먹자골목이 점점 황량해지고 있다. 남자는 돌아갈 고향이 없는 이주민처럼 여전히 거리를 떠돌고 있다.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여행 가방이 전부다. 남자는 오늘도 비둘기들과 한통속이 되어 골목을 기웃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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