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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헐거워진 신발로 한발짝 한발짝

by 달라스 Jasmine

몇 년 전, 아들이 중학생일 때 학교 교감선생님한테서 연락이 왔었다. 학교 선생님들에게 강연을 해 줄 수 있느냐는 부탁이었는데 한국어 수업이라고 했다. 선생님들께 한국어를 가르치는 수업인가 하고 흔쾌히 예스를 하고 교감 선생님을 만나러 갔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반전이 있었다. 수업을 하되 오로지 한국어로만 수업을 해야 하고 영어는 절대로 쓰면 안 된다는 것이다. 아니,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미국 선생님들에게 100% 한국어로 수업을 하라니, 이게 도대체 가능한 일인가 싶어서 고개를 갸우뚱했더니 교감선생님께서 이 수업의 취지를 설명해 주셨다. 요즘 외국에서 학생들이 많이 들어오는데 영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학생들이 많아서 수업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선생님들이 이 학생들의 마음을 좀 더 이해하고자, 미국 표현으로 'wear someone else's shoes', 역지사지, 남의 신발을 신어보는 경험을 하고자 이 프로그램을 계획한 것이라고 했다.


과연 이 미국 선생님들에게 한국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 반신반의하면서 일단 하겠다고 수락을 했다. 교감선생님과 몇 차례 미팅을 더 하고 결전의 강연날이 다가왔다. 한국 문화를 소개하고픈 마음에 한국 과자들을 잔뜩 준비해 갔다. 강단 앞에 서서 100명에 달하는 선생님들이 눈을 반짝이며 나만 바라보는데 이 수업, 잘할 수 있을까 하고 침을 꼴딱 한번 삼키고 내 소개를 했다. 한국말로.

내 이름, 쟈스민은 알아듣는 것 같았다. 10년 지기 내 친구도 이 학교 선생님이라 나를 바라보는 다정한 눈빛에 힘이 났다.


1시간 동안 진행될 수업의 목표는 도화지에 집과 사과나무와 태양을 그리는 것이었다. 수백 개의 눈빛이 오로지 나를 향해 바라보는데 그들의 언어 영어로 소통할 수 없다는 게 얼마나 답답하고 안타까웠는지 모른다. 영어 몇 마디면 끝날 것을 나는 이들에게 어떻게 수업을 진행해야 할지 정말 기가 막혔다. 만국 공통 언어인 바디 랭귀지를 쓸 수밖에. 나는 일단 집 모양을 손으로 만들어 보여주면서 이게 집이란 걸 제발 알아야 할 텐데 하는 간절한 눈빛으로 선생님들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이 아닌 학생의 위치로 수업에 온 선생님들은 정말 백지처럼 하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천진스러운 모습으로 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집 모양을 어떻게든 만들어보려는 나의 노력이 몇 명의 선생님들 눈에는 통했고 몇몇 선생님들이 집을 그리기 시작했다. 집을 그린 선생님들을 향해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해맑게 웃자 다른 선생님들도 따라서 집을 그리기 시작했다.


역시 바디 랭귀지는 통했다는 안도감에 나는 또 사과나무를 표현하려고 동그랗게 원을 그리고 사과를 베어 먹는 모습을 보여줬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도대체 저 조그만 동양 사람이 뭘 말하려고 하는지 당채 모르겠다는 표정의 선생님, 아하 하며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림을 그리는 선생님, 주변 선생님들이 뭘 하는지 여기저기 둘러보는 선생님들, 정말 가지각색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강단에서 내려와서 선생님들 하나 하나와 눈을 맞추며 사과를 그린 선생님에게는 환하게 웃으며 잘했다고 칭찬을 해줬고 갈피를 잡지 못하고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의 선생님 앞에서는 다시 열심히 바디 랭귀지로 사과를 만들어 보였다. 이제 태양만 그리면 완성인데 우려했던 것보다 많은 선생님들이 이미 집과 사과나무를 그렸고 서로 도와 가며 수업을 잘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눈이 부신 시늉을 하면서 선생님들을 바라봤다. 선생님들을 둘러보니 새하얗던 백지 도화지에 어느새 집, 사과나무 태양이 그려져 완성이 되어 가고 있었고 처음에 전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우뚱하던 선생님들도 어느새 그림을 완성해가고 있었다.

파란 눈, 노란색 머리의 선생님들의 얼굴들에서 한국에서 막 온 학생들의 두려움과 설렘이 섞인 표정들이 오버랩되었다.


영어 한마디 할 수 없는 이 수업을 어떻게 헤쳐나갈까 하며 걱정했던 한 시간이 어느새 순식간에 흘러갔다. 거의 모든 선생님의 도화지에는 집과 사과와 태양이 그려져 있었다. 그림이 완성된 후 교감 선생님은 내 수업에 어떤 점이 좋았는지 선생님들께 질문을 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선생님들은 자신들의 눈을 바라보며 교감하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 옆에 다가와서 설명해 주고 표현해 주는 것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 하며 자신들이 느꼈던 점들을 이야기했다. 자신들을 도와주려는 진심이 느껴졌다며 환하게 웃는 선생님들의 미소에 내 마음도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또 선생님들은 외국에서 온 학생들이 얼마나 답답했을지 이 수업을 통해 절실히 느껴졌다며 학생들에게 좀 더 귀를 열고 마음을 더 열어야겠다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한 시간의 수업이 외국에서 건너온 학생들의 낯섦과 어색함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었겠느냐만은 그래도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답답함과 좌절감을 어느 정도는 체감 하지 않았나 싶었다. 정말 말 그대로 남의 신발을 신어보는, 선생님이 학생들의 신발을 신고 그들의 눈과 귀가 되어 그들의 심정과 감정을 체험해 볼 수 있었던 그 한 시간이 그들의 앞으로의 수업에 많은 영향과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수업을 마쳤다.


수업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이 "엄마, 학교 선생님들이 엄마 Jasmine이지 하면서 다 엄마를 알아" 하면서 신이 나서 얘기를 하는데 뿌듯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나에게도 값진 경험이었고 이제 미국생활이 어느새 30년이 다 되어가는 나로서도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나의 경험을 떠올리기도 했다.


어학연수를 하러 University of Georgia에 와서 영어프로그램에 반을 배정받았을 때 11명 학생 중 9명이 한국인이었고 우리들은 선생님의 말씀을 잘 알아들을 수 없었고, 종종 한국말로 도대체 선생님이 뭐라는 거냐고 서로 대화를 하다가 급기야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한국어를 할 경우 벌금으로 quarter, 25센트를 내기로 했는데 유리병에는 한국학생들이 내는 벌금으로 가득 차기도 했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을 때 우리는 혼란에 빠지고, 초라해지고, 불안에 빠지게 된다. 이런 학생들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그들의 마음이 되어서 조금은 더 공감해 주고 조금은 더 이해해 준다면 선생님들도 학생들에게도 조금은 더 즐겁고 행복한 학교 생활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아들은 미국에서 태어나 영어가 첫 번째 언어이지만 여름방학 때마다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니고 한글학교도 꾸준히 다닌 덕에 한국말을 잘하는 편이다. 내가 한글학교 선생님을 하는 2년 동안 아들이 한글학교에서 보조 선생님을 하기도 했는데, 힘들기도 했지만 보람도 있고 서로에게 참 소중한 시간이었다. 아들은 자신도 거의 10년이란 세월 동안 한글학교 학생이었던 경험을 되살려 학생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보조선생님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요즘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능력 중 하나가 공감 능력이 아닐까 싶다. 소셜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자라나고 있는 아이들에게 남의 상처에 공감하고 배려하고 남의 기쁨에 함께 기뻐할 수 있다면 세상은 조금은 더 훈훈하고 살맛 나는 곳이지 않을까?


아들 덕분에 중학교에서 미국 선생님들에게 한국어 수업도 해보고 언어가 통하지 않을 때의 답답한 고충을 겪는 아이들의 심정도 이해해 보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선생님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특히 한국에서 미국이란 거대한 땅에 건너와 아이들이 과연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을까 노심초사하는 부모님들의 마음도 떠올랐다. 답답함으로 꽉 차서 한걸음도 내디딜 수 없는 신발을 신은 느낌의 아이들에게 공감 한 스푼, 이해 한 스푼을 신발 위에 살포시 뿌려준다면 아이들은 조금은 헐거워진 신발로 한 발짝 한 발짝 천천히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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