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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라스 Jasmine Aug 19. 2024

피아노와 아들의 멍든 발바닥

여전히 피아노 소리는 울려 퍼지고


아들이 구글에게 알람을 부탁한 5분이 지나고 구글은 약속한 대로 알람을 울리기 시작했다. 소파에 널브러져 5분의 잠을 청한 아들이 안쓰러웠지만 나는 남편에게


한쪽 발 들어. 내가 한쪽발 들게.

하면서 아들의 다리를 잡아당겼다.

여름 피아노 캠프에서 돌아온 아들은 이제 입시가 1년밖에 남지 않았고, Oberlin 피아노 캠프 참가자들의 공연을 보신 아들 선생님은 초등학교 전부터 피아노와 씨름했던 중국 학생들과 다른 많은 동양 학생들,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전공 목표로 연습해 왔던 학생들의 엄청난 실력에 아들의 부족한 테크닉을 걱정하며 아들에게 베토벤 탬퍼스  3악장을 이번 주말까지 끝내라고 숙제를 내준 것이다. 10 페이지의 악보. 피아노선생님 말씀이라면 무조건 적인 아들은


                     '이걸 내가 어떻게 해내지'


하면서도 무조건 해야 한다며 이를 악물고 연신 피아노를 두들겨 대고 있었다.

이번주의 끝인 일요일이 드디어 온 것인데.. 아들은 소파에 몸을 던지며 이제 거의 끝났다고 외쳤다.


우와! 동주! 할 수 있었네! 선생님이 너 할 수 있었는데 이때까지 안 한 거였네.
하시면서 더 큰 숙제 내주시는 거 아냐?

 하며 나는 뿌듯한 마음으로 아들을 흐뭇하게 쳐다보며 발 마사지를 해주려는 순간. 아들의 오른쪽 발바닥 발가락 아래에 달걀보다 큰 커다란 파란 멍을 발견했다.

옆에 서있던 남편에게

이거 봐!! 동주 피아노 페달 밟다가 이렇게 멍이 들었어! 어떻게!

남편도 깜짝 놀라 발바닥의 커다란 멍을 보더니


 맞네! 멍이 들었네!

순간 우리 부부는 약속이나 한 듯 휴대폰으로 아들의 멍을, 무슨 훈장 보듯 사진을 찍었다.


세상에. 피아노를 너무 열심히 쳐서 페달 밟다가 멍이 들었잖아.
선생님한테 사진 보내드리자!


나는 감격에 겨워 우는 흉내를 내며 (사실 약간 울컥하긴 했다. )


“아이고 우리 아들, 너무 열심히 페달 밟느라 발에 멍까지 들고. 아이고”  했다.

아들은 처음엔 멍이 무슨 말인지 모르다가 내가 부르즈라고 말하자


“ 이게 멍이라고? 하나도 안 아픈데”

하며 신기한 듯 발 바닥의 파란 훈장, 연습의 증거를 신기한 듯 쳐다봤다.

중학교 때까지 작가가 되겠다고 소설을 줄곧 쓰던 아들이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갑자기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단다. 건너 초등학교에 공연을 하러 온 중학교 형, 누나들의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고 온 아들이 흠뻑 반해서

“엄마! 나 바이올린 배울래!”

해서 바이올린을 배우더니 막상 중학교에 가니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친구들이 선택한 밴드에 들어가겠다고 풀룻을 배우겠단다.

중학교 밴드부에 들어가서 풀룻을 불고, 바이올린도 켜고 싶어서 7학년때부터는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을 켰다. (지금도 고등학교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을 켠다) 풀룻을 전공하려나 해서 달라스 최고의 풀룻 선생님한테 수업을 가느라 왕복 1시간이 넘게 풀룻을 배우러 다녔었는데…

10학년 때는 그 들어가기 힘들다는 GDYO (Greater Dallas Youth Orchestra)에도 들어가서 풀룻을 불었다.


고등학교로 넘어가던 여름방학, 갑자기 피아노를 하루에 8시간씩 치더니 피아니스트가 되겠단다.

풀룻 선생님이 소개해주신 풀룻 대회 반주자로 만난 김현수 선생님의 유일한 제자가 된 아들은 피아노를 향한 꿈을 키웠고, 선생님 덕분에 무한한 성장을 했는데… 청전 병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선생님께서 Oberlin 대학에 취직이 되셔서 오하이오로 이사를 가셔야 한다는 것이었다. 동주 때문에 가지 말 까라는 생각도 하셨다는 선생님께,  그렇게 좋은 자리에 가시지 않는 건 말도 안 된다며 축하를 해드렸지만 나는 선생님 앞에서 주책같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고, 아들은 내게 왜 우냐고 화를 내고, 나는 무안해서 눈물이 나는 건 나도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억울하게 아들을 쳐다봤는데 아들은 마음속으로 통곡을 하고 있었을 터였다.


선생님이 Oberlin에 가신지도 어느새 2년이 흘렀고 아들은 달라스에서 제일 유명하신 Dr. McDonald 한테 수업을 듣고 있지만 여전히 아들의 최고 멘토는 현수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Oberlin에 가셔서도 매일 아침 아들과 페이스 타임으로 만나서 본인은 세 살짜리 따님 등원준비를 하고 아들은 피아노 연습을 시키셨다. Indiana 대학의 피아노 캠프와  Oberlin 피아노 캠프 사이 2주 간격이 있었는데 그때 아들에게 본인 집에 와 있게 하시면서 매일 본인의 학교 사무실에서 아들이 연습할 수 있도록 데려다주셨다.


아들이 현수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피아노 전공은 꿈도 꾸지 못했을 일이다. 네 살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친 아이들을 고등학생이 돼서야 피아노 전공을 결심한 아들이 어떻게 경쟁할 수가 있겠는가.  음악에 재능이라고는 전혀 없는 나 대신 다행히 절대음감도 있는 아빠 쪽 피를 닮아 아들은 귀가 좋다는 이야기를 쭈욱 들었었는데 사실 우리 집 강아지들보다 아빠가 퇴근하고 돌아오는 걸 아들이 먼저 알 정도다. 쏘머즈의 귀를 가진 게 틀림없다.


의지하고 믿었던 선생님도 타지로 가시고 너무나 사랑했던 사촌 동생도 아홉 살이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작년, 아들은 슬럼프에 빠졌었다.


아들은 이번 Oberlin 피아노 캠프에서 열린 대회에서 6등을 하고 상금도 $200불 받았는데, 참가자들의 연주를 보신 선생님은 아들의 실력이 일 년 동안 많이 늘지 않은 것에 걱정하시면서 참가자들의 쟁쟁한 실력에 마음이 조급해지셔서 극단의 조치를 내리셨다. 아들에게 이번주까지 입시곡으로 정한 베토벤 템피스트를 다 배우지 못하면 선생님은 아들의 피아노 인생에 더 이상 관여치 않으시기로…


아들에겐 아마 사형선고나 다름없었을 테고 캠프에서 돌아온 후 많이 달라져 있었다. 좋아하던 오락도 끊겠다며 대형 컴퓨터 스크린을 내가 가져가도 좋다고 했다. 그리고 아빠에게 white bord를 얻어서 대학 입시 곡들을 죽 적더니 그 아래 빼곡히 연습해야 할 페이지들을 써 내려가서 그 옆에 칸을 만들어 체크 표시를 할 수 있게 했다. 체크가 빼곡히 채워져야 잠에 들었다. 집에 도착하면 바로 피아노로 달려가 피아노만 주구장창 쳤다. 주말엔 친구들과 sleep over를 하거나 오락을 했었는데 이번 주말엔 베토벤 템피스트를 정복하기 위해 발바닥에 파란 멍까지 지고야 만 것이다.


그런데…


아들의 하나도 아프지 않다는 말에 내가 혹시나 해서 물티슈를 가져와 파란 멍을 닦는데


세상에…


그 파란 멍자욱이 깨끗이 지워지는 게 아닌가.

그 파란색은 피아노 페달을 너무 열심히 밟아서 파랗게 얼룩진 훈장의 멍자욱이 아니라 페달의 녹이 묻어 난 그냥 녹 자국인 것이었다.


이거 다 지워지는데! 멍이 아니었어!

순간, 우리 셋은 푸하하하 얼굴을 마주 보며 웃었다.

선생님께 보낸다며 열심히 사진을 찍어대던 우리 부부의 시트콤 장면이 생각나 한참을 웃었다.


일요일 오후 4시.. 아들의 피아노 소리가 메트로놈 소리와 겹쳐서 들려온다.

이제 오늘이 몇 시간 남지 않았고 아들은 기어코 베토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선생님께 이렇게 문자를 보낼 것이다.


“선생님, 베토벤 템피스트 3악장 다 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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