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가진 젊음에게 라는 cm으로 시작하는 대우 젊음에게 기업 캠페인 광고는 대우기업이 수십 년 동안 이어온 기업 PR 광고인데 일반인들에게 광고 카피 공모전을 하는 거였다. 직업이 카피라이터인데 응모해도 되나? 하고 고민을 잠깐 하기도 했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응모할 수 있다고 했기에 응모를 했고 12명의 수상자 중에 내 이름이 들어있었다. 그 당시 젊음에게 캠페인 주제는 일상의 소리였다.
일상에 들리는 소리에 관해 라디오 카피를 쓰는 거였는데 나는 북한에서 들려오는 소리, 아기의 웃음소리, 등등 여러 개를 응모했는데 그중에서 아기의 웃음소리가 당선이 되었다.
상금도 있었고 특이한 점은 당선자 12명이 한 달씩 달을 맡아서 자신의 목소리로 광고를 녹음해서 그 한 달 동안 라디오 방송이 된다는 점이었다.
나는 회사 일이나 열심히 하지라는 피디님의 잔소리를 듣고 월차를 내고 서울 녹음실로 향헀다. 내 방송일은 여름이었으나 내가 3월에 미국 어학연수를 떠나는 관계로 미리 녹음을 하는 거였다.
늘 녹음실에서 성우분들께 이렇게 해주세요. 이 부분은 신나는 톤으로 해주세요. 하고 요청만 드리다가 내가 직접 성우처럼 녹음을 하게 되니 정말 역지사지의 기분이 들었다. 대우 캠페인 광고 담당자가 내 광고의 첫 줄을
대구에 사는 회사원 이혜영입니다
라고 덧붙이라고 했다.
나는
회사원 대신에 카피라이터라고 해도 될까요?
그러자 담당자는
어라. 이 사람 카피라이터였어? 반칙 아닌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그렇게 하라고 했다.
이건 순전히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나 스스로의 상상이었다.
성우분들과 수많은 라디오 녹음을 했었던 경험을 되살려
나 잘할 수 있겠지. 하고
첫마디를 하는데…
아기의 웃음소리를 들으면 저는 마음이 편안해져요
웃음기 없는 깐깐하게 생긴 그 담당자분은
대구에 사는이라고 소개하는데 사투리가 없으니 이상하니까 사투리 넣어서 해주세요.
하는 거다.
초등학교를 서울에서 다닌 나는 사투리든 표준말이든 자유자래로 할 수 있었지만 라디오 광고 맨트에 사투리를 써 달라니 기가 막혔다. 사투리가 나쁜 건 아니지만 젊음에게 캠페인에 굳이 사투리를 넣어야 할까 싶었지만 하라니까 할 수밖에
나는 사투리도 아닌 것이 표준말도 아닌 어정쩡한 톤으로 맨트를 읽어나갔고 담당자는 계속 다시, 다시를 연발하다가 결국은 나보고 이렇게 말했다.
그냥 표준말로 하세요.
그래서 나는 다시 표준말로
아기의 웃음소리
컷!
아니, 아기에서 사투리가 나오잖아요. 다시!
아기의
컷! 사투리가 있다니까요! 다시!
이 담당자는 나와의 기싸움에서 이기려는 듯 나의 첫마디 아기를 수십 번 반복하게 했고
결국은 지쳤는지 오케이 사인을 했다.
그렇게 40초짜리 광고를 한 시간이 지나서야 끝낼 수 있었고 나는 다시 나랑 일했던 성우분들의 노고에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게 됐다. 맘 속으로 꾹꾹.
녹음실을 나오며 나는 담당자에게 제 광고 릴 테이프로도 좀 부탁드려요. 했다.
회사에 가서 릴테이프로 들어보려는 거였는데 그 담당자는 릴테이프 달라는 사람 처음 봤다며 못마땅한 눈빛으로 내게 릴테이프를 건넸다.
같은 업계 종사자끼리 너무 까칠한 거 아닌가 싶었는데 광고인이라고 담당자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하지 않았던 내가 미운털이 박힌 탓이리라.
그 릴테이프와 내 목소리가 담긴 내 카세트 테이프는 이제 온데간데없다. 집 어딘가에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찾을 수가 없다.
내가 미국에 어학연수로 와 있어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내 목소리는 직접 들을 수 없었지만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자기 남자 친구가 버스를 타고 가다가 라디오에서 내 목소리를 들었다고.
이거 조장 목소리인데!
하면서 깜짝 놀랐다고.
내 대학교 때 많은 별명 중 하나가 조장이었는데 나는 내 친구들을 모아서 팝송으로 영어공부를 하는 동아리를 만들었는데 동아리 이름이 ‘주물럭’이었다. 팝송을 외워 오지 못하면 벌금을 내서 그 벌금으로 주물럭을 사서 먹는 동아리로 우리 과 학과지에 동아리 소개글도 실렸었다.
멤버라고 해야 늘 어울려 다니는 우리 4 총사였는데 팝송을 외워오는 건 나 혼자였고 모두들 주물럭이나 사 먹자 하고 주물럭만 주야장천 사 먹었다는..
그런데 동아리 회장이었던 나를 내 친구 남자친구는 4명 회원인데 회장이 모냐고 낮춰서 조장이라고 불렀었다.
대우 젊음에게 캠페인에서 받은 상금은 내 미국 유학길의 노자에 보태졌고 나는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미국 조지아주로 1년 어학연수를 떠났다. 카피라이터로 일한 지 2년 3개월 만의 일이었다. 내가 일본에 어학연수를 갔을 때 일기장에 난 이렇게 썼었다.
일본이 아니라 미국에 갔었어야 됐었네. 나는 3년 후에 광고의 탄생지 미국으로 건너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