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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라스 Jasmine Sep 17. 2024

미국에서 미국으로 전학 가기

제가 별나다구요?

서울에 있는 광고 대행사에 들어가기 위한 스펙 쌓기로 난 미국 어학연수를 선택했다. 10개월 정도 어학연수를 하고 남은 2개월은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해서 아이디어를 잔뜩 담아 올 목표를 가지고 미국 조지아주로 향했다. 나의 미국행을 찬성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지만 나는 2년 3개월의 카피라이터 생활을 청산하고 떠났다. 더 나은 나의 광고쟁이로의 인생을 위해.


조지아주에 Athens에 있는 University of Georgia를 선택한 이유는 학비가 싸서였다. 학교는 나무가 우거진 아름다운 곳이었고 교정이 너무 넓어서 스쿨버스가 운영되고 있었다. 내가 반 배정을 받고 들어간 American Language Program 교실문을 열고 들어간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곳이 한국인가 미국인가. 열한 명 중 무려 아홉 명이 한국 학생이었다. 앞을 봐도 한국인 옆을 봐도 한국인 나는 한국에서보다 더 한국인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학생들은 수업시간에도 한국어로 서로 물어보곤 했는데  Nancy 선생님은 한국 학생들에게 수업시간 중 한국어를 하는 학생들에게  quarter (25 센트)를 벌금으로 내게 하셨는데 유리병이 쿼터로 가득 채워져 갔다.


애틀랜타 공항에서부터 만난 한국 여학생 2명과 기숙사도 같은 기숙사로 배정되어 우리는 늘 같이 다녔는데 서로 영어를 쓰자고 다짐을 하면서도 한국인끼리 영어를 쓰는 게 너무 우습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해서 끝내 우린 한국어를 하곤 했다. 아! 내가 서울 종로학원 같은 곳에 오자고 사표를 던지고 물 건너 산 넘어 이 미국 조지아까지 왔단 말인가! 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나는 스스로 맹모의 삶을 선택했다.

미국에서 또 다른 미국으로 전학을 가는 것이다.


이런 결정을 내린 나에게 모두들 “미쳤다!”라고 했다. 몇 년도 아니고 1년 어학연수를 온 사람이 전학을 간다니! 모두들 나를 말리고 그냥 있으라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이대로 한국인들에 둘러싸여 시간을 보내다간 영어는 하나도 늘지 않을 나의 미래가 빤히 보였기에 한 학기를 마치고 전학을 가기로 했는데.. 다행히 UGA는 당시 쿼터제를 하고 있어서 3개월이 한 학기였다. 나는 조지아주 내에 있는 한국학생이 거의 없는 조그만 학교 Georgia Southern University로 전학을 가기로 했는데 세상에! 한국에서 미국으로 올 때보다 미국에서 미국으로 전학을 가는 게 더 힘들 줄이야. 처음 미국에 올 때는 대학교 졸업 증명서만 필요했었는데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니 고등학교 졸업증명서와 성적 증명서가 필요했다. 엄마가 나 대신 내 고등학교 모교에 가서 서류를 떼서 미국으로 부쳐주셨다.


그 당시 내 대학교 때 베프인 친구 현이가 남편과 함께 미주리주 콜롬비아에서 각각 박사과정, 대학원 과정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Georgia Southern University로 가기 전 친구네에 일주일정도 머무르기로 했다. 고맙게도 친구와 남편이 나를 데리러 조지아주까지 와 주었다. 석 달의 시간이었지만 나는 이삿짐이 상당히 많았었다. 친구가 차에 내 이삿짐을 꽉꽉 싣고 우리는 미주리로 향했고 오랜만에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냈다. 오작이라는 아름다운 호수도 구경하고 맛난 피자가 가득한 피자 뷔페에도 가고 테니스도 함께 치며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다.


아쉬운 작별의 시간은 돌아오고야 말았고 이번엔 나 혼자 씩씩하게 나를 반겨줄 새로운 학교로 가야 했다. 나는 Gray Hound버스에 내 짐꾸러미 7개를 싣고 친구와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나눴다. 친구는 강가에 아이를 내보내는 눈길로 애처로움 가득한 눈빛을 보내며 손을 흔들었다. 친구는 자신이 태어나서 처음 담근 김치도 싸주었다. 새로운 학교에 가자마자 친구가 만든 김치를 맛볼 기대감에 부풀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레이 하운드는 무서운 일도 많이 벌어지는 안전하지 않은 버스였는데 그 당시에는 몰랐기에 나는 맘 편히 버스에 몸을 실었다.


내 옆자리는 젊은 미국 군인이었는데 나는 영어 회화 공부도 할 겸 그와 대화를 했다. 내가 머라이어 케리를 듣고 있었는데 이 가수를 좋아하냐고 했더니 그는 I like her look 하는 거였다.

가창력보다 그녀의 외모를 좋아한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내 건너편에 앉은 남성분이 말을 걸었다.


한국분이세요?
아. 네..
그럼 자리 바꾸셔서 제 옆에 오실래요?

나는 미국 군인과 영어회화를 나누며 즐겁게 가고 있었는데 왠 한국 남자가 자리를 옮기라고 하니 거절할 수도 없고 해서 그의 옆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유학생인데 이제 한국에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리고 내게 그레이하운드에서 아무하고 얘기하면 안 된다며 주의를 줬다. 그리곤..

그의  미국 생활 이야기보따리들이 펼쳐졌는데..  나는 때론 따분한 기분이 되어 그의 쉴 새 없는 이야기를 몇 시간 동안 들어야 했고... 그렇게 애틀랜타 정류소에 도착했다. 그는 고맙게도 전화카드를 내게 선물했고 조심하라며 당부하면서 총총 사라져 갔다.


나는 애틀랜타 정류장에서 또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4시간 거리에 있는 Statesboro로 향했다.

그곳에는 UGA에서 알고 지낸 오빠가 독일인 친구 Penny가 마중 나올 거라고 했다. 13시간의 버스 여행 끝에 도착한 Statesboro에  버스 정류장에는 큰 키에 긴 곱슬머리, 독일인 여학생 Penny가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녀는 나를 기숙사로 안내해 주었고 환영해 주었다. Statesboro는 Stress Boring 이라며 심심해서 스트레스 쌓인다는 닉네임과 그래서 공부밖에 할 게 없다며 씽긋 웃어 보였다. 일식면 얼굴도 모르는 나를 마중 나와준 그녀가 너무 고마웠다.


나는 기숙사로 가서 짐을 풀고 친구가 준 소중한 김치는 기숙사에 있는 공용 부엌의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다시 내방으로 향했는데 우르르 한 무리가 내 방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그중 새햐얀 얼굴에 긴 생머리와 칡흙 같은 까맣고 커다란 눈동자를 반짝반짝 빛내고 있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인 여학생이 내 눈에 들어왔다. 한 대여섯 명의 여학생들이 들어왔는데 그중 한 명이 그 새하얀 얼굴의 여학생을 가리키며 내 룸메이트라고 했다. 이름은 체리라면서…


9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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