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룸메이트 Cherry는 첫눈에도 매력이 넘치는 여학생이었는데 스무 살을 갓 넘었을까 했던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24살이라고 했다. Georgia Southern University에서 랭귀지 코스를 마치면 Savannah에 있는 SCAD라는 유명한 미술 대학원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할 거라고 했다. 그녀는 태국에서 방송국의 PD였다고 했다. 어머니가 큰 화장품 회사 사장인데 딸에게 사업을 물려주려고 MBA를 하라고 보냈는데 그녀는 엄마에게는 비밀로 하고 디자인 공부를 하러 온 것이다. 자신의 꿈을 향해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알고 보니 Savannah의 SCAD는 미국 미술 대학 탑 파이브에 들어가는 명문 미대였다.
지금 그녀는 태국으로 돌아가 SCAD에서 함께 공부한 친구들과 함께 애니메이션 회사를 차렸고 세계를 누비면서 자신의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홍보하고 다닌다. 한국에도 자주 간다고 했다. 몇 년 전에 한국에서 만났는데 수십 년의 세월 뒤 서울에서 마주하고 있는 우리가 믿기지 않았다.
Cherry는 기숙사에서 한국 라면의 반만 한 크기의 태국 라면을 종종 끓여 먹었는데 내 입맛에도 맞아서 자주 먹었다. 빨간 색깔의 라면은 한국 라면의 매운맛과는 조금 다른 매운맛이 특이했다.
기숙사에 짐을 풀고 나는 부엌으로 향했다. 내 친구가 생애 처음 만든 김치의 맛이 너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공용 부엌에 있는 냉장고를 열었는데…
어라.. 내 김치?
그레이하운드를 타고 14시간을 미주리주에서 조지아까지 고이 모셔온 김치병이 온 데 간데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너무 당황하고 머리가 혼미해진 나는 주위를 돌아보고 눈에 보이는 학생을 잡고 김치가 사라졌다며 하소연을 했는데.. 그 학생은 아마 청소하는 사람이 버린 것 같다며 금방 울음이라도 터뜨릴 듯한 내 모습을 보며 짠한 눈빛을 하고는 총총 사라져 버렸다.
아! 친구에게 네가 처음 만든 김치가 정말 너무 맛있었다고 얘기해주려고 했었는데…
아예 맛도 보지 못하고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나의 김치여!
그때는 누군가 나의 김치를 보고 너무 탐이 나서 훔쳐간 거라고 생각을 했지만 나중에 학생들과 얘기를 해보니 아마 너무 냄새가 심해서 누군가 버린 것 같다고 했다. 아마 그들의 추측이 맞았으리라. 그 더운 여름에 14시간을 이동해 온 김치의 냄새는 아마 상상 속에 맞기는 게 나을 듯…
사실 여름의 김치는 위험한 무기가 될 수 도 있다는 사실을 미국에서 알았다. 남편이 겪은 실화인데 그도 김치를 자신의 미국 룸메이트 고향에 선물로 가지고 갔다고 한다. 여름에…
한국의 김치맛을 보여주려고 룸메이트 고향인 버지니아에서 김치통을 열었는데.
아뿔싸! 조지아주에서 버지니아주로 또 여덟 시간 가량 넘게 이동을 한 고생한 김치는 뚜껑을 여는 순간 폭발을 해버린 것이다 빨간 고춧가루와 김칫국물이 미국인 룸메이트 고향집 부엌에 사방으로 튀는 순간 모두들 대피를 했다고 한다. 이렇게 외치면서…
It’s Rotton! 이거 썩었어!!
세상 맛있는 김치가 미국인들의 눈에는 세상 위험한 폭발물로 돌변한 순간이었다.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김치와는 작별인사도 못 한채 나는 매끼를 외국에서 온 유학생들과 매일같이 학교 기숙사 앞에 있는 카페테리아에서 튀긴 치킨과 튀긴 감자등으로 식사를 했는데 약 3개월 만에 20 파운드, 10Kg이 쩌버렸다. 정말 충격적이었던 사건은 내가 3개월 전 다녔던 UGA에 다니던 아는 오빠가 우리 학교를 찾아왔는데 나는 너무 반가워서
오빠, 안녕하세요!
했는데, 오빠는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누구?
나는 이 오빠가 장난을 치나 싶어
저 혜영이예요. 했는데 순간 그 오빠의 커다래진 눈이 아직도 선선하다.
네가 혜영이라고? 너…. 왜 이렇게 변했어?
오빠는 완곡한 표현으로 변했어라고 말했지만 오빠가 내뱉고 싶은, 아니 속으로 한말은 분명
너 왜 이렇게 살쪘어?
였을 것이다.
그 당시의 사진을 보면 정말 볼이 터져 나갈 것만 같다.
내가 전학 간 GSU는 다행히 정말 한국 학생이 없었다.
예전 UGA가 한국 학생이 약 2천 명이었다면 전한 간 학교는 한국 학생이 고작 60명 정도였다.
나는 늘 외국 학생들과 어울렸고 특히 일본에서 온 학생들이 많았다. 일본에서 온 학생 중 한 명이 날 보고 일본 만화 주인공 세일러문 같다며 세일러문이라고 불렀다. 아마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 때문인 것 같다.
뽀얀 얼굴에 커다란 눈을 한 태국에서 온 내 룸메이트 체리,
나처럼 회사를 다니다 온 나중에 내 룸메이트가 된 나보다 한 살 많은 일본에서 온 케이꼬,
늘 웃는 얼굴에 스케이드 보드를 잘 타고 다녔던 태국에서 언니랑 함께 유학온 인기쟁이 니라몬,
늘 수업시간에 우스개 소리로 반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던 일본에서 온 다이스케,
기타 좀 칠 것 같은 락스타 폼의 이집트에서 온 친구,
자전거로 다른 도시를 넘나드는 근육 소년 마사히로,
초등학생처럼 귀여운 양갈래 머리 지히로,
깍쟁이처럼 얄미웠던 타이완 소녀 스텔라 (이 친구는 웬 중국 아저씨 유학생이랑 나를 연결하려고 해서 얄밉고 미웠던 기억이 난다.)
거의 200kg의 거구이면서 늘 해맑은 미소로 캠퍼스에 모르는 이가 없는 핵인싸 아랍 소년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이 아랍 친구는 이슬람교라서 수업 시간에도 방에 가서 기도를 올리곤 했다.
이 아랍 친구덕에 나는 나중에 Chick Fil a에서 일할 수 있게 되는데 원래 랭귀지 프로그램을 다니는 학생들은 학교에서 일을 할 수가 없었는데 이 친구가 랭귀지 프로그램 디렉터에게 찾아가서 항의를 하고 설득을 해서 랭귀지 프로그램을 듣는 외국 학생들도 캠퍼스 내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랭귀지 디렉터도 아랍 어느 나라에서 온 외국인이었는데 아마 자연히 통했던 것 같다. 한국도 학연 지연이 큰 영향을 미치지만 몇십 년 살아본 결과 미국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은 걸 피부로 느꼈다.
그 친구 덕분에 나는 후에 학교 내 패스트푸드점 Chick Fil a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아랍 친구에게는 슬픈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가 학교에서 어떤 여학생을 좋아해서 고백을 했는데 너무 뚱뚱하다는 이유로 거절을 당했다. 충격을 받은 그는 엄청 다이어트를 해서 거의 자신의 몸매의 반을 줄였고 방학 때 자신의 나라로 돌아갔는데..
우리는 그 친구에게
부모님이 너 살 빠졌다고 엄청 좋아하셨겠다 했는데
그 친구 왈
공항에서 날 보고 부모님이 다 우셨어. 살이 빠져서 어떡하냐고 하시면서 너무 슬퍼하셨어.
아랍의 어떤 나라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 나라는 뚱뚱한 것이 부의 척도이고 매력적인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살이 빠진 그를 보고 부모님은 너무 놀라고 당황하시고 슬퍼하셨다는 거다.
우리가 보기에 그는 극도의 비만이었는데 자기 나라에서는 그것이 부의 상징, 매력이라니..
늘 한국 학생들에 둘러싸여 있던 전 학교와는 달리 GSU에서는 세계 각 곳에서 온 수많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고 나는 매일 그들과 시간을 보내느라 한국어를 거의 까먹을 지경에 이르렀다.
정말 과장이고 거짓말같이 들릴지 모르지만 3개월 만에 한국에 전화를 거는데 한국말이 막 막히는 거다. 3개월 동안 한국어를 한 번도 쓰지 않았더니 정말 한국말이 술술 잘 나오지 않는 이상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 당시 유학생들이 영어를 어느 정도 하느냐의 척도는 꿈을 영어로 꾸느냐는 것이었는데 꿈에 영어를 한다면 하산해도 된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 당시 나는 영어로 꿈을 꿨을까?
나의 꿈같고 즐거웠던 어학연수 10개월도 쏜살같이 지나가고 나는 원래의 계획대로 유럽 배낭여행을 가는 대신 미국 일주를 선택했다. 친구들과 동남쪽 끝에 있는 조지아주에서 서북쪽 끝에 있는 샌프란시스코까지 자동차 일주를 하고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