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덕션을 가지고 있던 우리 회사에서는 영어는 내 친구라는 tv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었는데 어린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출연자 어린이들에게는 각자 영어 이름이 있었는데 매주 수요일 와서 촬영을 했었다.
어느 날 나처럼 서울 광고 카피 아카데미를 수료하신 서영길 선배 피디가 나를 부르더니 영어는 내 친구 프로그램 출연자 중에 나랑 똑같이 닮은 여자 아이가 있다며 나를 불렀다.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들도 함께 모여 있었는데 영길 선배말에 맞장구를 치며 정말 닮았다며 보라고 했다.
나는 나와 똑 닮았다는 선배들이 가리키는 아이에게 눈길을 돌렸는데…
그 아이는 나와 전혀 닮지 않았다.
멜빵바지 차림에 야구 모자를 뒤집어쓴 내 옷차림과는 닮아 있었지만 눈, 코, 입 어디 닮은 곳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나와 그 아이를 번갈아 보며 신기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선배들에게
저 어릴 땐 예뻤거든요!
하면서 씩씩 거리며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나름 어릴 적엔 예뻤다고 자부하는 나에게 그 꼬마 아이는 하나도 예뻐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 꼬마 아이와 나와 닮지 않은 걸 증명하겠다며 다음날 내 6살 적 사진을 회사에 가지고 갔다.
그 사진을 보여 주며 난,
어때요? 하나도 안 닮았죠?
했더니
모여든 직원들은 사진을 집어 들고는 이렇게 외쳤다.
우와! 완전 쌍둥이인데! 엄마한테 가서 혹시 잃어버린 동생 없는지 물어봐! 정말 똑같잖아!
그날 이후로 나의 이름은 쟈스민으로 둔갑해 버렸다. 그 여섯 살 꼬마아이의 영어이름이 바로 쟈스민이라나.
모두들 “쟈스민” 하고 나를 불렀다.
어릴 적부터 작은 키에 워낙 동안이었던 나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이웃분들을 만나 인사를 하면 내가 고등학생일 때는 중학생인 줄 알고 대학생일 때는 고등학생으로 봤다.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 버스를 탈 때도 기사분들은 나에게 반말을 했다.
지금 생각해도 황당한 일화가 있다. 남동생이 6학년 내가 고 3 대학 입시 시험이 끝나 집에서 놀고 있었는데 동생이 도시락을 두고 가서 학교에 도시락을 가져다주러 간 적이 있다.
남동생 친구들이 모여서는 남동생한테 이렇게 외치는 것이 아닌가.
승규야! 너 여자 친구 왔다!
아니 세상에 이 초딩들이 뭐라는 거야. 황당한 표정으로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나와 화가 나서 얼굴이 울긋불긋 해진 동생이 외쳤다.
야! 우리 누나거든!
그런데 동생의 외침을 들은 아이들의 더 황당한 한마디!
어. 너 누나 중학생이야?
그것도 너무나 놀랍다는 표정으로
나의 흑역사를 곱씹으며 여섯 살짜리 꼬마애를 닮았다는 회사 선배들을 100% 원망할 수만은 없었다.
대학교 4년 내내 신입생인 줄 알고 동아리 가입하라며 붙잡힘을 당하기도 했으니…
이렇게 여섯 살 아이를 닮았다는 이유로 쟈스민으로 다시 태어난 나는 우당탕탕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광고계에서 해를 거듭해 가며 생존해가고 있었다.
나는 광고주가 돈이 없다는 이유로, 제작비 부족으로 나의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채 피어나기도 전에 사장되는 경험들이 계속하면서 큰 광고주가 있는 서울로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서울에 있는 광고 대행사, 나의 꿈의 대행사, 제일기획 또는 선배가 있는 LG애드 등 한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광고 대행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스펙을 쌓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