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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에달리 Aug 13. 2022

명랑한 마음

선택적 명량인이 되어도 괜찮다.

명랑하다 : 밝을 명(明), 밝을 랑(朗) 흐린 데 없이 밝고 환하다.


나는 명랑한 편이다. 보통의 여자아이들이 그러듯 깔깔거리며 분위기를 띄우곤 한다. 여기서 명랑함이 문제가 되는 지점이 있다. 바로 보편적 성격을 지녔다는 것이다.


모임자리의 십중팔구는 나와 같은 명랑한 사람이 한 명 더 있기 마련이다. 이때 나는 분위기를 띄울까, 아니면 그 사람이 띄우게 두고 가만히 있을까?

첫 마음은 지지 않고 분위기를 더 끌어야 하지 않을까 여긴다. 힘껏 끌어올린 명랑함으로 더 많이 박수치고, 더 많이 웃는다. 그렇지만 성격상 더 나서지는 못하기 때문에 이 분위기의 주도권을 놓치게 된다. 내가 응당 했어야 할 호응을 다른 명랑인이 하게 되고, 이때 조바심과 조금의 비참함이 들어버린다.



나는 명랑한 사람이기에 내가 제일 먼저, 많이 그리고 순수하게 깔깔거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는 사실이 나를 부정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명랑한 마음을 부정 당하는 이유는 또 있다. 나는 숨김없이 명랑한 사람이어야 하는데, 분명 혼자 있을 때는 명랑했겠지만 다른 사람이 있을 때는 내 명랑함의 숨이 죽는다는 사실이다.


더 나아가 그 역할은 다른 명랑인에게 주는 것이 났겠다는 생각이 들 때, 그리고 더 나서서 분위기를 쟁취하려 노력하고 귀갓길에 지나친 행동을 후회할 때 내 명량함은 순도를 잃는다.


과연 내 명랑한 마음은 몇 점인 걸까?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고 가끔은 숨겨지는 이 마음을 보면 가까스로 60점을 넘는 것이 아닐까?

돌이켜보면 나는 명랑함에 큰 가치를 두고 있기에 안 나서는 것이 늘 불편했다. 항상 100%의 명랑함이 아니어도 괜찮은데 이 명랑한 마음도 경쟁을 하고 있었나 보다.


명랑한 마음은 귀하다. 거짓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정말 보여주고 싶은 자리에서 과하지 않게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명랑함에 점수가 있다면 평균 60점이 아니라 100점과 ‘명랑할 필요가 없음’을 오갈 뿐인 것이다.



그러니까, 명랑인들이여. 선택적 명량인이 되어도 괜찮다.

명랑함이 사그러드는 자리에서는 명랑할 필요가 없다. 아무도 몰랐겠지만 명랑함이 사라진 나의 다른 기질은 아마도 자애로운 마음일 것이다. 자애로움과 명랑함이 대치되지 않나 여길 수 있다. 그렇기에 되려 좋다. 드디어 입체적 인물이 되는 것이다. 자애로울 수 있는 자리에서는 여보란듯이 포용성을 뿌려대면 된다. 그 또한 나의 마음이니까. 


그리고, 드디어 명랑할 수 있는 자리에서는 명랑함을 꺼내보자. 귀하게, 순도 100%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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