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수건은 어쩌면 물기를 닦는 것보다는 혼자됨의 의미였다.
다섯 식구가 함께 살던 우리집은 수건 라인업은 다음과 같다
: 돌잔치의 노란색 수건, 결혼식의 하늘색 수건, 어디 동문회의 짙은 쑥색 수건.
거저 받은 것들이라 그런지 알록달록하고 두께도 제각각이다. 단지 몸을 닦는 용도 그 뿐이었다. 혹여 샤워를 마친 뒤 허름하고 얇은 수건을 잡으면 뽀송뽀송한 기분마저 사라졌다. 머리카락을 닦아내느라 축축해진 수건이 몸의 물기까지는 닦아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섯식구가 매일 쓰는 수건의 양이 상당했기에 말짱한 수건을 버리는 일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끄트머리가 틀어지고도 한참을 더 쓰다가 부모님 새치염색을 하다 얼룩이 묻어야만 반을 뚝 찢어 발 수건과 걸레로 사용했다. 결혼식을 더 가면 갔지, 돈을 내고 수건을 산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혼자 살기 전까지 기념 문구가 적혀 있지 않은 수건을 본 적이 없었다.
흰색, 검정색, 회색으로 통일된 40수에 180g 고급수건 5종 세트. 주거독립을 하고 나서 가장 먼저 산 것은 수건이었다.
수건을 사던 첫 날, 고작 다섯 장에 3만원이 넘는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얇은 수건은 80g짜리 수건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머리카락의 물을 빠르게 흡수하고 기분좋은 두툼함이 필요했다. 120g, 180g, 200g 등. 200g은 너무 비싸서 180g으로 나와 협의를 봤다.
균일한 두께감과 통일된 색상의 내 수건은 어쩐지 우월감을 느끼게 해 줬다. ‘나는 수건도 이런 걸 써’ 아무도 모르지만 나만 아는 작은 행복이었다. 수건장을 보면 같은 색의 수건들이 보였고, 어떤 수건을 써도 똑같이 만족스러웠다. 섬유유연제를 넣으면 수건이 풀이 죽고 납작 해지기 때문에 쓰면 안 된다는 사실도 배웠다.
다섯 식구와 함께 살 때, 젖은 수건에 깨끗이 씻은 얼굴을 닦았던 불쾌함이 있었다. 수건으로 발을 꼼꼼히 닦으며 가족들에게 미안할 때도 있었다.
내 수건은 어쩌면 물기를 닦는 것보다는 혼자됨의 의미였다. 타인에 의해 오염되지 않고, 내가 원할 때 언제나 쾌적함을 유지할 수 있는 5종 세트의 수건을 가지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혼자됨을 느낄 수 있었다. 균일하고 뽀송뽀송한 삶 속에 가끔 빨래를 못해 썼던 수건을 다시 쓰는 것도 포함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