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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밍 Aug 02. 2018

나의 친구 L에게

언제나 나의 글을 가장 먼저 읽어주는 너에게




 그거 알고 있었어? 오늘 서울의 기온은 사십 도가 넘었다더라. 111년 만에 찾아온 기록적인 폭염이래. 



 '111년'이라니. 


 떠올리기만 해도 아득해지는 그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 이 땅 위의 공기가 이만큼이나 뜨거웠던 적이 없었다는 얘기야. 그런데 우리는 이만큼 역사적이고 또 기록적으로 더운 날, 해가 가장 뜨겁게 내리쬐는 시간에 만났어. 가장 더운 날, 가장 더운 시간에, 가장 더운 길을 우리는 함께 걸었던 거야. 이십 분이 넘도록 오르막과 내리막을 넘나들면서도. 짜증이 난다거나 화가 나지는 않더라. 오히려 이 상황이 너무 재밌어서 자꾸 웃음이 나왔어. 네가 듣기에도 참 우습지. 웃음이 터져 나올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던 그 순간이 나는 뭐가 그렇게 재밌었던 걸까.


 우린 우리가 함께 걸었던 4년 전 이탈리아의 여름을 떠올렸고. 그때의 여름날들을 머릿속에서 끄집어내어 이야기했어. 로마만큼이나 덥네-하면서 킬킬 웃고. 그래도 로마보다는 덜 짜증 난다-하면서 빙그레 웃었지.


 지치고 힘든 상황일수록. 네 옆에서는 울음이 아니라 웃음이 나와. 가장 뜨거운 도시의 숨 막히는 공기를 들이마시는 일조차, 네 옆에서는 다 재미있어져. 어쩌면 이미 내가 네 곁에서 너무 많이 울어서 그런 걸까. 정말로 그런 거라면, 이제 우리 서로가 서로의 곁에서 웃는 일들만 잔뜩 남아있기를 바라. 이 울퉁불퉁한 지구를 자꾸 걸어나가면서 자주 넘어지고 부딪치고 아프더라도. 뭐가 그리 재밌냐는 눈초리를 받을 만큼이나 우리가 많이 웃고 즐겁고 행복하기를 바라. 


 네 말대로 다음에는 베를린에 함께 가자. 그곳에서도 우린 엉망으로 웃다가 울기를 반복하겠지만. 그 엉망의 순간들마저 모두 황홀하게 아름다울 거야. 내 옆에 네가 있고, 네 옆에는 내가 있을 테니까. 


 오늘도 고마웠어, 나의 소중한 친구야. 잊을 수 없는 날을 같이 걸어줘서 고마워.


 

 오늘 밤에는 우리 모두 아무런 꿈도 꾸지 말고 푹 잠들기를. 그런 밤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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