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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코치 Sep 06. 2021

서울 토박이의 고된 서울살이

내 나이 어느덧 삼십 대 중반, 서울 금천구에서 태어나 8살 때 잠깐 옆동네 경기도 광명에 살았고 그 후로 평생 금천구에서 쭉 살아왔다. 경기도 광명도 사실상 서울 바로 옆 동네이기에 나는 평생 서울에 살았다고 해도 무관할 정도다.


살아오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가끔씩 직장이나 모임에서 지방에서 상경한 사람들에게 서울에서 태어나 쭉 살았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면 '서울깍쟁이'라는 표현을 듣게 된다.

실제로 제주에서 두어 달 여행 겸 살거나 어릴 적 여름방학 때 외갓집에서 한 달 정도 지낸 것을 제외하면 나는 쭉 서울에서 지냈기에 편의시설이나 대중교통을 갖춘 도시의 특성상 큰 불편함 없이 지낸 건 사실이다. 제주에서 두 달 정도 지낼 때 처음에 적응하기 어려웠던 것은 대중교통 배차시간이 아주 길다는 점,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저렴하게 먹기가 쉽지 않다는 점, 제주시내가 아닌 곳에 편의점은 밤 9시쯤이면 문을 닫는다는 점이었다. 편리한 대중교통, 카페나 식당의 다양성, 24시간 편의점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제주에 잠깐 살며 깨달았다.


삼십 대 초반이던 2017년쯤까진 이러한 익숙한 서울살이가 크게 불편하지 않았던 것 같다. 취업난이 심각하긴 하지만 노력하고 눈 낮추면 갈 수 있는 일자리는 있었고 차가 없어도 어디든 이동이 쉬웠다. 수도권은 당일에도 차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움직일 수 있고, 지방이나 해외 가는 것도 타 지역에 비해 터미널이 잘 되어있고 공항이 가까워 날짜만 계획하면 멀리 떠나는 것도 크게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요새 나는 서울살이에 큰 불편함을 느낀다. 서울에서 평생 살아왔지만 20대 초반부터 기울던 가세는 결국 회복되지 않았다. 어머니는 살던 아파트를 처분하고 남은 돈으로 같은 동네에 조그마한 다가구 투룸을 얻어 내려왔다. 그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성인이긴 했지만 세상 물정을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아파트에서 내려와 낡고 허름한 다가구주택에서 10년을 넘게 살았다. 이곳에서 생활은 아파트에 비해 꽤나 불편했다. 이사를 온 후부터 앉아서 뭔가를 하는 시간보다 누워서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아졌던 것 같다. 이러한 환경의 부작용을 겪는 것에 문제를 느낀 건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전세기간이 끝나는 시간이 올 때마다 집주인이 전세금을 올려달라고 할까 봐 겁이 났다. 다행히 낡고 오래된 집이고 우리가 큰 문제없이 살아서 그런지 집주인이 계속해서 살게끔 해주어서 이사를 하는 수고를 덜긴 했다. 그래도 2년마다 계속 살아도 되는지 물어야 하는 것은 꽤나 불편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집을 산다는 것은 상상을 못 했다. 아파트에서 떠나오던 20대 초반에도 돈이 없는데 집을 산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동산에서 아파트던 빌라던 매매 가격이 붙어있는 걸 보며 '대체 사람들은 이런 가격의 집을 무슨 돈으로 사는 걸까?'라는 의문만 품을 뿐, 방법에 대한 의문을 품지 않았던 것이다. 이상하게도 내 주변에는 집을 사느니 부동산이 어떠니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없었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더라도 아마 내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을 가능성이 높다. 내가 버는 돈으로 집을 산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대출을 끼고 집을 산다는 건 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대출을 하게 되면 이자비용이 발생하는데 고정비를 늘리는 걸 싫어하는 나로서는 꿈도 못 꾸는 일이었다. 그리고 집을 사기 위한 대출금은 억 소리 나게 많은 금액들이었기에 '그 돈을 언제 다 갚지?'라는 생각이 앞서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행동은 나를 직장의 노예로 만들 것 같다는 불안감이 싫어 더욱더 거부감이 갔던 것 같다. 사람의 인생이란 무슨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르고 직장은 자의가 아닌 타의로도 언제든 잃을 수 있지 않은가.



작년까지 엄마와 함께 살았지만 30대가 된 후로 엄마와 함께 사는 것에 불편함을 느꼈다. 확실히 나이를 먹으니 결혼을 해서 나가던 혼자 살던 독립을 하긴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고정비가 늘어나는 것이 싫다는 핑계로 버티고 버티다 작년에 대출을 받아 처음으로 전세로 원룸을 얻어 독립했다.

 

독립 후 삶의 비용이 늘어나긴 했지만 만족감이 상당했다. 엄마와 나눠하던 집안일을 혼자 하게 되어 부담되긴 했지만 이내 곧 익숙해졌다. 오히려 혼자만의 시간이 늘어나 하고 싶은 공부나 독서, TV 채널 선점권 등 좋아진 점이 많았다. 그리고 비로소 진짜 어른이 된 기분도 들었다. 앞으로 차곡차곡 모아 조금씩 나의 집 크기를 늘려가고자 하는 희망을 품었다.


작년부터 재테크 열풍이 불었고 나 또한 평생 쳐다도 안 보던 주식에 입문하기 시작했다. 작은 돈으로 감을 익히다 보니 투자시기가 적절했음에도 큰 수익은 없었고 오히려 무리하게 투자한 종목이 마이너스라 아직 손실 중이다. 이러한 실투는 언젠가 회복될 것으로 생각하고 만약 실패로 끝나더라도 내 인생에 크게 문제 되지 않을 금액들이라 주식실패는 나에게 큰 아픔은 아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 건 이러한 투자활동이 나랑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독립을 하고 나니 예전부터 느꼈던 전세 생활의 불편함을 더는 겪고 싶지 않았다. 그제야 내 집 마련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원룸이 이전 집보다 만족스럽긴 했지만 평생 살고 싶은 곳은 아니었다. 돈을 모아 집을 넓혀가고 싶었던 나는 늦게 시작한 직장생활과 집안 가세에 보탠 이유, 학자금 대출 상환 등으로 큰돈이 있지 않은 현재 상황에서 어떻게 돈을 모아 집을 넓혀갈까 고민했고 부동산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2021년, 내 수중의 자산으로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집을 사기는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고 또 부동산에 대해 잠시 잊고 살았다.


두 달 전, 회사를 이직했다. 지옥철이 싫어 금천구에서 가까운 곳으로만 회사를 구하던 내가 여러 가지 이유로 내가 마음에 드는 회사에 지원을 했고 그 회사는 강남권에 있었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으로 이동해 지하철을 한 번 갈아타고 이동해도 출근시간이 최소 1시간 10분이 걸렸고 어떤 날은 1시간 30분이 걸리기도 했다. 현재는 그나마 코로나 상황이 심각하기도 하고 대학이 방학이다 보니 지하철이 비교적 여유로운 편인데 이따금씩 지하철을 두 대씩 보내고 사람들과 살을 맞대며 타야 하는 지하철을 경험할 수 있었다. 나중에 코로나가 끝나고 정상화가 될 상황을 상상하니 조금 두려웠다. 거기다 현재 비교적 여유로운 지하철 상황에도 긴 출퇴근 시간을 겪다 보니 내 몸이 너무 지쳐한다는 것이 체감되었다.


아직 두 달 다니긴 했지만 회사는 꽤나 마음에 들었다. 회사와 조금 더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사를 하기 위해 조금 알아보는데 지금 사는 원룸보다 별로인데 지금 사는 원룸보다 훨씬 비싸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아침마다 보는 경제뉴스에서는 매일 같이 집값이 오른다 하고 주택담보대출 규제에 들어간다고 한다.







30대 중반이 되고서야 비로소 '다니고 싶은 직장'을 찾아 출퇴근 시간을 단축해서 조금이나마 편하게 다니고 싶은데 현실은 나에게 너무 늦었음을 알려주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게 나의 잘못이라고 자책해야 하는 것일까?


내가 바라는 것은 부동산 투자로 큰돈을 벌겠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서울에서 내가 생활할 수 있는 집에 살며 1시간 이내 거리에서 출퇴근하면서 회사에 노동을 제공하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아 살아가고 싶을 뿐인데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2년 후엔 괜찮아질까? 2년 후엔 월급으로 조금 더 모아놨을 것이고 그때는 영끌해서 집을 살 수 있을까? 아니, 집을 사지 않아도 있는 돈으로 원하는 전세는 구할 수 있을까? 오히려 지금보다 더 열악하고 회사와 먼 곳으로 이사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과거에 대한 집착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보낸 시간들이 아까워 현재에 집중하며 작은 원룸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더군다나 직장까지 이전보다 나은 곳으로 이직했으니 살아온 나날 중 가장 행복한 삶을 살고 있긴 하다. 그러나 서울에서 태어나 쭉 살아온 내가 생전 처음으로 서울생활이 고되다고 느껴진다. 직장생활이나 경제활동을 왜 하는가? 기본적으로 먹고, 자고, 입기 위해 하는 것이다. 의식주와 휴식활동은 인간의 가장 기본이자 매슬로우 욕구단계 이론에 최하위 욕구인 생존의 욕구이다. 9-6로 직장 생활하는 사람이 직장과 가까운 곳에 집을 구할 수 없어 휴식시간이 줄어들고 생존의 욕구 자체도 충실할 수 없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가? 또한, 2년 동안 충실히 벌어서 더 나은 주거공간으로 이사 갈 수 있겠다는 희망마저 꺾이고 2년 동안 모은 돈으로 더 오래되고 좁은 집으로 이사할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이 느껴지는 건 내 망상일 뿐인가?



서울생활, 고되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한다는 자체가 그저 욕심으로 느껴진다. 기본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 세상에서 이러다가 차곡차곡 번 돈으로는 더 나쁜 집으로만 이사 가겠다는 불안에 떨며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마음 편히 살 수 있을까? 매슬로우의 욕구단계 이론에 생존의 욕구는 말 그대로 생존의 욕구다. 생존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다면 생존이 어려워진다는 건 당연한 이치 아닐까?


내 코가 석자이지만 나뿐만 아니라 앞으로 월급생활을 시작할 나 같은 무주택 청년들이 부모에게 받을 재산조차 없는데 돈 벌기 시작하자마자 학자금 대출부터 갚으며 도대체 언제쯤 '이사하지 않아도 될 집'이라는 주거공간을 맘 편히 누릴 수 있을지, 그들이 과연 이 팍팍한 서울생활을 견뎌낼 수 있을지 걱정된다. 결국 서울살이는 앞으로는 '현재 수도권에 집 있는 자'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되지 않을까, 씁쓸하게 생각해본다. N포 세대에 '서울에 집 없어서 서울 직장생활 포기'가 추가될 날이 머지않았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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