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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코치 Sep 30. 2021

아들러 심리학과의 만남

제주 서쪽 어느 카페에서 만난 <미움 받을 용기>

2020년 1월, 제주 서쪽 바다 근처 게스트하우스에서 스탭으로 지내며 제주살이를 하고 있었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가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카카오맵을 통해 숙소에서 30분정도 거리 바닷가에 괜찮은 카페를 발견하고 움직였다. 202번 버스를 타고 수원리 정거장에서 내려 그 카페로 걷는 길은 정말 예뻤다. 그렇게 걸어서 도착한 수원리 바다 또한 환상적이었다

너무 예쁜 수원리의 겨울 (올레길 15-B코스)
수원리의 푸른바다 (올레길 15-B코스)


카페는 바닷길을 걸어 올라가면 나오는 귀덕리에 있었는데 정말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 위치한 북카페였다. 작은 카페에 사람들이 5명정도 있었고 다들 차를 마시며 책을 보고 있었기에 정말 조용했다.


커피를 주문하고 카페를 둘러보니 판매용이 아닌 책들을 읽을 수 있어 둘러보다 시집 한 권을 골랐다.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앉아 고른 시집을 읽었다. 요 며칠 내내 흐리다 모처럼 날씨도 좋고, 조용한 카페에서 시를 읽고 있으니, 기분이 좋으면서도 묘했다. 돌이켜보면 제주에선 평소 하지 않던 행동들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아무튼 그 카페에 있던 순간 순간이 모두 좋았다. 창 밖에 보이는 푸른 바다도, 햇살도, 시집속 글 귀도.


귀덕리 바다가 보이는 북카페, 몇 달전 다시 가보니 폐업한건지 카페가 보이지 않았다. ㅠㅠ

1시간 정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힐링하고 증정도서가 모여있는 곳을 잠시 구경했다. 그 곳에서 예전에 좋아했던 책인 노희경 작가님의 에세이와 무슨책인지는 모르지만 제목이 익숙한 '미움 받을 용기'를 가져오게 되었다. 제목은 참 많이 들어봤는데 읽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심지어 '소설인가?'라는 생각도 할 정도로 정말 '제목'만 익숙한 책이었다.


숙소에서 틈틈히 미움 받을 용기를 읽었다. 철학자와 청년의 대화로 이루어지는 대화형식의 글이라 읽기는 편했는데 내용은 정말 불편하고 역겨웠다. 특히 철학자가 설명하는 아들러의 목적론 개념은 정말 이해가 안되었다. 흥미롭게 배웠던 프로이드의 원인론을 통해 나는 과거의 원인으로 인해 내가 이루어졌으니 나 뿐만아니라 모든 사람은 바뀔 수 없다고 단정짓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나오는 목적론의 예시로 카페에서 웨이터가 손님에게 음료를 쏟았는데 손님이 웨이터에게 불 같이 화를 내는 상황이 나온다. 철학자는 '화가 나서 큰소리를 낸 것이 아니라 큰소리를 내기 위해 화를 낸 것'이라며 목적론을 설명한다. 나는 이 대목을 보며 헛웃음이 나왔다. 이해도 안되고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책 속의 청년처럼 나도 철학자의 말을 계속 의심하고, 이상주의자라고 조소하면서도 이상하게 계속해서 읽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의 나의 인생이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내가 화를 내는게 그 사람에게 겁을 주며 내 뜻대로 조종하기 위한 행동이었다니. 그런 목적으로 화를 낸 거였다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읽는 내내 철학자의 말이 역겨웠다. 살아온 나의 인생과 그동안의 내 사고방식과는 너무 다른 책 속의 내용에 머리가 아득해진 적도 많았다.


처음 접하는 내용들에 이해가 너무 안되서 계속 다시 뒤돌아가며 읽다보니 이 책을 다 읽는데는 꽤나 오랜시간이 걸렸다. 마지막 장을 덮은 건 제주살이를 마무리하고 서울에 돌아와서였다. 그리고 책을 다 읽었을 때도 나의 행동들에 목적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사람들이 그런 목적을 가지고 화를 내거나 이상행동을 한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이상하게 이 책에서 내 인생의 희망을 보았다. 과거의 원인에 귀속되어 나를 바꾸기 어렵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생각들이 조금은 무너졌고 아들러 심리학을 조금 더 알아가보고 싶어졌다. 이상하게 아들러 심리학이 나에게 한줄기 빛 처럼 느껴졌다.


그 후로 나는 아들러 심리학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오거나 인터넷 사이트에서 구매하여 읽는 일이 잦아졌다.


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 - 기시미 이치로

미움 받을 용기 2 -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다케

아들러 심리학 입문 - 알프레드 아들러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 기시미 이치로


이 쯤 읽어보니 더이상은 역겨운 마음이 들지 않고 어느덧 아들러의 사상에 익숙해졌다. 반신반의 하지만 그동안 삐뚤게 살며 딱히 행복하지 않았으니 아들러의 사상을 실천하며 살아볼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사람들을 존중하고 따뜻하게 대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사람들을 존중한다는 건 정말 어려웠고 아들러 사상을 실천하다보니 많은 부작용을 겪었다. 이전과 다른 삶과 사고방식으로 사는 건 상당히 힘들었다. 아들러 심리학에 대해 많은 책을 낸 기시미 이치로는 '아들러 심리학을 알게 된 후 실천해서 자기자신을 바꿔가며 익숙해지기까지 살아온 인생의 절반의 시간이 필요하다' 라고 말했다. 30대 중반이니 약 17년 이상의 시간을 예전과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것에 막막하고 예전처럼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주변 사람 중 아들러는 커녕 '미움 받을 용기'를 읽은 사람이 이상하게도 없었다. 그 사람들 사이에서 정말이지 나만 이상한 사람 되는 느낌이었다.


예전으로 돌아가서 남 탓하고 세상 탓하며 대충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든 기간을 보냈다.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적응하기까지의 기간동안 예전보다 훨씬 힘들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아들러 심리학을 다룬 책을 읽어나갔다.


지금 여기서 행복할 것 - 기시미 이치로

남과 여의 아들러 심리학, 혼자가 편한 당신에게 - 이와이 도시노리

사는 게 용기다 - 기시미 이치로

아들러의 인간이해 - 알프레드 아들러


이 쯤 보니 아들러 심리학이 상당히 익숙해졌다. 그러나 동시에 사람들의 문제행동과 그 목적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아들러는 '아들러의 인간이해'에서 자신의 이론을 사람들을 판단하는 데 쓰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알아가는 데 활용해야한다고 말했는데 어느 순간 사람들을 엄청나게 판단하고 있었다. 판단하는 자체가 나에게 힘겨움으로 다가 왔고 그 판단을 말로 내 뱉는 순간 사람들과 멀어졌다.


그 후로 반 년 정도 다른 분야에 관심이 생겨 그 분야 책을 읽느라 잠시 아들러 심리학을 멀리했다. 나의 문제 행동을 고쳐내기 위한 돌파구처럼 여겨 몰입했던 아들러 심리학에서 사람을 판단하는 부작용을 얻었으니 이 문제 행동부터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다 고쳐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반년 전보다는 나은 상태인 것 같다.


이제는 잊어먹지 않기 위해 한 번씩 아들러 심리학 책을 읽어본다. 최근 힘겨워진 나를 위해 아들러 심리학을 다룬 두 권의 책을 찾아서 읽었다.


나답게 살 용기 - 기시미 이치로

나를 인정하지 않는 나에게 - 박예진



아들러 심리학을 만난지 약 20개월 정도 된 것 같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실천한지도 그 정도 된 것 같다. 사람을 판단하는 부작용을 얻었고 주변에 남 탓, 회사 탓, 세상 탓을 하며 세상을 부정적으로만 보던 사람들과의 관계를 잃었다. 내가 너무나도 변해버렸기에 그 사람들과 예전처럼 대화를 나눈다는 게 불가능해졌다. 또한 현실감각도 떨어졌다.


알면 알 수록 사람들의 단점이 눈에 잔뜩 보여서 너무 힘들고, 그동안과 지금도 문제행동을 하는 내 자신이 죽도록 미워지며 어떨 때는 아들러 심리학을 실천하는 내가 정말 호구 같고 이게 진짜 나에게 맞나? 의심한다. 그리고 그동안 알던 사람들과 예전처럼 대화를 나눌 수 없으니 미치도록 외로워졌다. 아직도 순간순간 예전으로 그냥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뒷담화 하며 쉽게쉽게 마음을 풀고 남 탓 하며 나를 합리화 하던 그 때로.


여러 부작용이 있고 언제든 포기하고 돌아가겠다고 선언할 수도 있지만 아직은 아들러 심리학을 실천하는 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힘들었던 20개월, 아직도 미완성이다. 17년을 실천하고 살아야한다니 20개월은 너무 짧은 기간의 실천이었다. 그러나 20개월 전의 나보다 현재의 나는 그 때보단 행복해졌고, 그 때보단 타인의 과제와 나의 과제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 때보단 왜 살아야하는지 조금은 알겠고, 그 때보다는 삶의 의미가 생겼다.


어쨌든 아들러 심리학이 나의 인생을 바꿔 놓은 것은 분명하다. 지금도 많은 부작용을 겪고 있지만 계속 적으로 나아질거라 믿으며 지금의 부작용을 이겨내보려한다. 누군가 나에게 말해줬다. 아들러 심리학이 인생의 답은 아니니 이 것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지말라고. 맞는 말이다. 어찌보면 이상을 실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에게 아들러의 심리학은 이상이 아니다. 실천하면서 하루하루 어제보다 조금씩이라도 성장하는 내가 보이고 예전처럼 부정적이지 않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사회공헌을 하고 있다는 걸 이해할 수 있었고 내가 하는 일들에 의미가 생겼다. 다른 사람들 또한 각자의 자리에서 사회공헌을 하고있다고 여겨지고 그러한 각자에 공헌에 감사하다. 이러한 점이 나에게 예전과는 다르게 행복으로 다가온다.  


혹시나 나처럼 아들러 심리학을 실천하면서 현실의 벽에 부딪혀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들이 나의 글을 보며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남긴다. 앞으로는 그동안의 실천 과정과 부작용, 그리고 향 후 나의 변화를 계속적으로 남겨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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