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코치 Oct 11. 2021

내 사랑 아이스아메리카노

얼어 죽어도 아이스아메리카노!

한국사람들의 아이스아메리카노에 대한 사랑은 대단하다.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겨울에도 추위와 맞서면서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고집한다.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아메리카노!)라는 표현은 이제 대중적이다. 나 또한 얼죽아로써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파가 오나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들고 차가운 겨울 바람과 맞설 땐 내가 괜시리 미련하게 느껴지곤 한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얼죽아라고 말하며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즐긴다. 지금은 아닐 수도 있지만 몇 년전 지인에게 들은 바로는 유럽 몇몇 나라에서는 카페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팔지 않는다고 한다.(나는 유럽에 가본 적이 없다...) 그 곳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찾는 건 대체로 한국 사람이라고 한다.


내가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사랑하기 시작한 것은 약 11년 전, 학교 앞 카페에서 천원에 팔던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등교길에 매일 사가면서부터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안마신 날이 손에 꼽힐지도 모른다. 이젠 아침에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건 일상의 의무가 되어버렸다. 눈 뜨면 커피마실 생각부터 한다. 


큰 용량의 커피를 빨대 꽂아 아낌없이 들이키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커피 맛 보다는 양, 그리고 저렴한 커피를 선호하는 편이다. 커피가 땡길 때 빽다방이나 메가커피를 발견하면 그렇게 흥분된다. 제주살이를 할 때는 싸고 양 많은 왕커피 구경이 어려웠었다. 3000원 ~ 8000원 하는 커피를 아낌없이 들이키는 것은 뭔가 죄책감이 들어 내 스타일대로 마실 수 없어 조금 아쉬웠다. 그러다 한 번씩 제주시내를 나가서 메가커피를 발견하면 어느새 주문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빨대로 쭈욱~ 크게 빨아들이고나면 그렇게 만족스러웠다.


해가 떠있다면 아이스아메라카노!


해외여행을 처음 갔을 때 처음이다보니 패키지를 이용했는데 내리자마자 커피를 마시지 못해 아주 패닉상태였다. 오후 무렵에야 잠깐의 자유시간이 주어져 시장에서 사 마신 아이스아메리카노는 정말 꿀맛이었다. 그 후로도 자유롭게 커피 마시기가 어려웠고 특히 아이스아메리카노는 더욱 그랬기에 이후 외국에 갈 때는 아이스아메리카노 캔커피를 캐리어에 챙겨가곤 했다. 한국인이 많이 가는 나라에선 '아이스아메리카노'로 주문해도 어느정도 알아듣곤 한다. 그래도 혹시 몰라 그 나라의 '아이스아메리카노'라는 말을 외워서 갈 때도 있었다. 그러나 외워가도 막상 가면 말이 나오질 않아 대체로 "아이스커피, 노슈가, 노밀크"라고 말하면 내가 원하는 커피를 주문할 수 있었다.


(왼쪽) 사이판, (오른쪽) 태국 / 아이스아메리카노 팔아주셔서 감사합니다 ㅠ_ㅠ

요새는 하루에 두 잔 정도 마시는데 용량이 500ml 정도 되는 커피를 두 잔 마시는 거라 마시는 양이 상당하다. 많이 마실 때는 4잔까지 마시곤 했다. 하루에 커피를 2L씩이나 마셨던 것이다. 사실 지금도 2L 이상도 마실 순 있지만 수면을 생각해서, 그리고 카페인 중독 현상이 불편해서 평소 2잔, 더 땡기는 날 가끔씩 한 잔 더 마신다. 보통 오후 3시 이후에는 수면에 영향을 끼치다보니 안마시기 위해 노력한다. 사실 하루종일 안마시면 더 잘 자겠지만 하루 내내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만나지 못한다는 건 나로썬 불가능하다!


아이스아메리카노를 곁에 두고 일을 하고 책을 보고 산책을 한다. 가끔 카페에서 시켜놓고 글을 쓰기도 한다. 싸고 양 많은 커피를 선호하다보니 커피맛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 '커피를 좋아한다.'라는 개념으로 가려면 커피의 맛, 향을 즐기는 것이 어찌보면 필수 같은데 내가 좋아하는 커피는 '양 많고, 시원한 것'이다. 아이스아메리카노에서 향을 느끼긴 어렵다. 문득 맛도 향도 즐기지 않는 이 커피를 왜 마시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내가 가장 오랫동안 직장인 생활을 했던 '구로디지털단지'에는 수많은 건물이 있는데 그 건물들에 카페가 없는 건물은 없다. 어떤 건물에는 4~5개의 카페가 1층에 몰려있기도 하다. 그런데도, 카페에는 항상 커피를 주문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직장인들의 커피사랑은 엄청난 것 같다. 나 또한 그러한 직장인 중 한 사람이다.


출근하고 아침부터 오후 3시까지는 아이스아메리카노가 항상 곁에 있다. 일하면서 한 모금씩 마시다보면 2잔의 커피를 보통 3시쯤까지 마시곤 한다. 이러한 행위는 커피를 음미한다는 느낌이 결코 들지 않는다. 그냥 옆에 두고 목을 축이는 용도랄까. 그리고 커피에 들어있는 카페인은 어찌보면 직장인의 동력과도 같다. 직장인 뿐만아니라 음악 등의 무언가를 작업하는 사람들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즐겨 마신다고 한다. 아마 나처럼 책상에 올려두고 마시면서 작업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업무책상에 자주 함께 있는 아이스아메리카노 (점심시간에 왼손필사 하다가 찍은 거라 괜히 부끄..)


커피의 맛과 향을 음미하기 어려운 아이스아메리카노는 '빠르고 바쁜'느낌이다. 직장인과 작업인의 부스터같은 느낌이랄까. 그래서인지 바쁜 직장인들에게 유독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함께 일했던 회사사람들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즐겨마시는 듯 했다. 아이스아메리카노의 쓴 맛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이스라떼나 다른 아이스커피를 곁에 두고 마시며 작업을 하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었다. 어쨌든 아이스아메리카노는 '바쁘게 사는 나'를 대변하는 것만 같은 음료이다.


그리고 우유가 체질에 잘 안맞아 속이 안좋아지기 때문에, 단 것을 선호하지 않아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좋아하는 것 같다. 한 때는 유독 아이스아메리카노만 고집했지만, 1년 전 부터는 우유가 들어간 커피들을 가끔씩 마시곤 한다. 아주 추운 날이면 따뜻한 라떼도 가끔씩 찾곤 하는데 1년에 1~2번 정도다. 이마저도 오후에나 가끔 마신다. 모닝커피는 무조건 아이스아메리카노다.


정신없이 달려야 하는 직장인을 위한 부스터, 우유를 잘 못먹고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딱 맞는 커피이기 때문에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달고 사는 것 같다. 카페인의 힘인지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뭔가 충전되는 기분이다. 간혹 쓴 맛에 커피를 무슨 맛으로 먹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이 쓴 맛을 왜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 굳이 표현하자면 무겁지 않고 가벼운 느낌이고 텁텁하지 않고 깔끔한 느낌이다.


아이스아메리카노와 함께한 11년 동안 삶에서 여유로움을 느껴본 적이 드물다. 요새는 나를 돌보고 휴식하기 위해 노력하다보니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는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커피를 여유롭게 마신 적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의 향과 맛과 색을 느끼며 여유를 즐겨본 적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바쁘게 정신없게 돌아가는 세상속에서 시원한 부스터가 필요해서 가벼운 느낌의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달고 살았던 건 아닐까. 실제로 금요일 오후에는 종종 카페라떼, 카페모카, 아인슈페너, 크림라떼 등 평소와 다른 커피를 주문하곤 하는데 달아서 그런지 아이스아메리카노처럼 쭉쭉 마시기는 어렵다. 일하면서 주문해 놓은 커피를 마시는 여유 따위는 부릴 수 없는 사치와 다름없기 때문이 아닐까. 이러한 커피의 맛을 즐기려면 가만히 앉아서 그 커피의 맛을 온전히 느껴야 하는데 일하면서 그런 여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최근 코로나 백신을 맞기 위해 휴가를 냈던 날, 오후에 집근처 카페에서 크림라떼를 주문해 잠시 앉아있다 왔다. 평일 주간이라 한산한 카페에선 듣기 좋은 피아노 곡이 흘러 나왔다. 스마트폰을 보던 걸 잠시 멈추고 음악과 커피를 즐기려고 했으나 그 자체가 익숙하지 않아 툭하면 듣던 음악을 놓치고 천천히 커피 마시는 게 어색하게 느껴졌다.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않았는데도 온전히 커피와 음악을 즐기기 어려웠다.


조금이라도 여유로워지고 나를 위한 시간을 갖고자 노력할 때는 주변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해서 깜짝 놀랐다. 오피스텔 휴게공간에 핀 꽃들이 보이고 맑은 하늘에 예쁜 구름들이 눈에 보이고 지나가는 커플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짓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이러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면 어쩐지 마음속에서 행복감이 생겨나곤 했다. 그리고 언제나 항상 곁에 있는 것일텐데도 그동안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이 아이러니 했다. 그제서야 행복은 마음의 여유에서 오는 것이라는 것을 조금은 깨달은 것 같다.


요새 또 다시 마음의 여유를 잃었는지 정신이 번잡해지고 주변이 보이지 않는 아이스아메리카노 같은 삶을 살고있다. 정신없고, 바쁘고, 힘겹다. 이럴 때 일수록 시간을 내어 나를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주말에는 카페에 가서 평소 마시지 않는 따뜻한 커피를 주문해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함께 여유를 즐겨야겠다. 나를 위한 시간을 의식적으로라도 내어주며 바쁘고 힘들고 지친 나를 보듬어줘야겠다.



여담. 아이스아메리카노 with cake!!! > _<


달달한 케익과 먹는 아이스아메리카노는... 바쁜 느낌이랑은 또 다르긴하다. ㅋㅋ


작가의 이전글 아들러 심리학과의 만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