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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코치 Nov 01. 2021

나는 왜 크랙실버를 좋아하는가

사진=JTBC ‘슈퍼밴드2’



지난 10월 4일 종영된 JTBC의 슈퍼밴드2는 밴드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과 달리 보컬뿐만 아니라 악기 연주자들도 나오는데, 매 라운드마다 서로가 원하는 포지션으로 팀을 이루어 밴드 음악을 선사한다. 2년 전 슈퍼밴드1 또한 흥미롭게 보았고 종영 후에도 꽤나 슈퍼밴드 앓이를 했었다. 작년까지도 슈퍼밴드2가 언제 할까 기다렸는데 사는 게 바쁘다 보니 잊고 지낼 때쯤 슈퍼밴드2가 시작했다. 분명 실력 있는 뮤지션이 대거 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는 게 고단했던 나는 그들의 음악에 큰 감동을 느낄 수 없었다. 어느 뮤지션에게도 마음을 기대지 못했지만 전작의 감동을 다시 느끼고 싶었기에 의무감으로 시청했다.


이런 나의 지치고 메마른 감정을 처음 두근거리게 해 준 무대는 크랙샷의 '난 괜찮아'였다. 워낙 많은 가수들이 커버하는 명곡이다 보니 별 기대 없이 들었는데 오, 듣는 것뿐만 아니라 보는 재미가 있었던 무대였다. 보컬 빈센트의 표정과 연기, 기타리스트 윌리K의 한쪽 다리를 펴고 앉아서(?) 치는 솔로 부분에서 이상하게 예스러움을 느꼈는데... 그 자체가 이상하게 웃음이 나면서 감동이었다. 슈퍼밴드2에서 처음으로 메마른 나의 마음을 움직인 무대였고 그 후로 우울할 때 한 번씩 찾아보는 무대가 되었다.


의상도 퍼포먼스도 내 스타일 아닌데 눈을 뗄 수 없었던 크랙샷 - 난 괜찮아 무대 / 출처 JTBC Entertainment

https://youtu.be/3TVflKv9JjI

빈센트팀(크랙샷) - 난 괜찮아 / 출처 JTBC Entertainment 유튜브 채널

(글에 넣을 이미지 만들려다 또 몰입해서 봐버렸네... 언제쯤 질리려나..ㅋㅋ)


이 무대 이후로 4~50대 아재들의 향수를 일으켰다고 한다. 나는 30대 중반의 솔로녀인데 4~50대 아재들이 느끼는 마음과 비슷한 마음을 느꼈을 것 같다. 메탈을 좋아한 적은 없지만 메탈리카 노래에서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느낌을 찾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메탈리카뿐만 아니라 메탈 자체를 좋아한 적이 없다. Rock 음악을 좋아하긴 하지만 깊은 지식 없이 그냥 듣는 걸 좋아하는데 MUSE, Keane, Greenday를 좋아하긴 한다. 정말 딱 음악만 좋아해서 이 밴드들 멤버의 이름 조차 모른다. 여하튼, 내가 가끔씩 들으며 좋아하는 밴드들의 느낌과 크랙샷 음악은 다른데.. 내가 느낀 건 향수는 아니었을 것 같고 그냥 신선함이었을까?


이후로 크랙샷 무대를 기대하면서 봤고 <달의 몰락>에서는 나의 메마른 감정을 건드리진 못했지만 윌리K의 오카리나 연주와 장난감 총으로 웃음을 준 부분에서 '이 밴드는 무슨 밴드일까?' 궁금해졌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퍼포먼스를 ㄷㄷ 빈센트팀(크랙샷) - 달의 몰락 / 출처 JTBC Voyage

https://www.youtube.com/watch?v=zYiLWMos2B0&t=551s

빈센트팀 <달의 몰락> / 출처 JTBC Voyage 유튜브채널

다음 무대부터는 크랙샷의 베이시스트인 싸이언이 잠시 다른 팀에서 연주하고 피아니스트 오은철이 합류했다. 이 팀을 오은철에 '오'를 따서 '오랙샷'이라고 불렀다. 이들의 무대 <Oops, I Did It Again>에서 한 번 더 홀라당 빠져버렸다. 시즌1에서 '퍼플레인'을 가장 좋아했던 나는 크랙샷에 피아노가 들어오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었는데 나의 궁금증을 해소시켜 주었다. 이 후로 나의 원픽은 크랙샷! 그리고 오은철이 함께 해줬으면 했다. 다른 뮤지션들이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른 뮤지션 분들 또한 너무 잘해주셨고 감동적인 무대를 선사해주셨다. 하지만 내 마음속 크랙샷이 너무 큰 자리를 차지해 다른 뮤지션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나질 않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o1Vbq-YkVUU

윌리K팀(오렉샷) - Oopls I Did It Again / 출처 JTBC Voyage 유튜브 채널

슈퍼밴드 출연 뮤지션의 스토리가 많이 나오는데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스토리는 크랙샷 보컬 빈센트의 일식 요리사라는 직업이었다. 실제로 그는 일식을 아주 좋아하는 것 같은데 일식 요리사와 병행하며 하는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허술함이 없었고 그것이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다가왔다. 나는 과연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일과 병행하며 할 수 있을까.. 물론 빈센트 말고도 다른 뮤지션들도 다른 직업으로 돈을 벌며 음악활동을 이어나가고 있겠지만 그의 이야기가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쁘고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느라 본방 챙겨볼 여유가 생기질 않았다. 억지로 본방을 챙겨본다 해도 마음을 잡고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슈퍼밴드만큼은 집중해서 보고 싶었기에 정말 시간이 날 때 챙겨봤고 월요일 본방송을 빨라야 주말에 챙겨보게 되었다. 오랙샷의 다음 무대는 2NE1의 <Fire>였고 평이 좋지 않았지만 나는 좋았다. 두 번째 봤을 때도 좋았다. 그 후 드디어 싸이언이 돌아오면서 이들 다섯 명은 '크랙샷'에 오은철의 '은'을 합쳐 '크랙실버'가 된다.


<CRAXIVER> 싸이언, 오은철, 빈센트, 윌리K, 대니리 / 출처 JTBC

크랙실버 무대를 기대했음에도 바쁜 나날에 치여 내가 그들의 무대를 처음 본건 종영 후 한참 지나서인 10월 22일이었다. 이미 우승자가 탄생했을 테지만 찾아보지 않았다. 주변에선 슈퍼밴드2를 보는 사람이 없어 나에게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다. 10월 4일에 우승자가 나왔는데 나는 그 전주의 방송한 무대를 22일에나 본 것이다. 그만큼 그 기간에 나는 슈퍼밴드2를 온전히 시청할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드디어 마음을 다잡고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어 그들의 무대 <Home Sweet Home>을 보게 되었다. 이 무대를 보고 난 후 나는 정말 설명하기 힘든 감정을 느꼈다. 벅차오르고 감동적이었다. 그들의 음악에 대한 진심이 느껴졌다. 이 무대는 그들이 그동안 겪어온 모든 음악인생이 담겨있는 것만 같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LL1HU4ery5w

CRAXILVER - Home Sweet Home / 출처 JTBC Music 유튜브 채널


이 무대 이후 우승팀이 궁금해졌고 검색해보니 크랙실버가 우승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역시.. 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5팀 또한 엄청난 팀이었기에 의외이기도 했다. 결선에 오른 6팀 모두가 우승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고 다들 막강했다. 그런데도 우승을 크랙실버가 했다는 것은 그만큼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 또한 크게 취향도 아닌 그들의 노래를 이렇게까지 좋아할 수 있다는 것에 많은 의문이 들었다.


마지막 최종 결선 2라운드는 이미 결과를 알고 보는 것이었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봤다. <Home Sweet Home>이 어찌 보면 의외의 필살기였다면, 마지막 무대는 그들이 그동안 했고,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음악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왕이면, 나는 잘 모르는 그들의 진정한 메탈을 보여줬으면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77awkPj0vQE 

CRAXIVER - Time To Rise / 출처 JTBC Music 유튜브 채널


그래 이거구나, 그래 이거야.

나는 만족했다.




이후 모든 채널을 동원해 크랙샷, 크랙실버의 정보를 찾고 크랙샷의 기존 노래를 듣기 시작했다. 덕질. 오랜만이다. 어릴 때처럼 열정적으로 하고 있진 않지만 이렇게나 나를 움직이게 해 준 연예인(?)은 실로 오랜만이다. 슈퍼밴드2 심사위원 윤상님이 말한 것처럼 이 팀에 설득당했고 이상순님이 말한 것처럼 이 팀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겠다. 그 설득당함이 무엇인지 모르겠고 판단할 수 없어 그저 고맙다.


메탈도 모르고 이들의 메이크업도 사실은 불편한 내가 이 사람들을 이토록 좋아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요새 자극을 멀리하고 독서, 명상, 요가 같은 정적인 활동을 주로 하며 이러한 활동을 즐겁다고 여기는 내가 이들의 음악에 반응하고 있는 걸 보면서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이들을 좋아할까. 이들에게 왜 내 마음이 움직일까. 도대체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은 어떤 걸까.


일주일 동안 시간 날 때마다 그들의 무대를 반복해서 보고 예전에 발매한 앨범들도 듣고 그들의 인스타 보며 행복해했다. 그리고 내가 왜 그들을 좋아하는지 그들에게 내 마음이 응답한 이유를 일주일 넘는 고민 끝에 이들에 대한 내 마음을 글로 정리해보고 있다. 글을 쓰면서도 참 행복하다.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해 준 그들에게 고맙다.




내가 크랙실버를 좋아하는 이유는..


1. 나는 '메탈'이라는 장르에 국한하기보다 그저 크랙샷, 크랙실버의 음악이 좋다

- 메탈이라는 장르에 나 또한 선입견이 있었던 것 같다. 올드하고 시끄럽다고 느꼈다. 내가 좋아하는 Muse는 메탈은 아니었기 때문에(물론 내가 듣기에 데시벨은 거의 메탈급이지만..) 내가 메탈을 좋아할 거라 상상도 안 해봤던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나도 모르는 나를 발견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렇다고 기존의 메탈을 찾아 들을 정도는 아니지만 나는 메탈, Rock이라는 장르에 국한하기보다 그저 크랙샷, 크랙실버의 음악을 좋아하는 것 같다.


2. 그들의 음악에 진정성이 느껴진다.

- 장르를 떠나 난 그들이 진정으로 이 음악을 사랑하고 진정으로 해나가고 있다고 느꼈다. 이러한 진정성이 나의 마음을 움직였으리라 생각된다. 모든 무대에 진심인 그들. 여러 기록들을 찾아보니 슈퍼밴드 나오기 전부터 그랬던 것 같다. 관객 수에 상관없이 항상 최선을 다한다고 한다.


3. 애초에 Rock을 좋아했던 나

- 깊게 파고들진 않았지만 과거 Rock 음악을 꽤나 열심히 챙겨 듣고 최근에도 Muse가 생각나 챙겨 들었던 것 보면 나는 이러한 음악을 좋아하는 것이다. 길을 걷다가도 한창 듣던 Rock이 들리면 멈칫하곤 한다. 이러한 음악에 내 귀와 가슴이 반응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된다. 슈퍼밴드 시즌1에서도 퍼플레인을 열렬히 응원했던 것은 분명 취향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슈퍼밴드챙겨 봤다는 것도 취향이라는 것.


4. 내가 평소 좋아하는 활동이랑 너무 다른 느낌인데?! 그냥 양쪽 다 좋다.

- 자극을 멀리하고 정적인 활동들로 마음을 다스리고 있지만, 사실은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고 바라는 나. 크랙실버, 크랙샷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참 좋다. 살아있는 기분. 약 1년 정도를 명상이나 요가, 독서 같은 활동만 하며 살았기 때문에 크랙실버의 음악이 취향으로 훅 들어와서 사실 깜짝 놀랐다. 이 반대되는 취향을 겪으며 도대체 나의 성향과 취향은 무엇인가?라는 혼란스러운 의문이 생겼다. 그리고 그 혼란 속에서 내린 결론은 둘 다 내 취향이라는 것이다. 명상, 요가, 독서 같은 정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이 메탈 싫어하라는 법 있나~!


5. 나 대신 소리쳐준다는 느낌

- 또한 한편으로 명상, 요가, 독서는 좋아하긴 하지만 필요에 의해서 하는 것. 내 안에 억누르고 있는 것들을 나 대신 소리쳐주는 그 느낌. 그 느낌이 나를 대변해주는 느낌이라 그들을 이렇게까지 좋아하고 응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6.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

최근 나는 나의 직업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이들은 투잡을 하던 뭘 해서라도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을 내려놓지 않고 지금까지 해왔다. 쉽지 않은 현실에도 메탈에 고집해온 그들에게 많은 것을 느꼈다. 나는 현실에 순응하며 싫어하는 일을 좋아한다고 착각하며 살았는데 그들은 힘든 환경 속에서도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유지해온 것이다. 그 결과가 지금에 이른 것을 보는 자체 만으로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감동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생업을 유지하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나 자신도 모르는 나를 바라보며 그들의 삶을 진정으로 부러워하고 존경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계속해서 나를 찾아가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에게도 그들처럼 좋아하는 일을 찾아 내 열정을 바쳐하게 될 날이 오길 바라며.



크랙샷, 크랙실버를 좋아하는 사람들. 많은 사람들의 잠자고 있던 향수를 꺼내어줬다는 그들의 음악. 나에게 그러한 향수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향수가 아니어도 분명 나의 마음속 무언가를 건드려준 건 분명하다. 나의 알 수 없는 마음을 정리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했지만 나처럼 '내가 왜 이들을 좋아하지?'라고 의문이 든 사람이 있다면 나의 정리 글에 일부에서 조금은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이 글을 남겨본다. 또한 가능하다면 잠 안 오는 밤 크랙실버의 멤버들이 나의 팬심이 가득 담긴 이 글을 읽어주는 것도 참 기쁘겠다. 삶에 찌들어 메마르고 영혼 없이 사는 나에게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이 벅찬 감정, 일주일 넘게 지속되고 있다는 것에 정말 감사하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준 크랙실버에게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


https://www.youtube.com/watch?v=ZwQLNwrW1Y8

중간에 빼먹은 윌리K팀(오렉샷) - Fire / 출처 JTBC Music


#크랙샷 #크랙실버 #크랙커스 #슈퍼밴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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