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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코치 Jan 14. 2022

1. 일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기

예전에 TV에서 본 어느 국숫집 사장님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저는 국수 안 좋아하는데요."

물론 좋아하지 않는 메뉴를 실력과 손님을 위한 마음으로 맛있게 요리할 수도 있겠지만 자신이 좋아하지도 않는 음식을 만들어 판다는 걸 알게 되면 딱히 먹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든다.


조금 극단적이긴 하지만 직장인의 직무에 대입해보면

마케터가 "저 마케팅 안 좋아하는데요."

개발자가 "저 개발 안 좋아하는데요."


이렇게 자기 직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당당히 말하는 사람은 회사에서 뽑지 않는다.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선 지원하는 직무를 내가 얼마큼 좋아하는지 어필해야만 한다. 나의 직무를 내가 좋아하지 않더라도 좋아하는 척이라도 해야 회사에 입사할 수 있다. 그렇게 좋아하는 척을 통해 면접관을 속여 입사는 할 수 있어도 좋아하지 않는 직무를 하며 회사 생활을 버티는 건 아주 고달픈 일이라는 것을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잦은 이직으로 5년 동안 총 4곳의 회사에 입사했다. 그중 3곳은 기본이력서를 100개 넘게 돌려 나를 써주겠다고 하는 회사에 입사했다. 멋모르던 신입 때는 그저 회사생활을 한다는 자체가 좋았다. 1년 정도 지나니 신선함이 사라지고 힘들어졌다가 경력 3년이 넘어가니 나름대로 일에 익숙해져 일을 잘하니 내 일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세 번째 회사에선 많은 업무적 성장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렇게 매일 같은 현타와 잦은 번아웃에도 불구하고 나의 일을 덕업 일치라 여기며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리고 마지막 번아웃에서 회복되지 못하고 결국 또 이직했다.



그 후로 1년 정도가 지난 지금, 나는 내 일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나의 일을 사랑한다는 착각 속에서 살아왔던 것이다.


네 번째 회사인 지금 회사에 오기 위해서 포트폴리오에 일에 대한 나의 사랑을 구구절절 써냈다. 그 당시엔 써내는 것들이 진심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착각하지 않으면 지금의 일을 계속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지금의 일을 하지 않으면 나의 먹고사는 문제가 틀어지기 때문에. 나 자신을 속여서라도 내 일을 사랑해야만 했다. 그리고 당시엔 내가 이렇게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진짜 사랑이라 착각하며 문득문득 지금 하는 일이 싫다는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나를 비난했다.


'좋아하는 일 하면서 왜 이렇게 힘들어해?'

그렇게 항상 일이 싫다는 감정을 꾹꾹 눌러버렸다.


착각 속에 일을 사랑하는 나는 왜 회사일이 이렇게 버거운지 알고 싶어 했다. 진단검사, 성향 검사, 강점 검사 등 여러 검사도 진행해보고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그러다가 '일을 사랑한다.'라는 착각 속에 빠져있는 나를 발견했고 동시에 크나큰 좌절감과 알 수 없는 편안함이 느껴졌다.


자기 자신을 속이고 합리화하면서까지 일을 좋아한다는 착각 속에 살아온 내가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그리고 그 착각 속에서 기어 나와 일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니 편안해졌다.





내가 왜 이런 착각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지 객관적으로 정리해보고 싶었다.


1. 애초에 이 일을 하기 위한 시작부터 그저 먹고살기 위한 것이었다. 내가 어떠한 이유로 이 직무를 좋아하는지에 대해선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채 그저 '좋아한다.'라고만 세뇌시켰다. 그러한 세뇌가 학습이 되어 진실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2. 이 일 말고 다른 일을 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으니 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해야만 했다. 다른 일을 한다면 지금만큼 돈을 벌지 못할뿐더러 무엇보다 할 줄 아는 것도 없었다. 결국 다른 것을 시작하기엔 리스크가 너무 크고 현재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3. 이미 한 번의 직업 실패가 있었다. 유아교육과를 졸업하고 유치원 교사가 되었지만, 그때도 맞지 않는 일이라며 교사생활을 짧게 마쳤다. 어떻게 만들어 낸 지금의 업인데, 또 안 맞는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어떻게든 좋아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4.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연차휴가, 점심식대 해결, 주말 공휴일 쉴 수 있는 것 등등 직장인으로서 누리는 것들을 포기하기 어려웠다. 이렇게 돌아보니 직장인이 왜 이렇게 힘든 일인지 이해가 되었다. 직장인에 가장 큰 장점은 안정감이었다. 나 자신을 잃어가고 수동적으로 변하는 것을 감수하면서 달콤한 안정감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이런 이유로 그동안 스스로에게 억지 사랑을 강요했던 것에 너무나도 미안해졌다. 안쓰럽고 불쌍했다. 인정하고 나니 해야 할 것이 생겼다.


'일단 회사에 다니며 이번에야 말로 내가 원하는 직업을 찾아보자. 먹고살기 위해 돈 벌어야 해서 뭐라도 하는 게 아닌, 내가 좋아하면서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일을. 어차피 내가 아무리 버틴다 해도 직장생활을 얼마나 오래 하겠어? 리셋을 빨리할 수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 몰라.'


해야 할 일이 생겼지만 막막했다. 현실의 벽도 무섭고 또다시 새로 직업 훈련해야 한다는 것도 두려웠다. 무엇보다 지금 시작해서 자리 잡을 수 있는 일이 과연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일이 있긴 할까? 의심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그래도 해야만 했다. 지금 하는 일로 10년 후는커녕, 1년 후의 내 모습이 어떨지 아무리 생각을 해도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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