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내가 원하는 일을 찾기 위해 나부터 알아가기
두 번이나 '먹고살기 위해 돈 버는 일이면 아무거나.'라는 생각으로 직업을 고르고 실패를 했으니 이번에야 말로 '내가 원하는 일'을 찾아야만 했다. 아마 이런 실패는 고등학생 때 내가 하고 싶었던 일에 아버지의 반대가 있었던 영향과 실제로 그 하고 싶었던 일을 현실 때문에 나 스스로도 포기하고 살았던 영향이 컸을 것 같다. 돌아보면 정말 그 일을 하고 싶어 했나? 싶기도 하다. 진짜 하고 싶었으면 누가 반대하던 어떻게든 했었을 텐데. 어쨌든 직업의 결정에 있어 신중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그야말로 아무 생각이 없었다.
이런 실패는 인생의 큰 실패라면 큰 실패라 할 수 있겠다. 직업은 인생에 아주 중요한 부분이니까. 큰 실패의 경험을 통해 지금이라도 '내가 원하는 일'을 찾으려는 마음을 먹었으니 그동안의 과정은 나름 의미가 있는 것이겠다.
신기하게도 그토록 사랑하는 줄 알았던 일을 '사랑하지 않는다.'라고 인정하니 오히려 일이 잘 되는 것을 경험했다. 혼란스럽던 마음이 멈추니 업무에 집중할 수 있었다. 다만, 영혼을 담아 일하는 것은 예전처럼 되지 않았다. 억지로 하지 않았고 적당히 했다. 어찌 보면 이게 직장인의 마인드고 직장생활을 잘하는 사람들의 비결일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성과와 연봉 인상의 욕심을 버리니 또 직장인만큼 좋은 것도 없구나 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래도 이 편한 마음에 안주할 수 없었다. 내가 어찌어찌 마음 관리해서 성과와 연봉 욕심 버리고 10년을 다닌다고 가정하면 10년 뒤에는 집에서 손가락 빨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성과와 연봉 욕심 버린 직원을 스타트업에서 오래 쓸리 만무하다. 언제가 되었든 회사를 떠날 때 손가락 빨고 있을 상황을 만들지 말아야 했다.
그러나 30년 넘게 나를 알아가기보다 현실에 맞춰가며 나를 잃어온 상황에서 '내가 원하는 일'은커녕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알기 어려웠다. 주어진 일 대부분을 잘 해내 왔고 나름의 성과와 성장도 경험했으니 착각할만하기도 했다. 이제는 더 이상 착각하고 싶지 않았다. '진짜 내가 원하는 일'을 찾기 위해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보기로 마음먹었다. 그 시작에 있어 우선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 '나를 알아가기'부터 해야 했다.
나를 알아가는 활동을 계속 이어가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기 시작했고 퇴근 후, 주말 시간에 그러한 활동들을 최대한 했다.
나오미 선생님과 함께하던 <자유를 찾아가는 글쓰기>를 통해 계속해서 미루던 글쓰기를 시작했다. 작가라는 직업 또한 어릴 적부터 막연한 꿈이었다. 그러나 글쓰기에 죽고 살고까진 아니었으니 여태 미룰 수 있었던 것이겠다. 그래도 '좋아하긴'하는지 쓰다 보니 나름 계속 쓸 수 있었다. 글쓰기를 시작하니 방황하던 마음이 많이 안정되어 이 또한 회사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동시에 이 프로그램은 나의 우울증 상태를 점검하고 나 자신을 알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오라떼향 마음카페>라는 프로그램에서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활동을 하며 나를 마주 볼 수 있었고 함께 활동하는 사람들과 내면을 나눌 수 있었다. 동시에 심리학 책을 열심히 읽고 시간 날 때마다 트로스트 샐프워크샵에 참석했다. 10개 넘는 워크샵을 들으며 '내면아이 치유'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중 <심리적 독립하고 진짜 어른 되기>라는 집단상담 워크샵을 통해 다른 내담자분들과 나누면서 잊고 지냈던 어릴 적 기억이 폭발적으로 떠올랐다. 과거 따윈 그냥 잊고 지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가끔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문제행동에서 그게 아니라는 것을 조금은 느끼고 있었다. 워크샵을 통해 '내면아이 치유'를 잠시 경험했고 나의 과거와 마주해야만 우울증이 끝나겠다는 것을 확신했다. 무엇보다 나의 기나긴 인생의 정체 포인트였던 우울증의 치료가 우선이었던 것이다. 워크샵을 진행해주신 상담사 선생님과 정기상담을 통해 내면아이 치유를 진행하면서 과거의 나와 마주하고 화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몇 회의 상담으로도 엄청난 효과를 봤다. 그동안 방치했던 나의 내면아이에게 진심으로 미안했다.
나를 알아가는 활동을 단시간에 지나치게 하다 보니 극심한 피로감을 느낄 때가 자주 있었다. 일반적인 피로가 아닌 움직이기도 어려운, 고통스러운 수준의 피로감이었다. 나를 알아간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내면아이를 만나고 난 후로는 나를 쉽사리 몰아붙일 수가 없어 피로를 느끼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이제 더 이상은 무시하지 않기로 했다.
회사에서는 회사 일에 집중하고 그 외 시간을 오직 '나'를 위해 집중하니 나는 더 이상 ADHD가 아니었다. 무려 3년이나 ADHD 검사에서 심각하다고 나올 정도로 집중력 문제가 심각했고 얼마 전 스스로 ADHD려니 인정하고 받아들였는데 그 문제가 해결된 것이 신기했다. 마음이 힘들 때마다 글쓰기로 해소할 수 있었고 상담을 통해 내면 아이 치유를 하니 예전과 마음 상태가 확연히 달랐다. 집중력과 무기력은 결국 내면의 문제였던 것이다. 동시에 1년 가까이하고 있던 10분 명상의 효과도 시너지처럼 나타나는 것 같았다.
'이게 바로 워라밸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은 항상 칼퇴를 하더라도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닿지가 않았다. 퇴근 후에도 회사 생각하고 업무적 공부를 하며 아등바등했는데 퇴근 후 시간을 진정 날 위해 쓴다는 것. 이게 바로 Work And Life Balance 였다. 회사 일에만 집중하며 살면 성장과 성공이 가능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집중력이 떨어져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회사 밖에 나올 때 '업무'스위치를 끄고 나를 위한 삶을 살았더니 오히려 업무능률이 좋아지다니. 예상치도 못한 신기한 경험이었다.
퇴근 후의 다양한 경험을 수행하는 나를 보면서 이대로라면 정말 회사를 다니면서 새로운 직업을 준비해도 될 것 같았다. 그동안 새 직업을 준비하려면 당연히 회사 관두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만 생각했었다. 회사 다니는 것만으로도 힘들어 죽겠는데 어떻게 새로운 걸 준비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미 글쓰기도 하고 있고 일보다 더 힘든 '나를 알아가기(Self-awareness)'도 충분히 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못 견뎌해서 직장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정리가 되어가는듯 했다.
이젠 새로운 직업을 알아봐도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면 대체 나는 지금 하는 일을 왜 그만하고 싶고 새로 하는 일은 어떤일을 하고 싶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