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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루바 Sep 16. 2024

[푸켓타운] Somewhere only we know

태국 여행기 2.

125cc 혼다 스쿠터로 푸켓 공항에서 남쪽으로 약 30km를 달려 푸켓 섬의 주도인 푸켓 타운에 도착했다. 이 스쿠터의 승차감에 대해 논하자면, 몇십 분만 주행해도 엉덩이가 아파오는 옹졸한 시트를 가졌기에 동네 마실이 제격인 녀석이라 볼 수 있다. 두 배낭과 두 크로스백, 두 사람을 태워 30km를 달리기에는 부적격이란 말이다. 그래도 우린 명색이 배낭여행자 아닌가. 에어컨 바람과 함께 음악이나 들으며 잠시 눈 좀 붙이고 나면 숙소 앞에 도착해버리는 택시를 타기보다는, 매연 섞인 바람을 맞고 클락션 소리와 사람들 표정에 좀 더 가깝게 달려야 할 것만 같은 배낭여행자 말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리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불편이 꼭 낭만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각자 크로스백을 앞으로 멘 채로 난 발받이에 올려둔 배낭을 종아리로 힘껏 잡고, 뒷좌석의 B는 제 몸집만 한 배낭을 메고 있는 이 가분수 형태의 운전에 우리는 오래 못 가 허리며 어깨며 통증을 호소했다. 그리고 푸켓의 402번 고속도로는 제주도의 해안 도로처럼 아름다운 경치를 선사하기는커녕, 굉음을 내는 픽업트럭과 덤프트럭들 그리고 여러 거대한 광고판만이 스쳐 지나갈 뿐이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내려놓자마자 우리는 시원한 커피 한 잔이 얼마나 간절하던지 곧장 카페를 찾아 나섰다.

푸켓 올드타운의 골목들.

갑자기 2차선 도로가 하나의 차선으로 좁혀지고, 곧이어 빨간 트래픽 콘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고라도 난 걸까 지켜보는데 "삐익, 삐익"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나타난 갈색 제복의 교통경찰이 경광봉을 들고 나에게 손짓한다. 경찰 뒤로 하나같이 모기에게 물렸을 때처럼 언짢은 표정을 하고 있는 다양한 인종의 여행자들이 보이고 스쿠터들이 늘어서 있다. 아차, 검문이구나. "헬로, sir" 헬멧도 잘 쓰고 운전면허증 뒷면의 영문 면허증까지 있는 나는 넉살 좋게 인사를 건네보지만, 근엄한 경찰은 말 한마디 없이 간결한 손짓으로 하차를 지시한다. "Driver License." "옛설!" 자신 있게 건네본 영문 면허증은 약 5초 만에ㅡ또 간결하게ㅡ되돌아왔고, 국제 운전면허 미소지로 1,000바트의 벌금 딱지를 떼였다. (태국은 영문 면허증 인정 국가가 아니다. 국제 운전면허증과 영문 면허증의 인정 국가가 다르니 참조하시길.) 스쿠터 키를 빼앗더니 건너편으로 넘어가라고 한다. 건너편에는 과일 주스를 파는 노란 푸드트럭만 서 있길래 왜 저기를 가라는 걸까 싶었는데, 푸드트럭 뒤에 경찰 셋이 주둔하는 간이 벌금 수납소가 있었다. 열댓 명 가까운 외국인들이 다들 1,000바트짜리 지폐를 들고 줄을 서 있었다. 나도 씁쓸한 기분으로 그 길에 동참해 지폐를 건네고 나니 키를 돌려받을 수 있었다. (합리적이라 해야 할지 내일까지는 스쿠터를 타도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푸켓의 교통경찰과 검문. (출처 : 구글 이미지)

검문을 거쳐 어렵게도 한 카페에 도착했다. 푸켓 타운은 마이카오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도시였고 교통체증은 물론 주차도 쉽지 않았다. 나는 적당히 스쿠터들이 세워져 있는 구역에 가서 맨 끝에다 주차를 하고, 커피를 즐기며 아무 생각 없이 온몸에 달라붙은 것 같은 더위와 피로를 게워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나와 B는 거의 동시에 배고프다는 결론에 이르어 근처 식당으로 이동하기 위해 나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나의 옹졸한 혼다 스쿠터 뒷바퀴에 쇠사슬과 함께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영문을 파악할 새도 없이 빨간 조끼ㅡ가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으나ㅡ를 입은 호객꾼이 달려와 자기 스쿠터로 같이 경찰서에 가잔다. 알고 보니 내가 주차한 구역의 보도블록은 빨간색과 흰색이 교차하는 구간이었고, 그곳에 주차를 하면 체인과 함께 불법 주차 벌금 딱지를 떼인다고 했다. 주차는 꼭 주차선이 그려진 검은색과 흰색이 교차하는 블록에 해야 한다고 했다. 어이쿠, 푸켓 타운에 도착한 지 2시간도 안 되어 벌금을 두 번이나 떼이다니 일진이 사납다 생각했다. 빨간 조끼 아저씨의 뒤에 앉아 경찰서로 가는 동안 나와 B를 제외한 모든 여행객들이 왜 이리도 즐겁게만 보이는지, 나만 빼고 검은색과 흰색의 보도블록에 주차한 스쿠터들이 얼마나 밉던지. 나는 고장난 지폐 교환기라도 된 것처럼 계속 지갑을 열어 지폐를 건네고, 경찰은 무전을 주고받는다. 스쿠터 앞에 대기하고 있던 B는 한 경찰이 와서 자물쇠와 체인을 풀고 가는 걸 봤다고 한다. 밥맛이 있을 리 없었고, 숙소로 돌아와 운동(헬스)을 하고 낮잠을 조금 자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이건 B 덕분이기도 한데 B와 함께 운동할 때면, 내가 무슨 사부라도 된 것 같기 때문이다. 그만큼 B는 수제자처럼 군소리 없이 가르쳐 주는대로 또 시키는대로 운동을 잘 수행한다. (하지만, 내가 설명이 길어지면 백이면 백 듣는 척만 한다.)


푸켓에서 해가 지면 마이카오는 잠에 들고, 푸켓 타운이 느지막이 일어나는 것 같다. 숙소가 위치한 곳은 번화가에서 꽤 떨어진 곳이었음에도 밤이 오면 유랑 음악단이라도 나타난 듯 노랫소리와 그에 맞춰 울리는 듯한 클락션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확실히 이 도시엔 활기가 있구나 생각하며 잠들었는데 동이 틀 무렵 날 깨운 것도 창밖의 클락션 소리였다. '확실히 이 도시엔 활기가 있구나.' 우리는 아침 일찍 올드타운으로 향했다. 미슐랭에 선정된 쌀국수 집을 방문했는데 태국 음식 특유의 산뜻한 향과 쇠고기 육수의 깊은 맛을 머금은 국수였다. 엊그제까지 마이카오에서 먹은 사테가 푸켓에서 제일 맛있다던 B는 이 국수가 푸켓에서 제일 맛있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과일가게에서 커다란 망고 4개를 단돈 3000원에 사 먹으니 산뜻하게 시작한 하루가 달콤하게 잘 익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푸켓 타운에서는 주말에 야시장이 열린다. 운 좋게도 주말을 포함해 머무른 우리는 토요일에는 NAKA 야시장, 그리고 일요일에는 올드타운에서 열리는 CHATERED WALKING STREET 야시장을 즐길 수 있었다. 두 야시장 모두 활기찬 이 도시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밝고 경쾌한 에너지와 그에 비례하는 습기와 더위를 느낄 수 있다. 규모 면에서는 NAKA 야시장이 훨씬 크지만(길을 잃기 십상이다), 좀 더 정돈되고 깔끔한 인프라(?)가 갖추어진 곳은 올드타운의 야시장이었다. 참, 어떤 야시장이던 입구마다 음악 학원에서 나온 듯한 어린아이들의 버스킹 공연이 뭇 여행객들의 마음을 따스히 덥히고 있었다.


지금은 특유의 문화와 아름다운 해변으로 세계적인 관광지로 유명한 이 푸켓의 역사 이야기도 참으로 흥미롭다. 특히 푸켓 타운의 중심 번화가인 올드 타운은 독특한 건축양식의 건물들로 유명한데, 이를 '시노-포르투키스 양식'이라 일컫는다. 시노는 '중국'을 의미하고 포르투키스는 '포르투칼'을 의미한다. 즉, 중국과 포르투칼의 양식이 혼합된 건축 양식인 것이다. 그래서 푸켓의 글로벌 호텔 & 리조트 브랜드들은 이 양식을 차용하여 건축되기도 했다. 선뜻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중국과 포르투칼의 콜라보레이션, 심지어 정작 주인인 태국은 쏙 빠져버린 이 의문의 해답은 간략히 이야기하자면 바로 '주석'에 있다. 한때 전 세계 주석의 절반 이상이 미얀마, 태국, 말레이시아로 이어지는 반도에서 생산되었다고 한다. 이 반도는 말라카 해협을 아우르고 있고, 이 반도의 중간쯤 적절히 위치한 푸켓 섬엔 1500년대 중반에 이미 포르투칼이 주석 창고를 세웠다고 하니 그 역사가 꽤 깊다. 게다가 1800년대에는 푸켓의 카투 지방에서 주석 광산이 발견되면서 수많은 중국인 노동자들이 이주해왔다고 하니, 이쯤 되면 이해가 간다. 시간이 흘러 20세기 후반에 태국 정부는 광산 개발을 멈추고, 푸켓을 본격적으로 세계적인 관광 휴양지로 탈바꿈시켰는데, 현재도 이 올드타운은 잘 보존되어 여전히 영업을 하거나 박물관이 되기도 하고 많은 여행객들의 포토 스팟이 된 것이다. 그런 역사를 지나온 건물들 사이에 서서 21세기 푸켓의 야시장을 즐기는 기분은 어딘가 꽤 야릇하다. 그래서였을까? B가 쓰레기를 버리고 오는 나를 지켜보며 "지금 오빠가 되게 작아보여. 이 지구에서."라고 말했다.

야시장 투어를 마치고 푸켓의 마지막 밤과 함께 깊어지는 아쉬움에 술집을 찾아 나섰다. 확실한 시노-포르투키스 양식의 백 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술집 건물을 발견했는데, 흰 페인트칠은 다 벗겨져 진회색의 시멘트 맨살을 드러내고 곰팡이 슬은 원목 창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옆을 지나치며 창 사이사이를 건너 뛰는 사이 뜨문 뜨문 비치는 내부는 마치 90년대 홍콩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농밀한 붉은색의 조명, 기타와 드럼 구성의 밴드, 잘 정돈된 테이블과 그렇지 못한 널브러진 술병과 사람들. 음악 그리고 담배 연기와 함께 떠다니는 다양한 언어의 이야기들. '여기구나' 싶었다. 푸켓 대부분의 식당이 그렇듯 수십에서 수백(정말이다)개의 메뉴에 이르는 메뉴판은 넘길수록 선택만 어려워진다. 다찌 자리에 앉아 어디선가 본 태국 위스키 리젠시와 탄산수를 주문했다. 친절한 바텐더가 각얼음을 하나하나 정성스레 집어 잔에 넣고 적절한 비율로 위스키와 탄산수를 섞어 내어주고, 얼음 사이로 기포가 차오르는 위스키 소다를 한 잔 들이켜는데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나는 생각한다, 지금 이 노래가 더없이 완벽하게 어울리는 곳. 여기구나. 'Somewhere only we k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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