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차를 타는 미학"

< 소소한 일상의 행복과 공감 10 >

by 달여울 작가

" **님 모닝 타고 다니세요? 키도 크신데. "


경차에서 내리는 나를 보며 가끔 직장동료들이 왜 '경차'를 타는지 물어볼 때가 있다. 키를 얘기하지만 그 말 속에는 '나이도 있는데 왜 좀 더 좋은 차를 타지 않느냐?'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아! 연비가 좋잖아요."


나는 경차를 타고 다니는 이유를 여섯가지쯤 너끈하게 대답할 수도 있지만, 모든 사람들이 가장 공감할 만한 말로 골라서 대답해 본다.


"그래도 사회적인 지위가 있는데."


이 말은 가까운 지인분에게 들은 말이다. 그렇다. 우리나라는 물론 현대 사회,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어떤 차를 타느냐를 두고 사회적인 지위를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하니 말이다.


'사회적인 지위'를 이야기하는 분에게도 역시 납득하기 쉽게 '연비'로 대답을 해 본다. 사실 내가 경차를 타는 이유들을 늘어놓자면 앞에서 말했듯이 여섯가지 정도 된다.


첫 번째 이유는 역시 연비가 좋다는 것. 즉, 혼자 타고 출퇴근 하거나 가끔 가까운 거리에 가족들과 다니는데 기름을 적게 '소비'한다는 것이고, 그만큼 '친환경적'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로 국산 경차를 타기 때문에 '국가경제'에 도움이 되는 '애국'을 할 뿐만 아니라, 주유비가 적게 들고 세금과 주차비 50% 할인, 게다가 낮은 보험료까지 '가계경제'에도 큰 도움이 된다.


세 번째는 가까운 이웃인 일본에만 가 봐도 땅덩어리가 우리보다 넓고, 경제적으로 우리보다 잘 살아도 도로에는 경차들이 대부분이라는 '국제적'인 비교의 논리이다.


네 번째로 김수환 추기경께서도 관용차로 '티코'라는 경차를 타셨었다고 알려졌는데 나보다 '종교적'으로, 그리고 어떤 면에서도 존경받을 만한 분이 경차를 타셨었는데 내가 더 큰 차를 타고 다닐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다섯번째 이유는 '철학적'인데 좋은 차가 상징하는 '사회적인 지위'는 '기호 또는 시뮬라크르'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서이다. 철학자 보드리야르는 현대 사회를 물건의 '기능'보다 '기호'를 소비하는 '소비 사회'로 보았다.


많은 여성들이 선호하는 명품 핸드백을 떠올려 보자. 그 기능만 보면 굳이 명품이 아닌 일반 핸드백을 들고 다녀도 무방하다. 하지만 '명품' 핸드백은 그것을 가질 능력이 있는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기호'로서 작동한다. 실재(핸드백)보다 우월한 시뮬라크르(초과실재, 명품이 만든 사회적 지위라는 이미지)가 생긴 것이다.


여기서 기호와 이미지가 현실을 대체하는 시뮬라크르를 생산하는 과정은 '시뮬라시옹'이라 한다. 영화 "메트릭스"에도 이런 철학 이론이 담겨 있다. 오늘날 미디어가 생산해내는 넘쳐나는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무엇이 현실인지, 무엇이 복제 현실(가상, 기호 또는 이미지)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지 않은가?


끝으로 내가 경차를 타는 정말 '현실적'이고 '심리적'인 가장 중요한 이유를 솔직히 말해보려고 한다. 맞벌이 부부라서 출퇴근을 위해서 차 두 대가 필요하고, 한 대는 '경차'여도 무방하다. 아내는 '안전'을 위해서 묵직한 'SUV'를 타고 다닌다. 최근에 바꿨는데 차 값이 후덜덜한다.

게다가 주말에 가까운 곳에 놀러갈 때, 특히 사람들이 붐비는 곳에 주차를 할 때면 경차만큼 좋은 차가 없다. 다들 주차가 어려워 헤매일 때 혼자 여유있게 주차하면서 느끼는 쾌감은 경차타는 사람은 잘 알 것이다. 또한 대형마트의 좁은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내릴 때도 옆 차를 '문콕'할 걱정이 전혀 없다.


이렇게 경차가 주는 다양한 '미학'들이 넘쳐 나는데 내가 굳이 경차를 타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역시나 모든 경차를 타야 하는 이유 중에서 스스로 자족하는 '심리적' 만족감이 가장 최고의 근거라는 생각이 든다.


월, 수, 금 연재
이전 09화"그와 농구를 같이 할 뻔 했던 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