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내가 이번에 중간고사 시험 잘 보면 갖고 싶은 거 있는데?"
"그게 뭔데?"
"나중에 시험 끝나고 말할게. 사 줄거야? 조금 비싼데."
"일단 시험은 잘 봐야겠지."
중학교 2학년 둘째 딸아이가 부모라면 거부할 수 없는 조건인 시험 성적을 미끼로 이른바 "딜"을 해 왔다.
'많이 컸네. 아빠랑 이렇게 협상도 할 줄 알고. 근데 뭘 사 달라고 하려고 이러지?'
그렇게 열흘쯤 지나 아이가 중간고사 성적을 웃으면서 말했다. 기대 이상의 성적이라고 하긴 애매했지만 시험 준비한다고 늦게까지 스터디 카페와 학원에 있었던 노력을 생각해서 동기 부여가 필요해 보였다.
"시험 잘 보면 갖고 싶은 거 있다고 했지? 뭔데?"
"사줄거야?그런데 진짜 좀 비싼데."
아이가 내 말에 반색을 하면서 스마트폰을 열어 이미 검색해 놓은 창을 보여줬다.
'일렉기타?'
초등학교 때 학교 끝나고 엄마, 아빠의 퇴근까지 비어 있는 시간을 때우려고 피아노 학원에 열심히 보냈지만 별 흥미 없어했던 아이였다.
'근데 악기? 그것도 일렉기타라니. 생뚱 맞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아이 딴에는 제일 낮은 가격으로 찾아서 골라 놓았다는 일렉기타를 봤다. 그런데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어떡하지. 약속은 지켜야 겠고.'
당황스러운 순간. 아내가 옆에서 듣다가 엄마의 지혜를 발휘했다.
"기타는 어쿠스틱부터 배운 다음에 일렉기타로 넘어가는 거야. 당*마켓 같은데 어쿠스틱 기타가 많이 올라와 있을 걸."
그렇게 아내의 도움으로 합리적인 가격으로 중고 어쿠스틱 기타를 구해왔고, 다행히 아이도 만족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문제는 계속 되었다.
"아빠! 기타 칠 줄 알아?"
"어, 그럼. 그럼."
나는 기타를 들고 왼손으로 가볍게 C코드를 잡은 뒤에 오른손으로 기타 줄을 한 줄씩 튕겼다.
"이게 C코드."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아이의 눈이 여느때보다 더 반짝였다.
"사실 아빠가 C코드만 하고 F코드 잡다가 포기했어. 유*브에 보면 잘 나와 있지 않을까?"
아이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고 나는 기타를 내려 놓으면서 아이에게 멋쩍게 말했다.
대학생 때 친구들과 로망인 기타를 배우겠다고 야심차게 도전했었다. 기타 줄을 잡느라 굳은 살이 박힌 같은 학과선배의 왠지 단단해 보이는 손가락 끝마디. 그리고 캠퍼스 잔디밭이나 벤치에 앉아 분위기 잡으면서 연주하면 멋있을 것 같고, 왠지 여학생들의 관심도 좀 받을 것 같은 느낌. 길게 말 안 해도 다들 잘 아실거다.
그런데 F코드가 문제였다. 왼손 검지로 모든 기타 줄을 꾹 눌러줘야 하는데다가 중지부터 약지까지도 각자 줄을 잡아줘야 하는데 쉽지가 않았다. 역시나 그래서 원하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어영부영하다가 군 입대를 했고, 복학하고 취업 준비를 하다가보니 너무 쉽게 포기를 했다.
'둘째한테 직접 기타를 가르쳐 줄 수 있었으면 좋았을 걸.'
그 때 기타를 놓은 것에 대한 아주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그건 그냥 아빠의 자격지심 이었던 걸까?
그 뒤로 며칠동안 저녁마다 아이의 방에서 기타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핸드폰으로 영상을 보면서 연습하는 모양이었다. 옆 집에 들리면 어떡하나 하는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면서도 잘 배웠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악기를 다루고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건 아이의 정서 안정과 성장에 많은 도움이 되고, 어른이 되어서도 삶이 괴로울 때마다 위로가 되고, 인생을 풍요롭게 해 줄 테니까.
근데 최근 며칠 저녁은 아이의 방이 너무나 조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기타는 아이 방의 한 쪽 구석에 곱게 모셔져 있고, 둘째는 침대에 누워서 소설책을 읽고 있었다.
"기타 연습은 안 하니?"
"응. 해야지. 근데 아빠 이 소설 읽어 봤어? 친구들이 재밌다고 하던데."
"아, 그 일본 작가가 쓴 추리소설. 영화로도 나왔는데. 아직 읽어 보진 않았어."
"친구들이 이 소설의 제목대로 끝에 가면 놀라운 반전이 있다던데."
"그래? 아빠도 읽어봐야 겠네."
둘째 아이의 관심은 어느새 기타 연주에서 추리소설로 넘어가 있었다. 지금은 잠깐 아이의 관심이 소설로 넘어가 있지만 예전의 나처럼 포기하지 말고 꼭 기타를 배워서 나에게 멋진 연주를 들려줬으면 좋겠다.
'나도 글쓰는 거 하지 말고, 여가시간에 아이와 같이 기타를 다시 배워 볼까?'
한 쪽 구석에 놓여있던 기타를 들고 F코드를 잡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