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내 얼굴에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무언가가 묻어 있는게 틀림없다.
"잠깐만! 얼굴에 뭐 묻었네." "잘생김?"
거울을 보면서 이렇게 혼자 자문자답 하면서 씨익 웃어볼 때가 있긴 하다. 이런 근자감은 때로는 축 쳐진 기분과 자존감을 끌어올리는데 분명히 도움이 되니까.
그런데 아쉽게도 "잘생김"과 거리가 먼 평범한 내 얼굴에는 다른 사람들 눈에는 뭔가 속이기 쉬운 "허당미" 같은 게 묻어 있는 게 틀림없다.
20세기 말 어느 날. 내가 중학생 때였다.
"세상이 곧 끝나고 휴거가 옵니다. 선택 받은 자들만이 천국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승합차가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차에 탄 어른들이 창문 밖으로 이렇게 말하고 다녔다.
'휴거?그게 뭐지?선택과 천국!'
이렇게 잠깐 멍하니 생각하고 있을 때.
"거기 착하게 생긴 학생. 차에 타!! 좋은 데 같이 가자."
승합차가 멈추고, 문이 열리면서 인상 좋게 생긴 아줌마가 웃으면서 내게 손짓을 했다. 나는 그 손길에 홀리듯이 이끌려서 승합차에 올라타려고 했다. 그 때.
"야!! 너 지금 뭐하는 거야?"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 살 터울의 형이었다. 나는 형의 손에 목덜미가 잡혀서 "천국의 문"은 구경도 못 한 채로 집에 끌려왔다. 그리고 형한테 된통 혼났다.
"야! 도대체 휴거가 뭐라고 생각한거야?"
"아니 천국 얘기도 하고, 난 궁금해서. 좋은데라고 하니까!"
"그거 '이 세상이 곧 끝나네' 하면서 종말론을 펼치는 순전히 사이비인데 홀랑 넘어가냐! 넌 순진한 거냐? 멍청한 거냐?"
그 뒤에도 나의 "허당미"는 한 번 더 발휘됐다.
스무 살.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지하철을 타려고 역으로 걸어갈 때.
"저기요. 잠깐만요. 얼굴에 맑은 기운이 넘치시네요!"
삼십 대 정도로 보이는 두 사람이 나를 멈춰 세웠다.
'내 기운이 그렇게 좋은가?'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칭찬'과 '인정'에는 약한 동물이다. 나는 중학생 때처럼 또 한 번 홀린 듯이 발걸음을 멈췄다.
"저희가 도움이 되는 좋은 말씀을 전해드리려고 하는데, 여기 말고 다른데로 장소를 좀 옮겨서 얘기를 할까요?"
두 사람 중 한 명이 친절하고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 음성을 따라서 두 사람이 안내하는 곳으로 따라 갔다.
허름한 건물 지하. 문을 열고 들어가자 건물 안 쪽에 제사상이 놓여 있고, 두루마기들이 벽에 걸려 있었다.
"기운이 참 좋으신데. 조상님이 기운을 막고 계신 것 같네요. 여기서 조상님께 제사를 지내면 앞으로 정말 좋아져요. 그런데 제사를 그냥 지낼 수는 없고, 성의를 좀 보여야 하는데."
나를 "영업"한 직원은 친절을 유지하면서 말했다. 내가 아무리 순진한 바보여도 이쯤이면 "낚였다"는 것을 눈치를 챌 수 있다. 하지만 낯선 곳에 제 발로 걸어와서, 이제와서 제사니 뭐니 못 한다고 하면 해코지를 당할까 두려움이 밀려왔다.
"제가 가진 게 이게 전부라."
나는 지갑을 열어 보였다. 다행히 지갑에는 달랑 삼 천원 밖에 없었다. 나는 조상님께 '성의'를 보이고 제사상에 절을 했다. 그리고 도망치듯이 그 곳을 빠져 나왔다. 내 거짓 연락처를 남긴 채. 다행히도 나를 "영업"한 두 사람도 내가 내민 "삼 천원"에 나를 더 잡아둘 생각은 없는 듯 했다.
이렇게 내 얼굴에 써 놓은 "허당미"와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으로 두 번이나 그런 경험을 했다. 하지만 사실 되돌아보면 내가 그 때 그들에게 "낚였던" 건 순전히 "불안한 마음" 때문이었다. 사춘기의 불안과 처음하는 도시생활에서 생기는 긴장감.
사람들은 마음이 불안하고 자기 자신을 믿기 어려운 순간에 '무언가'에 의지하게 되어 있다. 그게 '사람'이던 '종교'이던, '점'이던 '사이비'든지.
특히 우리 사회에서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경쟁의 압박이 심한 청년들이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중장년층도 가족 간의 불화나 경제적 어려움, 건강 문제 등으로 사이비 종교를 믿고 전 재산을 바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물론 건전한 종교 생활은 불안한 나를 지탱해 주고, 더불어 주위의 사람들까지 돌아볼 수 있는 힘을 주기 때문에 권장할 일이다. 하지만 내가 의지하는 '종교 ', '사이버 ' , '점', '사람', '술' 등등 그것이 무엇이던지 그로 인해 내가 무너지고 있다면? 그렇게 느낀 순간에는 바로 그곳에 내민 손과 발걸음을 되돌려서 그 손과 발을 자신의 내면으로 향해야 한다.
"신은 죽었다! 인간은 스스로 극복해야 할 존재이다."
만약 중학교 때, 그리고 스무 살의 내가 철학자 니체의 가르침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내가 그동안 기웃거렸던 많은 '신들'을 쿨하게 지나쳤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