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의 소소한 행복과 공감 19 >
부처는 처음에 깨달음을 얻기 위해 다른 선배 수행자들의 고행을 따라 했다고 한다. 먹지도 잠을 자지도 않고 거의 죽음 직전까지 몸을 극한으로 몰아넣었지만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그는 이런 고행을 멈추고 우유죽을 한 그릇 공양 받아서 먹고 명상에 든 뒤에 모든 고통의 원인이 욕망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부처와 같은 고행과 수행을 해 본 적은 없지만 수행을 하는 스님들이 삭발을 하는 것처럼 나역시 두 번 정도 반삭발을 했던 기억이 있다. 사춘기 때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반항하기 위해서 삭발을 했던 것은 아니다.
대학교 2학년 가을이었다. 내가 많은 책임을 지고 있던 학과 행사는 뭔가 준비가 순조롭지 않았고, 내 미래는 불투명했으며 군대 입대를 몇 개월 앞에 두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고민과 번뇌들이 나를 향해 덮쳐 오는 것 같아 답답했다. 나는 바로 군입대를 하는 것도 아닌데 '짧은 스포츠형'으로 머리를 과감하게 잘랐다.
또 한번은 불과 10년전쯤 정말 많이 더운 여름의 토요일이었다. 점심을 먹고 가까운 동네 미용실에 갔다.
"날씨가 더우니까 스포츠형으로 짧게 잘라 주세요."
이상하게 다른 사람이 내 머리카락을 만지면 잠이 오는 습관이 있는데다가 주중의 피로까지 겹쳐 있던 터라 눈을 감고 조금씩 졸면서 머리를 잘랐다.
"다 됐습니다."
미용실 사장님의 말에 눈을 떠 보니 거울 속에 왠 '스님' 한 분이 앉아 있었다.
'아, 스포츠형으로 잘라달라고 한 거지 이렇게 짧게 잘라 달라고 한 건 아닌데.'
머리를 살피는 심각한 내 표정을 읽었는지 미용실 사장님도 당황해 하면서 한마디 하셨다.
"너무 짧은가요?"
"아, 네. 너무 짧은데요. 머리카락을 좀 붙여 주시면 좋겠어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미 어쩔 수 없었다.
아내가 머리를 왜 그렇게 잘랐냐면서 한 소리를 했고, 당장 주말 지나고 회사에 출근하기도 난처했다.
"아니 머리를 왜 그렇게 짧게 잘랐어요?"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만나는 분들마다 한 마디씩 웃으면서 말을 건네셨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짧게 잘라 봤어요. 미용실 사장님이 생각보다 너무 짧게 잘라 놔서."
이렇게 일일이 대답하면서 며칠이 지나자 사람들의 관심은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사실 그 때 내가 머리를 짧게 잘라야 겠다고 생각한 것은 매일 같은 야근에 지쳐 있었고, 아이들이 어려 맞벌이하는 아내와 가사, 육아를 분담해야 했지만 그러질 못해 아내와도 갈등이 좀 있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그 당시에도 대학 때처럼 또 한번 세상의 모든 일과 괴로움들이 나를 향해 덮쳐오는 것 같아서 홀가분해지고 싶었던 것 같다.
출가 스님은 아니지만 두 번의 반삭발 경험을 통해서 내 나름대로 '깨달음'을 얻은 것들이 있다.
먼저 '남자는 머리빨'이라는 것. 평소에 나름 근거는 없지만 외모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지만 삭발을 하자 주변사람 중에 "남자는 머리빨이라는데 정말 못 생겨 보인다"고 직언을 한 사람이 있었다. 거울 속 내 모습을 보니 맞는 말이었다.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죄수의 얼굴이라고 할까?
두 번째는 짧게 머리를 자르고 나니까 너무나 편했다는 사실이다. 머리를 감기도 편했고, 드라이기로 말리는 것도 금방이고 특별히 머리카락을 빗거나 뭘 찾아 바르지 않아도 됐다. 잘려 나간 머리카락의 길이 만큼 신경쓸 일이 확연히 줄었다.
세 번째는 뭔가 그동안 마음 속에 쌓여 있던 고민이나 번뇌 같은 것이 잘려나간 머리카락과 같이 사려졌다는 느낌이었다. 짧은 머리를 쳐다보던 사람들의 시선에도 며칠이 지나자 무신경해지고 무덤덤해 졌다. 반삭발을 하고 나자 아내도 '뭔가 이 사람이 회사에서 말 못할 어려움이 있나' 하고 신경을 써 주었다. 내 스스로도 마음속의 고민을 좀 내려놓게 되었다.
나의 이런 반삭발의 경험을 꺼내 놓는 이유는 뭔가 삶의 괴로움에 벗어나고 싶을 때 감정을 전환시킬 수 있는 계기를 가져보는 걸 추천하고 싶어서이다.
나처럼 극단적인 반삭발을 추천하는 건 아니다.
단정하게 이발을 한다던가, 여성분들이라면 단발머리로 헤어스타일에 변화를 주거나 네일아트 같은 것을 해 볼 수도 있겠다. 한증막 같은 곳에 들어가서 온 몸의 땀을 쭉 빼고 나오거나, 땀이 줄줄 흐르게 운동을 하거나 노래방에 가서 목청껏 노래를 불러 보는 방법도 추천해 본다.
지나친 음주나 흡연처럼 자신의 몸과 정신을 괴롭히는 것만 아니라면 어떤 방법이라도 좋다. 자신만의 현명한 방법을 통해서 쌓여있던 스트레스와 고민을 훌훌 벗어던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