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안과 노안 사이"
< 일상의 소소한 행복과 공감 20 >
'만약 카톡이나 SNS 프로필에 본인 얼굴이 나오는 사진보다 꽃이나 풍경사진을 올린다면?'
당신은 40대 이상일 가능성이 높다.
'어른들은 왜 저렇게 꽃이나 풍경 사진들을 좋아하실까?'
나도 이해되지 않던 때가 있었다.
자연의 꽃이나 풍경은 그 자체로 완벽한 조화와 아름다움을 이룬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어느 순간에 사진으로 보는 내 얼굴에는 세월이 느껴지는 주름과 기미들이 보이고, 사진 보정 어플로도 손을 쓸 방법이 없으면 더이상 내 얼굴이 나오는 사진을 찍는 걸 즐기지 않게 되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나는 긴 얼굴과 각진 턱 때문인지 나이보다도 원숙해 보였다. 그래서 같은 부모님의 자식인데 형과 같이 있을 때 누가 형이고 누가 동생인지 질문을 자주 받고는 했다. 형은 동그랗고 곱상한 외모의 동안이라서 여학생에게 인기가 많았고, 형에게 편지를 전달해 달라는 심부름을 해야 할 때면 내심 부럽기도 했다.
원숙한 외모로 인해 오해를 산 적도 여러 번 있다. 중학생 때는 길을 물어보는 분에게서 '젊은 총각'이란 말을 들었다. 대학 신입생 때는 처음 학과 과방에 갔을 때 2, 3학년 선배들이 군 제대를 한 복학생인 줄 알고 벌떡 일어나서 나에게 먼저 인사를 하기도 했다.
그들은 나중에 내가 후배인 줄 알고 이렇게 위로를 했다.
"너처럼 원숙하게 생긴 얼굴이 나중에 시간 지나면 동안으로 보인다."
선배들의 그 따뜻한 위로가 실현되기까지 자그마치 20년이 걸렸다. 이제서야 나는 주변에서 내 나이로 보기 시작한다. 혹시 '노안'으로 걱정하시는 20대가 있으시다면 걱정하지 마시길. 딱 20년만 기다리면 된다.
하루 종일 컴퓨터 화면을 많이 봐야하는 회사원의 숙명인지 늙음은 몸 중에서도 눈으로 먼저 찾아왔다. 예전 어른들이 안경 너머로 글자를 보셨던 것처럼 핸드폰 속 작은 글자들이 초점없이 흐려지기 시작하더니 이제 잘 보이지 않아 두 손가락으로 확대해서 보게 되었고, 안경 너머로 타이핑 된 작은 글자들을 보기 시작한다.
눈 다음으로는 흰 머리카락으로 늙음이 찾아들었다. 다행히 부모님이 주신 유전자 덕분에 흰 머리카락이 많이 나지는 않지만 가끔 아내가 핀셋으로 머리카락을 뽑아준다.
아내는 철없는 남편을 만나 고생을 한 때문인지 최근 부쩍 흰 머리가 늘었다. 주말마다 나에게 말없이 핀셋을 건네주면 흰 머리카락이 잘 보이지 않아 안경을 벗고 뽑아주기도 하는데 어느 때가 되면 아내도 미련을 내려놓고 염색을 결심해야 할 순간이 올 것이다.
길을 지나가는 청춘들을 보면 또는 어쩌다가 결혼하는 젊은 부부들의 결혼식에 참석하게 되면 정말 예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것은 그들이 잘 꾸미거나 하는 것과 전혀 상관없이 '젊기' 때문에 예쁜 것이다. 나도 '저렇게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겠지'하고 부러운 마음으로 자꾸만 바라보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젊음'에 대한 기준도 상대적인 것이다. 어느 날 어른들이 지나가면서 우리 부부를 보고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참 좋은 때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어른들의 눈에는 그래도 아직까지 우리 부부가 생기가 있는 청춘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그럴때면 난 아직까지 젊은데 괜히 너무 나이가 들었다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최근에 '영포티'에 대한 MZ세대들의 부정적인 인식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영포티'는 원래 트렌디하게 젊은 패션과 삶을 추구하는 40대를 의미하는 긍정적인 단어였다. 그런데 지금은 경제적인 풍요로움을 가진 40대들이 특정 패션 브랜드를 입으면서 '젊은 척'하는 것을 MZ세대들이 조롱하는 의미로 쓰인다고 한다.
나도 겪었지만 '젊음' 그 자체로 아름다워 보이는 '청춘'의 삶이 그렇게 녹록하지는 않다는 것과 '영포티'들이 외모를 가꾸는 것과 비례하는 내면의 '품격'과 '어른다움'을 갖추지 못해서 생긴 세대 간의 갈등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런 면에서 지금 나이의 나에게 필요한 현명함은 "동안"과 "노안"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아닐까?
사회적으로 외모, 특히 젊어 보이는 외모를 긍정하는 인식에 너무 집착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아직 인생의 절반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너무 늙어버리지 않았나 하고 탄식하면서 실의에 빠지지도 말고.
오늘도 "동안"과 "노안"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면서 20년만에 드디어 제 나이로 보이기 시작한 내 외모의 빈 자리를 생의 남은 시간 동안은 "어른의 품격"으로 채워 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