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가는 말"

< 일상의 소소한 행복과 공감 40 >

by 달여울 작가

백년 전 사람들이 쓰던 말을 얼마나 알아 들을 수 있을까?


방송국 아나운서들에게 녹음된 소리를 들려주고 듣는 내용을 옮겨 적고 뜻을 말하도록 하는 방송을 본 적이 있다.


지금과 단어는 비슷해도 전혀 다른 뜻으로 쓰거나,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들도 많이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쓰고 있는 말들도 언젠가는 사라질 말이 아닐까?

얼마전에 엄마가 하시는 말씀을 듣는데 생전에 시할아버지, 내 기준으로 증조 할아버지께서 엄마가 시댁에 들렀다가 집에 돌아오는 날에 이렇게 재촉을 많이 하셨다고 한다.


"야들아! 상구(아직도) 준비 안 했나!"


하루에 몇 번 버스가 다니지 않던 시골이라 혹시라도 차를 손주 내외가 차를 놓칠까봐 걱정이 되셨던 듯 하다. 버스 시간 몇 시간전부터 여러 번을 그렇게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이제야 너희 상할아버지가 왜 그러셨는지 알겠어."


엄마도 할머니가 되었고 어느새 그렇게 자식들, 손주들 걱정을 하실 나이가 된 때문이다.


"아들! 시나미(천천히) 해!"


어릴 때 나는 덩벙대고 성격이 좀 급했나보다.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다가 발목을 접질렀던 적이 몇 번 있는데 동네 침을 놓아주시는 어른께 나를 업고 가면서 아버지가 하셨던 말씀이다.


"잠 뿌레기(뿌리)가 뽑히게 좀 둔노라(누워 있어라)"


학교 다닐 때 공부에 지쳐 보이는 우리 형제들에게 하셨던 말이고, 그리고 지금은 가끔 본가에 가면 어머니가 아들이 피곤해 보이는지 늘상 하시는 말이다.


잠에도 '뿌리'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 아들의 피로가 늘 걱정인 엄마의 마음이 담겨 있는 말이다.


이렇게 자식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담긴 온기를 품고 있는 어른들의 말들은 내 기억속에 남아 있지만 언젠가 나와 함께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표준어는 중심, 사투리는 변방의 말처럼 인식되는 사회적인 분위기에 젊은 세대일수록 사투리를 사용하는 것을 보기가 쉽지 않다.


언어의 다양성이라는 용어를 굳이 쓰지 않더라도 지역마다 의 고유한 정서와 따뜻한 온기를 담은 말들이 사라져 간다는 건 너무나 아쉬운 일이다.


어른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누가 나에게 시나미 하라고, 잠 뿌레기가 뽑히게 쉬라고 위로를 건네 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