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날"

< 일상의 소소한 행복과 공감 26 >

by 달여울 작가

나는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비가 내리는 날이 좋았다.


시골집 처마 끝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서로 다른 높낮이의 경쾌한 음들을 들려주는 빗방울 소리가 좋았다. 그리고 온 세상을 반투명으로 덮어주는 비가 만들어주는 그윽한 풍경이 좋았다.


마당에 우산을 쓰고 앉아 있으면 우산을 톡톡 치면서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만드는 그 떨림이 좋았다. 그리고 먼 산부터 커튼처럼 몰려오던 시원한 소나기도 좋았다.


학교 다닐 때 우산을 챙기지 못했던 어느 날에 비가 내렸다. 같이 다니던 친구 역시 우산이 없었다. 하차 벨이 울리자 친구와 둘이 서로 눈을 맞춘 뒤에 가방을 머리에 이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집으로 뛰어갔다. 교복과 신발이 비에 젖는 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호들갑을 떨며 뛰면서도 친구와 함께 웃던 순간들이 좋았다.


대학 때 좋아했던 친구가 있어 연락을 한 적이 있다. 방학이었고, 핸드폰이 없고 삐삐로 연락하던 시절.


"잘 지내? 너희 집 근처로 갈 건데 만날 수 있어?"


공중전화로 그 친구의 삐삐에 음성메시지를 남기던 그 순간에도 비가 내렸다.


그 때 공중전화 박스에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와 떨리는 내 목소리가 같이 녹음이 되었을까?


이렇게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비 내리는 날. 하지만 비는 항상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만 무심하게 흐른다.


대학 다닐 때 반지하에 살면서 혹시 빗물이 들어오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던 기억. 가게로 들어오는 흙탕물을 양동이로 퍼내던 동네 식당 사장님. 폐지를 잔뜩 실은 무거운 손수레를 끌고서 빗 속을 걸어가고 있는 노인의 뒷모습과 그 무거운 발걸음까지.


나이를 먹을수록 비오는 날의 아름다운 추억들보다는 현실의 안타까운 모습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누군가에게 이 얘기를 했을 때에 그는 찰리 채플린이 남긴 말을 내게 들려 주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다."


오늘도 비가 온다. 비가 선물하는 세상의 아름다움과 비가 깨닫게 해 주는 삶의 서글픔.


나는 희극과 비극, 그 사이의 어디쯤에 놓여 있다.



월,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