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남길 것인가"

< 일상의 소소한 행복과 공감 29 >

by 달여울 작가

"내 이름이 없네?"


과자 봉지를 한참 뒤지던 큰 아이가 자기와 똑같은 이름이 새겨져 있는 과자를 발견하지 못한 모양인지 실망해서 말했다. 초코 과자 중에서 자신과 똑같은 이름이 새겨진 것을 찾아서 SNS 프로필에 올리는 게 유행하는 모양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뭔가 자기의 이름을 다른 이들에게 드러내고, 누군가로부터 인정 받길 원한다.


안토니오 가우디의 건축물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서 한글 낙서가 발견되어 논란이 되었다. 도쿄의 유명대나무 숲에서도 한글로 연인의 이름과 하트가 새겨 있어 국가적 망신이 되기도 했다. 국내의 유명 관광지나 축제에 가면 이런 '낙서'의 욕망을 드러내고 표현하도록 종이에 적어서 나무 등에 걸 수 있게 만들어 놓는다.


"가족 건강", "수능 만점 기원", "202*년 *월 *일 누구와 누구 다녀감"


이런 소망들이 적힌 종이들이 축제장 나무에 빼곡하게 매달려 있다. 어떤 술집에는 가게 벽면에 펜으로 이름 등을 낙서하도록 두는 경우가 있고, 어린이 체험박물관 같은 곳에서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과 그 위에 쓴 이름들을 스캔해서 대형모니터 화면에 띄워주기도 한다.


이렇게 단단하고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고정물 위에 무언가를 조각하거나 기원을 새겨넣는 인간의 욕망은 오래 되었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보면 선사시대 사람들이 고래나 육지동물을 사냥하거나, 제사를 지내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인간이 세상에 무언가를 남기려고 하는 행위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이 바로 '조각'인 것이다.


경남 양산에 있는 통도사에 갈때면 나는 항상 흥미있는 두 가지를 눈여겨 본다. 먼저 극락보전 벽면에 있는 '반야용선도'이다. 이 그림은 깨달음의 세계인 반야(극락)으로 사람들을 태우고 가는 용선(용모양 배)과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 그런데 이 그림을 자세히 보면 극락으로 가는 도중인데도 여러 사람들 중유일하게 뒤를 돌아보는 한 남자가 있다. 이 세상에 남아 있는 '미련'이 있는 것이다.


내가 눈여겨 보는 또 다른 하나는 통도사 계곡이나 입구 근처에 있는 바위들이다. 바위마다 한자로 여러 이름들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 부처님은 인간은 잠시 모였다가 흩어지는 무상한(고정된 형체가 없는) 존재라고 가르쳤다. 그래서 절의 입구에는 생과 사가 다르지 않음을 알려주는 불이문이 있다. 바로 그 불이문의 근처에 수많은 이름들이 새겨져 있는 바위들이 있는 것이다.


조각은 인간의 생에 대한 처절한 의지와 오랫동안 기억되길 원하는 간절한 바람을 동시에 담은 행위라는 점에서 그 자체로 아이러니이다. 그래서 반야용선도의 뒤를 돌아보는 한 남자와 바위 위에 새겨져 있는 이름들을 보고 있으면 만감이 교차하게 된다.


어느 국내의 유명한 한 소설가는 연인들이 바위나 대나무 위에 각자의 이름을 새기거나, 자물쇠를 걸어 놓는 행위를 보면서 사랑이 그만큼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고 불안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인간은 유한하기 때문에 바위같은 단단한 고정물에 그림과 이름 등을 조각하는 행위가 도처에서 발견되고, 아주 오래전의 선사시대부터 이런 행위가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조각과는 다르지만 리처드 도킨스의 과학 명저인 '이기적 유전자'에서 다룬 것처럼 인간이 자신의 유전자를 후손에 남기려고 하는 행위, 그리고 인류의 많은 예술과 문학 작품들도 어떤 면에서는 자신이 살아 있었음을 증명하거나, 생을 연장하고 싶거나 생에 의미를 남기고자 하는 행위들 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제행무상'이란 부처님의 가르침에 생각하면 '오늘 내가 남긴 이런 글쓰기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고 자문하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사유하는 인간이 존재 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이렇게 글을 남겨 보는 것이다.

월,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