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의 소소한 행복과 공감 50 >
"아들 이번에 너가 올 차례인데."
"네 알겠어요. 시간 맞춰 갈게요."
아버지와 전화 통화를 마치고 핸드폰 달력에 "벌초"라고 메모를 적는다. 형과 격년으로 해마다 추석이 되기 전에 선산으로 벌초를 하러 가기로 약속되어 있다. 어렸을 때 추석 때 성묘를 하려면 어른들을 따라 이 산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와서 저 산으로 올라갔다가 했던 기억이 있다. 그 어려움을 줄인다고 어른들은 선산에 8대조부터 한 자리에 모셨다. 내가 어릴 때의 일이니까 그게 벌써 30년도 지난 일이다.
"요즘 대부분 집에서 제사도 1년에 한 번 모아서 하고, 벌초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그러던데요."
내가 벌초를 하러 간다고 하니 직장 동료분이 한 말이다. 그 분의 말대로 시간이 갈수록 어른 세대에서 하던 제사 등 방식이 간소화되고 있다. 장례도 이제는 "매장"이 아닌 "화장"으로 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런 시대 변화와 달리 우리 집안은 "매장"과 "벌초"를 유지중이라서 휴일에 "벌초"를 하러 선산까지 가는 것이다.
선산에는 아버지를 포함한 대부분이 집안의 어른들이 계셨고, 내 또래의 젊은 이들은 몇 명 밖에 없었다.
어른들이 벌초를 더 할 기력이 없어지면 누가 감당을 할 지가 그 날에 모이신 어른들의 공통적인 걱정이었다. 내가 볼 때 더 심각한 것은 선산의 자리가 거의 다 차서 나중에 아버지를 모실 때는 빈 자리가 없는 상황이다.
"나는 저기 소나무에다가 이름표 달고. 알았지?"
몇 년전에 아버지는 선산에 당신이 묻힐 자리가 없으신 것을 이미 아시고, 선산 입구의 어느 소나무를 손으로 가리키시면서 수목장으로 해 달라고 말씀을 하셨다.
"이제 저희도 좀 선산을 관리하는 방식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나는 이런 말을 꺼내고 싶지만 아직 집안 어른들이 정정하시고, 특히 선산을 관리하는데 누구보다 열정적이신 아버지를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아버지에게 이 일은 종교에 가깝기 때문이다.
"조상들에게 잘 해야 자손들이 잘 되는 거다."
평소에 아버지가 자주 말씀하시는 지론이었다.
'아버지는 왜 이렇게 산소에 집착하시는 걸까?'
어렸을 때 증조할아버지께서 우리 집에 가끔씩 오셨던 기억이 있다. 결혼을 해서 분가를 한 손주의 집에 오실 때면 증조할아버지는 한복을 입으시고 증손주들 줄 종합과자선물 세트를 들고 신작로 길을 따라 걸어오셨다. 그 모습이 어린 내 기억에 선명하고, 엄마의 말로는 증조부께서 손주들 중에 아버지를 유독 아끼셨다고 한다.
몇 해 전 할아버지도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건강이 안 좋아 일찍 세상을 뜨신 큰아버지까지 선산에 모셨으니 그 분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기억하는 아버지의 입장에서 산소에 대한 애착은 이해를 못 할 것은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시대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추모의 방식을 고민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당분간은 쉽게 해결방법이 생길 것 같지 않은 어려운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