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힘들고 내일은 더 힘들다.
모레 해가 뜬다.
마윈
잭 마는 오늘날 알리바바 창업자로 잘 알려져있지만, 그의 젊은 시절은 실패와 좌절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그는 학교 시험에서 수차례 낙제했고, 수학성적은 늘 바닥이었습니다. 대학 입학시험(가오카오)도 두 번이나 떨어져서 세 번째 도전 끝에 간신히 항저우 사범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졸업 후 취업에 도전했지만, 30여 차례나 연속 낙방했습니다. KFC가 항저우에 처음 들어왔을 때 24명이 지원해 23명이 합격했고, 잭 마만 탈락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경찰 채용, 호텔 아르바이트도 거절을 당했습니다. 영어강사 자리를 얻기 전까지 그는 사회에서 끊임없이 배제당하는 존재였습니다.
1990년대 중반, 인터넷의 가능성을 처음 접한 그는 중국 최초의 온라인 기업을 만들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자본은 없었고, 기술력도 없었습니다. 가족들과 친구들조차 “황당한 꿈”이라며 비웃었습니다. 은행에 대출을 신청했지만, 보증이 없다며 거절당했습니다. 창업 초기에는 서버 비용조차 마련하지 못해 매일 매일이 파산 위기였습니다.
잭 마는 인터뷰에서 “그 시절 나는 실패가 내 이름과 같았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거절당할 때마다 “나는 부족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졌습니다. 동시에 그는 “내가 다른 사람보다 뒤떨어지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기회가 올 것”이라는 희망을 붙들었습니다.
그의 도전에 주변의 반응은 냉소적이었습니다. 동창들은 안정된 교사 자리를 박차고 창업을 택한 그를 “미친 놈”이라 했습니다. 투자자들은 “중국인들은 온라인에서 물건을 사지 않을 것”이라면서 비웃었습니다. 심지어 그의 가족마저 그의 선택을 불안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한 발씩 나아갔습니다.
잭 마는 수많은 연설에서 자신의 과거를 솔직하게 털어 놓았습니다.
“나는 시험에 수십 번 떨어졌고, 30번 이상 취업에 실패했다. 그러나 그게 나를 포기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나는 똑똑하지 않다. 하지만 나는 끈질기다. 끈질김이 나를 살렸다.”
그의 회고는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라,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선 그의 생생한 경험담이었습니다.
1999년, 잭 마는 친구 17명과 작은 아파트에서 알리바바를 창업했습니다. 초기에는 투자자를 설득할 영어판 사업계획서를 작성해서 전 세계벤처캐피털에 보냈지만 대부분 거절당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중국 중소기업이 세계와 연결되는 길”이란 비전을 강조했습니다.
결국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이 그의 열정에 감명받아 2,000만 달러를 투자했습니다. 이 투자를 발판으로 알리바바는 급성장했고, 2003년에는 온라인 결제 서비스 ‘알리페이’를 도입해서 중국 전자상거래의 표준을 만들었습니다.
2014년, 알리바바는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하며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IPO를 기록했습니다. 취업에서 번번이 거절당하던 실패자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가 중 한 명으로 우뚝 선 순간이었습니다.
잭 마의 인생을 지탱한 말은 그의 연설에서 자주 인용되고 있습니다.
� “오늘 힘든가? 내일은 더 힘들 것이다. 그러나 모레는 햇살이 뜰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일 밤을 넘기지 못한다.”
이 한마디는 수십 번의 거절과 실패를 버티며 끝내 성공으로 나아간 그의 집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