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봤어?

정주영

by 달여울 작가

정주영은 1915년 강원도 통천에서 가난한 농가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그는 늘 배고픔과 싸워야 했고, 학업 대신 가족 생계를 돕기 위해 소년 시절부터 막노동을 전전했습니다.

1930년대 그는 무작정 상경해 쌀가게 점원으로 일했는데, 하루 15시간이 넘는 고된 노동에도 불구하고 월급은 보잘 것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때 배운 성실함과 신뢰의 중요성은 훗날 그가 현대그룹을 경영하는 경영 철학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광복 이후 한국은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고, 산업 기반은 거의 전무했습니다. 건설업에 뛰어든 정주영은 몇 차례 사업 실패와 파산 위기를 겪었지만, 가장 극적 위기는 1960~70년대 조선소 건설이었습니다. 당시에 은행에 자금을 빌리려 했을 때, 해외은행 관계자는 “한국에는 조선소도, 기술도, 자본도 없다”면서 그에게 문을 잠갔습니다.

세계가 “불가능”이라고 말한 이 거대한 도전에 정주영은 인생의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정주영 본인도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늘 “두려움보다 중요한 것은 실행”이라고 말했습니다.


조선소 건설 계획은 정부와 업계 모두에게 무모해 보였습니다. “쌀 한 톨도 제대로 못 만드는 나라에서 어떻게 20만 톤급 유조선을 건조하겠다는 거냐”는 조롱이 쏟아졌습니다. 심지어 그의 동료들마저 “이번에는 무리일 수 있다”고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안 하면 영원히 못 한다”는 확신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정주영은 훗날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해보기 전에는 그 일이 과연 될지 안 될지 아무도 모른다.”


“돈이 없으면 방법을 찾으면 되고, 방법이 없으면 지혜를 짜내면 된다.”


그의 회고록과 인터뷰에서 그가 한 말들을 보면 늘 단순하지만 힘있는 언어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것은 화려한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수많은 위기를 뚫고 나온 사람의 체험에서 나온 목소리였습니다.


정주영은 영국 런던의 바클레이스 은행을 찾아가서 자금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은행 측이 “조선소 실적도 없는 나라에서 어떻게 대형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자, 그는 500톤급 유조선 설계도면과 울산 앞바다에 그려놓은 조선소 청사진을 내밀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이미 우리 머릿속에는 다 지어져 있습니다.”


그는 자신감과 치밀한 계획으로 은행가들을 설득했고, 결국 3,600만 달러 규모의 차관을 이끌어냈습니다. 1973년 현대조선소는 울산에 착공되었고, 1974년 첫 번째로 26만 톤급 유조선 ‘아틀란틱 배런’을 성공적으로 인도했습니다. 세계가 “불가능”이라던 도전이 현실로 증명된 순간이었습니다.


이후 현대는 세계 최대의 조선업체로 성장했고, 한국은 세계적인 조선강국으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정주영 개인의 도전이 국가 산업 구조를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정주영을 상징하는 말은 너무나 유명합니다.


�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 그리고 또 하나, 그가 자주 입에 올리던 짧은 말 “해봤어?”


이 두 문장들은 불가능을 두려워하지 않고, 행동으로 길을 만든 그의 정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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