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영감을 받아 떨리는 목소리로 구원을
노래한 시인은 이렇게 외칩니다.
“가련한 필멸의 인간들이여, 인생에서 가장
좋은 날들은 가장 먼저 너희를 떠난다.”
그리고 말합니다.
“그대가 붙잡지 않으면 달아날 텐데, 왜
머뭇거리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가?”
시인이 “가장 좋은 나이”가 아닌 “가장 좋은
날들”이라 한 것은 목표를 미래로 무한히
미루는 이들을 꾸짖기에 가장 적절합니다.
시간은 달아나는데, 왜 당신은 마치 영원히
누릴 것처럼 미래의 달과 해를 욕심껏 펼쳐
놓는 것입니까?
시인은 당신에게 하루하루에 관해, 더 정확히는 스러져가는 날들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로 나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는 짧고, 앞으로 올 미래는 불확실하며, 이미 지난 과거는 확정되어 있습니다. 과거는 운명도 더 이상 지배하지 못하고,
그 누구도 되돌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분주한 이들은 과거를 잃어버립니다. 그들에게는 돌아볼 여유가 없고, 설사 있다 해도 후회스러운 지난날을 떠올리는 것은 즐겁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잘못 보낸 시간을 되새기길 꺼립니다.
잠시의 쾌락에 이끌려 저지른 악행조차, 돌이켜
보면 너무나 선명히 드러나기 때문에 그들은 그것을 감히 마주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모든 행적을 돌아보고 떳떳하다고 자신할 수 있는 이가 아니라면, 누구도 기꺼이 지난날을 돌아보려 하지 않습니다.
-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