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ürich Landesmuseum

미술관 보물찾기

by 잠룽리 SammlungLee

스위스 취리히 중앙역 바로 옆에는 Landesmuseum이 있어요. 이 곳이 스위스국립박물관이어서 스위스 역사의 흐름을 볼 수 있고 15세기부터 21세기까지의 사회, 경제적인 변화를 방대한 유물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입장하기 전 박물관 건물에 한 번 놀라실 거예요. 1898년, 건축가 구스타프 굴(Gustav Gull)이 중세 성곽을 연상시키는 신고딕 양식으로 지었다고 해요. 정말 멋져요.



박물관 안은 훨씬 더 멋지고 알찹니다.


명예의 전당(Hall of Fame)에는 페르디난드 호들러(Ferdinand Hodler)의 프레스코화가 있어요. <마리냐노에서의 퇴각(Retreat from Marignano)>인데요, 제작 당시 너무 현대적이라는 이유로 사회적으로도 큰 논쟁이 있었다고 하네요.


<페르디난드 호들러의 '마리냐노에서의 퇴각'>


당시 논쟁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들여다볼까요.


프레스코 논쟁(The Fresco dispute)으로 불리는 당시 이슈는 19세기말, 예술적 신념과 국가적 자부심이 정면으로 충돌했던 흥미로운 사건입니다.


1897년, 박물관 이사회와 국가 박물관 위원회는 새로 지어질 란데스뮤지엄의 '명예의 전당' 벽화를 위해 페르디난드 호들러(Ferdinand Hodler)에게 초안을 요청했다는데요. 당시 보수적인 위원들이 기대한 것은 중세의 전투를 사진처럼 정밀하고 웅장하게 묘사한 역사적 사실주의였다고 하네요. 영웅적인 스위스 군대의 모습을 아주 세세하게 그려 내길 원했던 것이죠.


하지만 호들러가 가져온 초안은 위원들의 기대를 완전히 저버렸습니다. 호들러는 사실적인 묘사 대신 인물들의 반복적인 배치와 강렬한 선을 강조하는 자신만의 '평행주의(Parallelism)' 화풍을 적용했습니다. 호들러의 평행주의 화풍에 대한 집착(?)은 스위스의 유명 미술관 어디를 가셔도 쉽게 확인하실 수 있어요.


<Kunsmuseum Zurich의 페르디난드 호들러의 작품들>

1898년 12월 3일, 잡지 네벨슈팔터(Nebelspalter)에 실린 프리츠 보스코비츠(Fritz Boscovits)의 풍자화입니다. 아래쪽의 신사들이 호들러의 초안을 보며 경악하거나 조롱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은, 당시 이 벽화를 둘러싼 대중과 권위층의 부정적인 시각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어요.


<프리츠 보스코비츠의 풍자화(1898)>>

이 논쟁은 무려 4년이나 지속되었어요. 결국 1899년 6월, 스위스 연방 평의회(정부)가 개입해 호들러의 손을 들어주었대요. 정부는 예술가의 창작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고 판단했고, 호들러는 1900년 3월에 마침내 <마리냐노에서의 퇴각(The Retreat from Marignano)> 벽화를 완성했어요.

이 사건은 스위스 현대 미술사에서 '전통적인 역사주의'가 '근대 예술'에 자리를 내어준 상징적인 순간으로 평가받는다고 합니다. 현재 이 작품은 박물관의 핵심 예술품 중 하나로 꼽힙니다.


어떠신가요. 21세기에 사는 제가 봐도 메인 홀의 호들러 벽화는 현대적인 그림으로 보이는데요. 1800년대 사람들의 4년간 이어졌다는 논쟁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다음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스위스 화가 작품을 볼게요.


이곳 스위스국립박물관에서도 소개할 정도로 스위스를 대표하는 작가 알베르트 앙커(Albert Anker) 작품이에요. 원본 작품은 취리히미술관(Kunstmuseum Zurich)에 있고, 이곳에서는 작품에 대한 설명과 그 배경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어요.


바로 이 작품입니다.

<1848년의 시골학교(The village school in 1848)>

처음 취리히미술관에서 이 작품을 봤을 때는 교실의 아이들 표정이 마냥 귀엽고 재밌기만 했는데요.

국립박물관에서 소개하는 이 작품 설명을 좀 들여다보실까요.


교실 중앙 책상에 앉아있는 아이들은 모두 남자아이들이에요. 교실의 앞과 옆 자리의 빈 공간에 여자 아이들이 책상도 없이, 심지어는 서서 수업을 듣고 있어요. 여자 아이들 옆에는 뜨개실 바구니가 놓여있네요.



그렇다면 지금의 선직국 스위스는 언제부터 남녀가 동등한 교육을 받게 된 걸까요.


법적으로 '완전하고 동등한' 교육 권리를 보장받게 된 것은 1981년 연방 헌법에 양성평등 조항이 명시된 이후이고, 각 주의 교육법 개정으로 여학생들에게 가사 수업을 강제하거나 남학생들과 다른 커리큘럼을 제공하던 관습이 공식적으로 사라진 건 1990년대 이후라고 합니다! 무려 스위스에서 말이에요.


스위스 역시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그 내부에서는 평등을 향한 치열한 논쟁과 변화가 있었네요. 제가 알베르트 앙커의 작품을 처음 봤을 땐 마냥 예쁘고 정겨웠지만, 스위스 역사를 어렴풋이 알게 되고 다시 봤을 때 느꼈던 서글픔과 짠함은 아마도 '예쁜 그림' 속에 갇힌 소녀들의 열정과 가능성 때문이었겠죠.


이래서 제가 알베르트 앙커 작품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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