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보물찾기
독일 뮌헨에는 도심에서 서핑을 즐길 수 있는 영국정원이 있대요. 이 정원을 흐르는 아이스바흐강이 만드는 1m 높이의 파도에 서퍼들이 찾아오면서 도심 서핑지로 유명해졌어요.
서퍼들을 만나러 한번 찾아가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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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365일 서퍼들이 찾아오는 성지라고 했는데요. 서퍼들은커녕 파도는 어디 있나요. 여기가 아닌가 둘러보니 서핑금지 팻말이 있어 그제야 검색을 해봤습니다.
지난해 10월 뮌헨시 당국이 강바닥에 쌓인 퇴적물, 자갈, 쓰레기 등을 치우고 청소한 뒤 높은 파도는 사라졌고, 시 당국과 서퍼들 사이에서 파도를 복원하는 방법에 대한 논의가 이어져오고 있다고 하네요. 그전까지는 서핑 금지입니다.
비록 사전 조사 부족으로 도심 서퍼는 만나지 못했지만, 도심 서핑의 성지였던 이곳 바로 앞에 위치한 샤크 컬렉션(Sammlung Schack) 개장 시간은 정확히 알아보고 갔습니다.
이 미술관은 독일의 아돌프 프리드리히 폰 샤크(Adolf Friedrich von Schack) 백작이 1850년대부터 수집한 당대 독일 화가들의 작품들에서 시작했습니다. 그가 수집한 작품들이 늘어나면서 이를 대중에게 공개하기로 했고, 1866년 자신의 저택에 처음으로 갤러리를 열었습니다. 당시에 이 갤러리는 독일 낭만주의 예술의 보고로 입소문이 났었다고 해요.
1894년 샤크 백작이 사망하면서 그는 자신의 컬렉션을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에게 유증 했습니다. 단, "컬렉션을 뮌헨에 그대로 보존할 것"이라는 조건을 걸었다고 하네요. 황제는 이 컬렉션을 위해 새로운 미술관 건물을 짓도록 명령했습니다. 건축가 막스 리트만(Max Littmann)이 설계한 지금의 건물은 1907년에 착공하여 1909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샤크 백작은 생전에 단순히 완성된 그림을 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젊고 재능 있는 화가들에게 생활비와 여행비를 지원하며 작품 활동을 독려했다고 해요. 또한 그는 "예술은 영혼의 안식처가 되어야 한다."라고 믿었기에 이곳의 작품들은 대체로 문학적이고 몽환적인 백작의 확고한 취향의 컬렉션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샤크 백작이 사랑했던 문학적이고 몽환적인 작품들 보러 들어가 보실까요.
이 작품은 오스트리아 출신 화가 에두아르트 폰 슈타인레(Eduard von Steinle)가 1864년에 그린 <탑 위의 파수꾼>(Der Türmer)입니다. 일단 파수꾼이 미남이에요. 그리고 이 작품 마치 내한한 외국 유명 뮤지컬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지 않으신가요. 파수꾼의 무언가를 기다리는듯한 간절한 눈빛과 흐느적거리듯, 발레를 하는 듯, 서 있는 자세가 정말 멋집니다.
당시 독일권 예술가들은 중세 시대를 순수함과 영적 가치가 살아있던 황금기로 여겼습니다. 이 작품 속 파수꾼은 단순히 성을 지키는 병사를 넘어, 세상의 변화를 지켜보고 경고하거나 혹은 이상향을 꿈꾸는 예술가나 지식인의 고독한 모습을 상징하기도 한다네요.
다음 작품은 오스트리아의 화가 모리츠 폰 슈빈트(Moritz von Schwind)가 1858년에 그린 <이른 아침>(Die Morgenstunde)입니다. 슈빈트는 작곡가 슈베르트의 절친한 친구였고, 서사적이고 서정적인 화풍의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이 작품 역시 독일 낭만주의 특징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어요. 우선 창문을 통해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압권입니다. 바닥에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와 환하게 빛나는 여인의 흰 옷이 이제 막 시작된 하루의 신선함을 전달해 주네요. 창밖을 바라보는 여인의 뒷모습은 낭만주의 회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치입니다. 관람객이 여인의 시선을 따라가게 함으로써, 창밖의 풍경에 대한 동경과 설렘을 공유해 주네요. 창밖으로 보이는 알프스산맥은 좁은 실내에서 벗어나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인간의 내면적 갈망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샤크 백작은 모리츠 폰 슈빈트의 작품을 특히 아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곳에는 슈빈트의 또 다른 작품들도 많이 전시되어 있어요.
정적이고 포근한 실내 분위기와 대비되는 또 다른 실내 작품을 보실까요.
이 작품은 독일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화가 카를 슈피츠베크(Carl Spitzweg)가 1839년에 그린 <가난한 시인>(Der arme Poet)이에요. 슈피츠베크의 대표 작품 중 하나로, 당시 예술가들의 궁핍한 삶을 유머러스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우산은 비가 새는지 천장을 받치고 있습니다. 방안에는 냉기가 도는지 시인은 털모자를 쓰고 가운을 입고 있어요. 이렇게 열악한 환경인데도 시인은 창작활동에 몰입하고 있네요. 바닥과 침대 주변에 쌓인 두꺼운 책들은 그가 지적 열망에 가득 찬 인물임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반면에 난로 속에는 땔감이 없어 종이를 태워 온기를 유지하려는 듯하네요. 추위를 참지 못하는 저에게는 정말 안타까운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작품은 19세기 초중반 독일의 정치적 억압 때문에 사람들이 공적인 활동보다는 개인적인 내면세계나 소박한 일상으로 눈을 돌렸던 시대상을 '다락방에 숨어 시를 쓰는 예술가'의 모습으로 상징화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샤크 컬렉션의 대표 작품을 보여드릴게요.
이 작품은 독일의 유명한 초상화가이자 사실주의 화가인 프란츠 폰 렌바흐(Franz von Lenbach)가 1860년에 그린 <목동(The Shepherd Boy)>입니다. 나른한 오후, 풀밭 위에 누워 한 손으로 눈을 가린 채 휴식을 취하고 있는 어린 목동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굉장히 풍속적인 장면인 것 같은 반면에 몽환적인 느낌도 드네요. 소년의 몸 위로 쏟아지는 강렬한 태양빛과 그로 인해 생기는 짙은 그림자의 대비가 매우 드라마틱해요. 렌바흐는 이 작품에서 고전적인 화법을 따르면서도, 배경의 풀과 하늘을 거친 붓터치로 묘사하여 대기의 질감을 생생하게 살려냈습니다. 이는 훗날 인상주의가 추구했던 '순간의 빛'에 대한 탐구와 맥을 같이 한다고 합니다. 소년은 누워서 휴식하고 있지만, 여름날의 뜨거운 열기가 생동감을 주는 것만 같아요.
렌바흐는 샤크 백작의 후원을 받으며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여행했고, 그곳에서 대가들의 작품을 모사하며 자신만의 빛과 그림자 해석법을 완성했다고 해요. 백작님의 후원으로 이탈리아와 스페인 여행이라니, 참으로 부럽습니다. 어찌 됐든 이 작품은 화가가 자연과 인간의 순수한 조화를 탐구하던 시기의 소중한 기록입니다.
이 작품을 보자마다 떠오른 작품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폴란드 바르샤바국립미술관에 있는 유제프 헤우몬스키(Józef Chełmoński)의 <늦여름(Indian Summer, 1875)>입니다.
렌바흐의 목동처럼 들판에 누워 있지만 해를 가리지 않고 떠다니는 거미줄을 잡으려 하고 있네요. 렌바흐의 작품은 뜨겁고 건조한 여름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지는 듯하고, 유제프 헤우몬스키의 작품은 축축하지만 맑은 초가을날의 공기가 전해져 옵니다. 두 작품 모두 새까만 발과 남루한 옷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어 당시 보수적인 비평가들로부터 천박하다는 비판을 받았다고 하는데, 꾸며지게 예쁘고 단정한 작품 속의 주인공들보다 있는 그대로의 아름답고 자연스러움을 드러내고 있는 그들에게 더 정이 가네요.
고단한 노동 뒤에 찾아온 찰나의 평화를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포착한 작품들 어떠셨나요. 평평한 곳만 보면 눕고 싶어지는 저의 마음을 너무도 잘 대변해주고 있어 더욱더 시선을 뗄 수가 없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