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보물찾기
수키엔니체는 폴란드어로 Cloth Hall을 뜻하는데요, Cloth Hall은 중세 유럽 도시에서 모직물(천)을 거래하던 상업 건축물을 뜻합니다. Cloth Hall은 의류, 가죽 제품, 왁스, 소금, 후추, 향신료와 동아시아의 비단을 비롯한 각종 수출품과 수입품을 판매하는 국제 시장 역할을 했기 때문에 유럽 곳곳에 위치한 시장에 비해 규모가 크고, 복도와 현관에서는 여러 국가의 무역상이 거래를 진행했고 물건을 구입할 형편이 되는 현지인들은 원하는 모든 사치품을 여기서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폴란드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Cloth Hall이 1555년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크라쿠프의 수키엔니체입니다. 이곳은 16세기말까지 서양과 동양을 잇는 국제 교역의 중심지였으며, 지금도 가판대에서는 관광객을 위한 먹거리와 기념품을 구입할 수 있어요.
이곳에 '수키엔니체(Sukiennice ) 박물관'이 있습니다. 정확히는 '크라쿠프 국립박물관'의 수키엔니체 분관이에요.
들어가 볼게요.
어린 친구들이 현장학습을 나와있습니다. 유럽 미술관을 다녀보면 이렇게 학생들이 현장학습을 나와서 미술과 역사 수업을 듣는 경우가 많네요.
처음으로 보실 작품은 폴란드 국민들이 사랑하는 작가 얀 마테이코(Jan Matejko)의 작품입니다.
먼저 그가 어떤 작가였는지 소개해드릴게요.
폴란드의 국민 화가로 추앙받는 얀 마테이코(Jan Matejko, 1838–1893)는 단순한 예술가를 넘어, 나라를 잃었던 시기 폴란드인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인물입니다.
마테이코가 활동하던 19세기, 폴란드는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에 의해 영토가 분할되어 지도상에서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그는 "예술은 무기이며, 조국과 분리될 수 없다"라고 믿어 폴란드 역사의 가장 찬란했던 순간(승리)과 뼈아픈 실책(패배)을 모두 거대한 캔버스에 담아냈고, 폴란드 국민들에게 "우리는 한때 이렇게 강대한 국가였다"는 자긍심을 심어주어 독립 의지를 불태우게 했다고 하네요.
그가 그린 역사적 인물들의 초상화는 너무도 강렬해서, 오늘날 폴란드인들이 상상하는 역사 속 인물의 얼굴은 대부분 '마테이코가 그린 얼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랍니다. 폴란드인들에게 "지그문트 3세는 어떻게 생겼나?" 혹은 "잔 다르크는 어떤 모습인가?"라고 물으면, 열에 아홉은 마테이코가 그린 얼굴을 떠올린다고 합니다. 그가 만든 이미지가 곧 폴란드의 공식 역사가 된 셈이에요. 우리나라에서 '궁예'하면 '배우 김영철'을 떠올리는 것과 같은 선상일까요.
이 작품은 얀 마테이코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인 '프루센의 경의(Prussian Homage)>'입니다.
1525년 4월 10일, 크라쿠프 광장에서 튜턴 기사단의 단장 알브레히트가 폴란드 국왕 지그문트 1세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무릎을 꿇은 역사적 사건을 다룬 작품입니다.
사진으로 담기에는 그 크기가 압도적이라 검색 이미지로 다시 보여드릴게요.
화면 중앙의 오른쪽에 황금예복을 입은 지그문트 1세는 폴란드의 황금기를 상징합니다. 폴란드 국민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고자 했던 과거의 찬란했던 역사가 바로 이런 작품을 통해 그려졌던 거였죠.
이 작품에는 얀 마테이코의 페르소나인 광대 '스탄치크(Stańczyk)'가 자리 잡고 있는데, 혹시 보이실까요.
국왕의 발치 아래 고뇌에 찬 표정으로 턱을 괴고 앉아있는 광대 '스탄치크'는 얀 마테이코 본인의 얼굴을 담은 그의 페르소나입니다. 폴란드의 풍요로움과 영광을 상징하는 지그문트 1세의 발아래 고뇌하고 있는 스탄치크는 훗날 폴란드에 닥쳐올 비극적 미래(프로이센의 성장과 폴란드의 분할)를 예견하며 슬퍼하고 있는데요, 이는 지그문트 1세의 당당한 모습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네요. 그의 역할이 범상치 않아 보이시지 않나요.
스탄치크를 단독으로 내세운 작품은 바르샤바국립미술관의 대표 작품인 '스몰렌스크 상실 소식을 접한 왕비 보나 시절의 광대 스탄치크(Stańczyk w czasie balu na dworze królowej Bony wobec straconego Smoleńska), 1862'입니다.
이 작품은 1514년, 폴란드 왕실이 파티를 열며 즐거워하고 있을 때(작품의 오른쪽), 스탄치크 혼자 어두운 방에 앉아 폴란드의 전략적 요충지인 스몰렌스크가 러시아군에 함락되었다는 편지를 읽고 절망하는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깊게 팬 주름과 허공을 응시하는 눈빛은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는 지식인의 고뇌를 보여주는데, 마테이코는 이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었어요.
오늘날 '야근하는 직장인', '카드명세서를 받은 직장인'으로 패러디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해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인데요, 회사원으로서 감정 이입이 되어 그런 걸까요.
다음은 폴란드의 인상주의 작품을 보실까요.
레온 비출코프스키(Leon Wyczółkowski)의 <우크라이나의 쟁기질(Plowing in Ukraine), 1892>입니다.
비출코프스키는 얀 마테이코의 제자이기도 했지만, 스승의 무거운 역사화에서 벗어나 '빛나는 폴란드의 자연'을 발견한 혁신가이자, 빛의 변화와 색채의 조화를 중시한 화가였습니다.
이 작품은 당시 폴란드 영향권이었던 우크라이나 대지의 광활함과 농부들의 고된 노동을 따뜻하고 화사한 빛의 분위기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땅의 질감과 소들의 움직임이 아주 생생하게 느껴지네요.
우리에게 친숙한 모네, 르누아르와 같은 프랑스 인상주의 작가들의 작품과 비교해 보시면 흥미로운데요.
프랑스 인상주의 작가들은 빛에 의해 시시각각 변하는 사물의 '표면적 인상'에 집중합니다. 형체는 흐릿해지고 빛의 파동을 포착하는 데 주력해요. 폴란드의 작가 비출코프스키 작품은 빛을 단순히 시각적 현상으로만 보지 않았습니다. 사진 속 작품처럼 강렬한 햇살이 대지와 가축의 몸에 부딪혀 뿜어내는 생명력을 강조합니다. 빛이 형태를 해체하기보다는, 오히려 사물의 질감과 존재감을 더욱 부각해 뜨겁게 달구는 것 같지 않으신가요.
작품의 배경에서도 차이가 나는데요. 프랑스인상주의가 파리의 카페, 유원지, 기차역 등 근대 도시의 세련된 일상과 여가가 주된 소재라면, 비출코프스키 작품은 향토성이 매우 강하죠. 그는 폴란드의 광활한 평원, 농부들의 묵묵한 노동, 쟁기를 끄는 소들을 즐겨 그리며, 당시 나라를 잃은 폴란드인들에게 우리의 땅과 뿌리를 확인시켜 주는 정서적 울림을 주었다고 합니다. 보랏빛을 사용하여 대지의 뜨거운 빛을 담아낸 <우크라이나의 쟁기질>, 신선하고 멋지지 않으신가요.
마지막 조각상은 지그문트 트렘베츠키의 <얀 코하노프스키와 우르슐라 (Jan Kochanowski with Urszula), 1878>입니다.
조각은 딸을 무릎에 앉히고 악기를 든 채 슬픔에 잠긴 아버지의 모습을 담고 있어요. 바로 폴란드의 시인 얀 코하노프스키가 그의 어린 딸 우르슐라를 먼저 떠나보내고 그 슬픔을 노래한 시집 <비가(Lamentations), 1580>와 관련된 작품입니다. 시집 <비가(Lamentations)>는 폴란드 문학사뿐만 아니라 세계 문학사에서도 부성애를 다룬 절절한 시집 중 하나로 꼽힙니다.
시집은 총 19편의 시로 구성되어 있고, 어린 딸 우르슐라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 신앙에 대한 회의, 그리고 마지막의 달관에 이르는 감정의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제1번(슬픔의 시작)과 제7번(딸의 유품을 보며), 그리고 제8번(빈자리)의 핵심 내용을 발췌해 소개해드립니다.
제1번 (Tren I) - 슬픔의 시작
세상의 모든 눈물과 슬픔이여,
헤라클레이토스의 비탄과 시모니데스의 애달픈 노래여,
세상의 모든 근심과 탄식과 고통이여,
모두 나의 집으로 모여 내 손을 잡아다오.
내가 사랑하는 아이, 나의 어린 딸을 함께 울어다오.
무자비한 죽음이 마치 독수리가 어린 새끼를 낚아채듯,
나의 작고 소중한 보물을 앗아갔구나.
비가 제7번 (Tren VII) - 아이의 옷을 보며
슬프도다, 여기 놓인 네 작은 옷가지들,
이제는 주인을 잃어 나를 더욱 아프게 하는구나.
네 어머니가 정성껏 지어준 이 예쁜 옷들은,
너를 신부로 단장해 주려 준비한 것이었거늘.
이제 너는 차가운 땅속에서 어두운 옷을 입고 있구나,
네 베개는 흙 한 줌, 네 이불은 무덤의 덮개뿐이로다.
비가 제8번 (Tren VIII) - 텅 빈 집
네가 떠나고 나니 이 큰 집이 텅 비었구나,
수많은 사람이 있어도 내 눈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너는 언제나 조잘대며 온 집안을 밝히고,
내 무릎에 앉아 노래를 불러주던 아이였지.
이제는 네 웃음소리도, 네 발소리도 들리지 않는구나.
슬픔만이 방구석마다 가득 차 나를 짓누르는구나.
시를 읽고 조각상을 다시 보니 닿을 수 없는 그리움이 더 절절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