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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현수 Jul 16. 2020

여보, 당신도 한번 나가보지?

토론토 주부가요열창

“여보, 당신도 한번 나가보지?” 

 경향신문사 기자를 그만두고, 방송 MC로 나선 이상벽에게 MBC 제작 3부 이창식 부장은 “아줌마들 노래 프로그램해 볼 생각 없어…”하며 권한다. “아! 이제 망했다. 잘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었는데, 웬 아줌마 프로…?”  그의 속마음을 알았는지,  이창식 부장은 “거지 같은데 라도 발을 담그고 있어야 한다”며 방송의 속성을 알려 준다. 하지만,  그 프로가  ‘대박’이 난다. 

MBC 주부가요열창의 사회자 이상벽

 첫 회부터 방송가에 ‘주부 신드롬’이 창조되고, 시청률이 30%를 넘는다.  마침 올림픽 취재차 한국에 온 CNN, NHK 등의 해외 방송에서 ‘이것은 혁명이다’라는 특집 방송을 할 정도였다.  당시 ‘주부가요열창’의 인기는 대단했다.  이상벽은 화려한 쇼에 어울리지 않는 착한 남편 같은 이미지로   명 MC의 자리를  꿰찬다.  첫 방송이 나가고 3개월 뒤, 1988년 여름에 주부가요열창을 보러 여의도 공개홀에 모여든 인파는 2500여 명, 질서 유지를 위해 여의도 경찰이 총출동되기도 했다.

  갑자기 가요 학원이 붐비기 시작했었다.  주부들이 청소하면서 빨래하면서 부르던 콧노래가 아니라 본격적인 가수 수업을 받기 위해서 학원을 찾았다는 얘기다. “당신도 한번 나가보지 그래.” 주부들이 남편으로부터 이런 말을 한마디씩 듣게 만들었던 프로가 ‘주부가요열창’이었다.  노래에 관심 있는 주부들을 흥분시키고  신데렐라의 꿈을 다시 같게 만드는 이 프로의 매력은 “부부가 함께 하와이까지 갈 수 있다”는 부상의 푸짐함도 한몫 거들었다.  

일주일에 ‘주부가요열창’에 출연하는 주부는 여덟 명이지만, 2백대 1이라는 좁은 문을 뚫고 본선에 진출한 실력파들이었다. 이들은 방송에 나가기 위해 닷새 동안 훈련을 쌓는 까닭에 시청자들에게 ‘진짜 가수’ 같은 느낌을 던져 주었다. 

2013 토론토 주부가요열창 수상자

 노래 지도 선생은 ‘1987 대학가요제’ 금상을 수상한 신윤미. 두 차례의  리허설을 하는 동안 무대 앞에서 출연자의 노래와 율동까지 꼼꼼히 야무지게 지도하는 그녀 덕에 주부들은 완벽한 가수로 변신할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의 산파 역할을 한 담당 피디는 김영철이다. 성균관 대학 출신인 김영철은 1977년에 MBC 입사한  예능 피디인데, 이곳 토론토에 거주하고 있는 김미영(한국무용연구소) 선생의 친동생이기도 하다. 당시 부조정실에서 그의 모습은 꼭 무엇엔가 홀린듯한 손짓, 목소리로 “남편 대기, 아냐, 출연자, 안돼, NG 났어 NG…!  다시 4번 주부부터.” 음악이 나오면 마치 지휘자가 된 듯 몸으로 흐름을 탔다.  김영철은 15여 년 뒤, 진주 MBC 사장을 한다.

 당시 단골 심사위원은 고인이 된 이종환, 작곡가 김영광, 작사가 이건우, 초대가수 설운도, 송대관, 김상희, 최진희 등이었다. 심사기준은 당연히 음악성은 물론이지만, 열정과 개성을 특히 중요시했다. 

  이 프로그램이 성공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노래를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다. 하지만, 남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노래 부를 기회가 적은 주부들에게  기회를 준 점이다. 집에서 보는 분 들의 대리 충족, 보상 심리를 채워줌으로써, 어색하고 서툰 것이 아니라, “ 나도 꾸미고 부르면 이렇게 될 수 있다.”라는 걸 보여주자는 의도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한 동안 신문의  TV 프로그램에 밑줄까지 치고 ‘주부가요열창’ 시간을 기다리는 때가 있었지만, 4년여 가 지나며 관심이 시들해진다.  이처럼 관심이 줄어든 것은  프로그램이 날로 세련되고 전문화되기 때문이었다.  그 전문화되고 세련된 것이 보통 사람들로부터 멀어지는 원인이 된다. 수준이 높아지고 무대 기법이 세련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 점이 어쩐지 접근하기 어려운 거리감을 안겨 주게 된다. 출연하는 주부들의 옷차림도 날로 세련되어 행주 냄새를 맡기 힘들게 되었다. 일반 시청자와의 공감대가 무너져 가고, 미처  그 속도를 쫓아가지 못했던 것이다. 문화나  예술이 전문화하면 할수록 보통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려워지고 대중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얘기다.  

2013 토론토 주부가요 열창 대상자

   이번에 한국일보에서 주최하는 주부가요열창은  기존의 노래자랑 대회 틀을 벗어나 ‘원조 주부가요열창’의 수준으로 대회를 준비한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여보, 당신도 한번 나가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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