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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현수 Aug 02. 2020

약수동 사철탕집

복날, 사철탕에 고춧가루 넣고 흰쌀밥 말아먹으면...

  약수동 사철탕집

  몇 년 전 한국에 갔을 때다. “뭐, 먹을래?” 차에 타자 마자 친구가 묻는다. “야! 너, 캐나다에서는 사철탕 못 먹잖아? 한국에 온 김에 먹어볼래? 세검정에 사철탕 잘하는 집이 있는데 엄청 잘해, 갈래?”  답 할 시간도 주지 않고, “지난번 미국에서 손님 왔을 때 모시고 갔는데, 정말 잘하더라. 궁중 요리처럼 나와! 가격은 좀 셌지만…” 오랫 만에 고국에 온 친구에게 뭘 먹일까, 고민을 했던 모양이다. 

  차의 방향은 벌써 세검정이다. 사실 오랜만에 고국에 왔는데 뭘 먹은들 맛이 없을까? 그런데 친구 사이면서도 손님맞이하는 입장에서는 좀 더 나은 것을 대접하고 싶은가 훈훈한 마음이 보인다. 점심 약속이었지만, 시간은 벌써 오후 2시다. 저녁 6시에도 약속이 있기에 마음은 좀 급했지만, 그래도 바쁜 시간 내어 좋은 음식 먹으러 가자는 친구가 고마웠다. 한참 동안 묵은 얘기를 나눴는데도, 차는 겨우 2km 정도 온 것 같다. 서울의 교통 체증은 변함이 없다.  안 되겠는지 친구가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한다. “저녁 약속 어디서 있니? 약수동에 잘하는 곳 있는데…”  “약수동?” 약수동은 내가 어렸을 적에 살던 곳이다. 음식보다는 다녔던 초등학교도 한번 볼 바람으로 그리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만만한 거리가 아니다. 오후 4시가 다 되어 간, 사철탕집은 약수 동사 거리과 장충초등학교 사이에 있는 허름한 2층 집이었다.  어중간한 시간이라 손님들은 별로 없었지만, 한눈에 봐도 관록이 있어 보였다.  한지에 붓글씨로 쓴 메뉴판이 특이하다. “아줌마, 우리 멀리서 왔어요. 캐나다요… 특별히 존 걸로 줘요.” 친구가 너스레를 떤다. 너스레 덕분인지, 고기가 한결 다르다. 시장기도 한몫했지만, 정말 맛있게 먹었다. 벽에 붙여 놓은 신문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부산대 한문학과 강명관 교수가 쓴 글인데, 흥미 있는 부분만 간추려 옮긴다.


   <보신탕의 원래 이름은 개장국이다. 조선 정조 때 문헌 ‘경도잡지’에 의하면 개장국을 먹는 것은 복날 풍속이다. “개고기를 파의 밑동과 섞어 푹 찐다. 닭고기나 죽순을 넣으면 맛이 더욱 좋다. 혹 국을 끓여 고춧가루를 뿌려 흰쌀밥을 말아서 먹기도 한다. 이것을 먹고 땀을 내면 더위를 물리치고 허한 기운을 보충할 수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순조 때 홍석모가 쓴 ‘동국세시기’에도 개장국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시장에서도 많이 판다”는 내용이 있어 조선 후기에는 서울 시내에 개장국을 파는 집이 있었던 것 같다. 개고기는 성균관 유생들에게 공급하였던 기록도 있다. “19세기 초, 성균관에는 별식 날이 있었는데, 초복에는 개고기를 중복에는 참외 2개, 말복에는 수박 1통을 주었다 한다.  성균관은 국립대학이니, 나라에서 보신탕을 학생들에게 준 셈이다. (2008.8.4. 서울신문 25면)>

  신문 칼럼에 사철탕의 유래가 잘 정리되어 있다.  사철탕집을 나오니, 벌써 저녁 약속 시간이 촉박해 정작 가보고 싶었던 모교 장충초등학교는 가 보지도 못했다.  사철탕은 먹는 사람, 안 먹거나 먹기를 반대하는 사람으로 뚜렷이 갈린다.  그 논쟁은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참 오래됐다.


  한국에 간 김에 캐나다에서는 못 먹는 음식이니 추억 삼아 먹어본 것이지만, 

외국인들의 눈에는 썩 좋은 풍습이 아닐 것 같아, 앞으론 자제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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