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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현수 Aug 08. 2020

고수 다음에 명창

연예인의 정치인 지지는 순수해야 한다.

 

 

     문화체육부 장관 유인촌. 그가  장관이 된 계기는  1990년에 출연했던 KBS 2TV 드라마 '야망의 세월'에서 이명박  역을 했기 때문이라 한다. 이 과정에서 유인촌과 이명박 대통령은 돈독한 친분을 쌓기 시작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직 시절에는 500억 원을 들인 서울문화재단의 첫 이사장에 유인촌을 선임하는 등 신뢰가 각별했다.  그 뒤에도 유인촌은 이명박의 대통령 선거 캠프에서 주요  요직을  맡으며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공을 들였다.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 배우 유인촌

    탤런트가 대통령 후보를 도와 새로운 정부의 고위직에 오른 예는 박규채의 경우도 비슷하다. 박규채는 1982년에 MBC 드라마  ‘공주 갑부 김갑순’ 역을 하며 "민나 도로보 데스(모두가 도둑놈)!"라는 말을 유행시킨다. 그 당시는 전두환 대통령 시절이어서 하루가 멀다고 대학생들이 데모를 하던 때였는데,

학생들이 박규채(김갑순 역)의 “민나 도로보 데스(모두가 도둑놈들)!”를 구호로 외치며 데모를 하였다. 전두환 정부는 서둘러 드라마를 중단시켰고, 박규채는 갑자기 모든 방송의 출연이 금지되어 실업자(?)가 되었다.  그 뒤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의 특별보좌관을  시작으로  김영삼 후보를 도와 새로운 정부의 탄생에 도움을 보탠다.  그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탤런트로는 처음으로 문민정부의  영화진흥공사 사장(차관급)에 임명된다.

                        

문민정부에서 영화진흥공사   사장을 한 배우 박규채

 배우 김명곤도 노무현 정부의 문화체육부장관(2006년)을 지냈다. 김대중 정부 때 국립극장장을 한 김명곤은 평소 민주화와 진보의 가치에 대한 노무현 후보의 신념에  호감이 있던 터라 선거운동을 하던 노 전 대통령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기초 예술 진흥 정책에 대해 시종일관 시장주의적 입장을 피력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일국의 대통령을 하시겠다는 분의 문화 예술에 대한 식견이 이토록 천박하다니 정말 실망스럽습니다!"라는 말을 한다. 그 뒤 자리는 매우 어색하게 마무리되어 노무현후보가 대통령이 되기 까지 다시 만나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 차기 장관 후보로 참모진이 수많은 인사를 검토하는데, 노 전 대통령이 독자적으로 김명곤을 낙점해 다들 놀랐다고 한다. 후보 시절에 나눴던 '흰소리'가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노무현 정부에서 문화체육부장관을 한 <서편제>의 김명곤

 연예인 출신으로 처음 장관에 임명된 이는 손숙이다. 그는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5월 환경부 장관직에 올랐으나, 취임 직후 예정됐던 연극 <어머니>의 러시아 공연 때 전경련으로 받은 격려금 2만 달러 파문으로 32일 만에 퇴진한다.

 연예인은 아니지만 영화감독 이창동도 노무현 정부 때 초대 문화부 장관이 됐다. 당시 장관으로 임명된 이창동 감독이 캐주얼복으로 문화부 공관에 본인의 승용차(지프)를 타고 갔는데, 입구에서 경비가 방문객으로 오해하여 방문증을 발급받고 들어가게 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판소리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고수(鼓手) 다음에 명창(名唱)이란 말이 있다. 소리하는 명창보다 북으로 장단을 치는 고수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아무리 뛰어난 명창이라도 뛰어난 고수가 없으면 그 소리는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는 법이다. 그러다보니 정치인들은 대중의 인기를 받는 연예인의 지지를 받기를 원한다.

고수와 명창

 무사(武士)와 악사(樂士)의 관계를 그린 소설 <무사와 악사>의 한 대목이다. “무사가 칼을 차고 지나가면 그 뒤엔 그를 칭송할 악사가 필요한 법이다. 칼이 허리에서 절그럭거려서 무사는 자기 입으로는 자찬의 노래를 읊을 수가 없다. 악사는 바로 이런 때를 대비했다가 무사의 눈짓이 날아올 때 재빨리 악기를 꺼내 황홀한 음악을 탄금 하는 것이다. 무사님이 작업하실 때 우리 악사는 뒷전에서 잘한다! 옳소! 하고 소리나 쳐주면 되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에서 연예인들이 특정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군사 정권 시절에는 감히 생각지 못했다. 자칫 다른 후보를 지지했다가 무슨 불이익을 당할지 몰랐다. 연예인들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당당히 밝히게 된 것도 정치적 민주화에 따른 새로운 현상이다.


 하지만, 명창과 고수의 관계나 정치인과 지지 연예인의 관계는 무사와 악사처럼 뒷전에서 “옳소!”나 하면서 딴생각하는 그것과는 달라야 한다. 상하 관계도 아니며 고용 관계도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 기대 없는 순수한 지지였으면 좋지만, 사람 사는 관계가 그렇지 못하다. 세상에 공짜밥은 없기에 후보들도 도와준 분들에게 배려를 안 할 수 없다.


 하지만, 그전에도 특정 정치인의 진영에 들어가서 활동한 공로로 정계 및 행정부로 입문한 연예인들이 있었지만, 경위야 어찌 되었든 연예인이 정치인이나 행정가로 성공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한마디로 무사에겐 무사의 길이 악사에겐 악사의 길이 있듯, 연예인에게는 연예인의 길이 있다. 연예인이 특정 정치인을 지지해 무언가 보상을 노린다면 그것은 본인을 사랑하는 대중을 무시하는 행위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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