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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현수 Aug 19. 2020

'혼코노'로 진화하는 노래방

 

 노래를 부르며 잠시나마 시름을 풀어 보는 ‘풀이 문화’는 우리 민족 만의 탁월한 해법인 것 같다.


노래를 처음 만든 사람, 근심 걱정이 많기도 많았구나/ 말로 하려 하니 다 못하여, 노래 불러 풀었단 말인가 / 진실로 풀릴 것이면, 나도 불러 보리라


조선의 문필가 신흠(1566~1628년)이 지은 평시조이다. 말로 하기 어려운 깊은 뜻을 노래에 담아 표현함으로써, 걱정과 근심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시 속에 녹아 있다. 이처럼 우리는 예부터 노래를 좋아한 민족이다. 후한서(後漢書)에서도 우리 민족을 가리켜 ‘그들은 남의 것을 뺏는 일이 없으며, 밤낮없이 모여 노래 부르기를 좋아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삶이 버거울 때 가족과 친구와 함께 노래하며 마음에 덕지덕지 묻은 때를 털어 버리는 선조들의 지혜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이곳 토론토에도 가까운 이들의 모임에는 2차로 노래를 부르러 가는 경우가 많다. 아예 노래방 시설을 집에 갖춘 사람들도 있어, 노래 몇 곡쯤은 준비해야 모임 자리가 불편하지 않다. 사실 노래방이 생긴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최초의 노래방 기계인 가라오케는 1971년 이노우에(1940년생)라는 일본인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그는 정작, 이 기계를 특허 내지 않아 돈은 다른 사람들이 벌게 된다. 1976년경부터 부산 지역에 가라오케 문화가 상륙하게 되지만, 초기 LDP(레이저 디스크 플레이어)는 값이 비싸 일반 대중들보다는 일부 특정 계층을 겨냥한 고급 향락 문화였다. 그러다가 컴퓨터 엔지니어인 로열 전자의 현중당이 개발한 컴퓨터 노래반주기(CMP)의 보급으로 노래방이 대중화된다. 한국 최초의 노래방은 1991년 5월에 문을 연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의 ‘하와이 비치 노래연습장’인데, 당시 노래연습장의 인기는 대단했다. 예전에는 쉽게 접 할 수 없었던 가라오케와는 달리 저렴한 이용 요금(곡당 300원 정도)과 노래 반주, 자막, 영상이 조화된 놀이 문화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전국에 확산되기 시작했다.

코인 노래방

 이렇게 시작된 노래방의 인기는 여러 가지 부가산업이 동반 상승하는 시너지 효과를 가져온다. 특별히 놀이 문화가 없던 서민들을 위한  대중문화가 보편화되고, 경제적으로는 전자 산업의 호황으로 이어져, 한국이 최첨단 수준의 음향 기술 보유국이 되는 토대가 되었다. 또한  음악 관련 콘텐츠 및 엔터테이너 산업의 발전에 디딤돌 역할을 하여 지금의 ‘한류 문화’가 있게 된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가라오케를 처음 발명한 이노우에는 부자가 되지는 않았지만, 유명해 지기는 했다. 2004년 하버드대에서 열린 이그노벨상(노벨상을 풍자해서 만든 상으로 기발한 연구와 업적에 대해 시상) 시상식에서 이노우에는 음악 산업계에 이바지한 공을 인정받아 이그 노벨상을 받는다. 그가 무대에 오르자 객석의 저명한 과학자와 학자들은 그가 마치 인기 록 음악가나 되는 양 열렬히 환호했다. 그런 다음 실제 노벨상 수상자들로 구성된 합창단이 ‘Can’t take my eyes off of you(나는 당신에게서 눈을 뗄 수 없어요)’란 노래를 불렀고  관객들도 같이 불렀다.  아마, 노래방 기계가 없었다면, 우리가 살며 노래 부르는 일은 많지 않았을 성싶고, 노벨수상자들의 합창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에 노래방이 가장 많았던 해는 2006년으로 전국에 3만 7994개에 달했는데, 이후 서서히 수가 준다. 김영란법 등으로 접대 문화가 점차 사라 지면서 노래방 폐업이 많아지게 된다. 기존 노래방이 주춤하는 사이에 코인 노래방이 그 자리를 메꾼다. 코인 노래방은 ‘코노’라 부른다. 한 명 또는 두세 명이 들어가 동전을 기계에 넣고 노래를 부를 수 있는데, 시간 단위로 비용을 매기지 않고 곡수에 따라 계산한다. 

혼코노는 혼자 코인 노래방에 간다라는 청소년이 쓰는 말이다.

 그리고 요즘에는 ‘혼코노’라는 말이 있다. 일본말은 아니고, 청소년들이 흔히 쓰는 약자로 ‘혼자 코인 노래방 간다’는 말이다. 중·고등학생들이 밤늦게 학원이 끝나면 코노에 들러 스트레스를 풀고 집으로 가는 새로운 코노 문화가 생긴다. 하지만, 2017년 말부터 코인 노래방 시장도 성장세가 급격히 둔화된다. 시장이 포화 상태가 되고, 학생 수도 더 늘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노래방 산업을 홀로 지탱하고 있던 코노도 더 이상 추락을 막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얘기다. 

마이크 노래방 기기

 그리고 미디어의 발전으로 굳이 노래방에 가지 않더라도 노래방 기능을 컴퓨터나 아이폰, 또는 간단한 마이크 형식의 기계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코비드 19로 노래방 출입도 여러 규제가 있다 보니 아마 몇 년 있으면 노래방 문화는 또 다른 형식으로 진화할 것 같다. 어제 꺼나, 그래도 노래방 기기는 위대한 발명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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