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어느 멋진 날
이번 주 내내 아내와 오크리지 트레일(Oakridge Trail)을 걸었다. 이제 몇 주 있으면 이 아름다운 계절이 지나가 버릴 것 같아, 눈에 담으려 한다. 세월을 탈 나이는 아니지만, 이렇듯 아쉬운 가을이 없었고 시간의 빠름을 느껴 본 적이 없다. 어느 시인이 “누구나 '봄은 왔다’라고 하지만, 가을은 그리 말하지 않아요. 그냥 모두가 ‘가을이 오고 있다’라고...” 했던 구절이 자꾸 맴돈다. 건강히 걸을 수 있어 감사한 가을이다.
예년 같으면 아무리 문화 행사가 귀한 토론토에서도 10월이 되면 다양한 공연들이 주말마다 펼쳐져 캘린더에 적어 놓았다가 찾아가고는 했는데, 올해는 그마저의 기쁨도 누릴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코비드 19 때문에 가을 정서도 메말라 가고 있다.
10월이 되면 음악회에 빠지 않는 노래가 있다. 바리톤 김동규의 대표곡이 되다시피 한 ‘10월 어느 멋진 날에’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은 원래 노르웨이 출신 뉴에이지 그룹 ‘시크릿 가든(Secret Garden)’이 편곡한 ‘봄의 소야곡(Serenade to spring)’에 한혜경이 노랫말을 붙이고 김동규가 부른 곡이다.
며칠 동안 고민하던 중 우연히 시크릿 가든의 ‘봄의 소야곡’을 듣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고 그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하지만, 원래 이 곡은 연주곡이어서 가사가 없고 멜로디뿐이었다. 그래서 기획사에 부탁해 가사를 만든다.
작사가 한경혜는 2001년 호주에 있을 때 이 곡을 의뢰받는다. 호주는 한국과 날씨가 반대여서 여름에 서울에서 떠났지만 호주는 초겨울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제목을 ‘봄의 소야곡(Serenade to spring)’과 비슷하게 <5월의 어느 멋진 날에>로 하려 했었다. 호주의 겨울이 가고 봄이 왔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작사를 만들어 가며 4월이나 5월이면 어떻고 10월이면 어떻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당초 제목으로 붙였던 5월보다는 10월이라는 느낌이 가슴에 더 다가왔다. 그래서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로 바꿨다. 고심 끝에 가사를 완성한 후 시드니 조지타운의 어느 PC방에 들어가 메일로 서울의 기획사에 보낸다. 이 노래의 녹음이 10월에 잡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람은 죄가 될 테니까”는 내가 널 만났는데 더 이상 바라면 죄라는 절절함은 젊은 연인 사이가 아니면 용납이 안 될 정도로 굽신 거리는 표현이다.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 걸/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는 세상 사는 이유가 오직 너 때문이라는 거다. 넋 나간 듯 여운이 있는 마무리도 좋다.
하지만, 이 노랫말은 숨은 뜻이 있다. 작사가는 ‘너’는 사랑하는 이가 아닌, 바로 자신의 아들이라고 밝힌다. 한경혜는 김건모의 ‘사랑이 떠나가네’, 신승훈의 ‘엄마야’, 임상아의 ‘뮤지컬’ 등 수많은 히트곡의 가사를 쓴 유명 작사가다. 동시에 단편소설 <비행>으로 한국소설 신인상을 받았고, 싱글맘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엄마에겐 남자가 필요해>를 펴낸 작가이기도 하다.
한경혜는 김종서의 ‘아름다운 구속’이 크게 히트하며 작사가로 널리 알려진다. 그 노랫말처럼 그녀는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1998년 결혼을 했고, 이듬해에 아들도 낳았다. 하지만 그의 결혼 생활은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고 한다. 갈등을 거듭하던 끝에 아이가 태어난 지 1년 만에 이혼을 결정한 것이다. “남편은 자신이 한 달간 꼬박 일하고 야근까지 한 뒤 받는 월급이 제가 하룻밤 가사 써서 버는 돈에 비해 턱없이 적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했어요. 그 사실에 스트레스를 받다 사업가로 나섰는데 하필 IMF 외환위기가 찾아오면서 그 또한 잘되지 않았죠.”라고 여성동아에서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