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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현수 Sep 29. 2021

‘택’도 없는 친구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초등학교 시절, 대통령은 인자하고 품위 있고 우아한 사람이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주위 또래에게 ‘커서 무엇이 되고 싶냐?’고 물어보면 당돌하게도 ‘대통령이 되겠다’는 친구들이 꽤 있었다. 그렇다고 아주 ‘택’도 없는 친구가 대통령을 하겠다고 하지는 않았다. 대개 학급에서 공부도 잘하고 반장도 하고 운동, 노래도 잘하는 친구들이었다. 개중에는 부모 잘 만나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배우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그들의 꿈도 아티스트가 아닌 대통령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대통령’의 인기가 옛 같지는 않은 듯하다.


요즘은 리더십을 키우기 위해 초등학생에게 노래나 악기를 가르친다고 한다. 이제까지 리더십 하면 강렬한 카리스마와 유창하게 말하는 것을 꼽았지만,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감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노래도 함께 부르는 소통하는 리더십 말이다. 


감성을 파고드는 음악은 대중의 마음을 읽어내는 새로운 키워드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선거 유세장에서 멋들어지게 색소폰을 불어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였고, 테러와의 전쟁을 이끈 강철 여인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 국무장관도 뛰어난 피아노 연주 실력으로 외교를 성공적으로 이끌기도 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해외 지도자 중에도 음악을 좋아하고 국민 앞에서 스스럼없이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꽤 있다. 물론 노래를 잘 부른다고 해서 대중음악에 대한 식견이 높다고 볼 수는 없지만, 잠시만이라도 권위를 내려놓고 민낯으로 국민들과 교감을 나누는 모습은 조화롭게 보인다.


몇 년 전 한 언론에서 음악으로 대중과 소통 잘하는 대통령을 뽑았는데 1위에 오바마(Barack Hussein Obama) 전 대통령이 뽑혔다. 오바마와 흑인 아티스트와의 끈끈한 연대야 그의 선거 유세 캠페인에서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는 백악관에 입성하더니 팝 레전드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미국에서는 뮤지션이 자유롭게 정치적 견해를 피력하기도 하고, 특정 후보의 선거 유세장에 참석해지지 공연을 하는 사례가 빈번하기 때문에 정치인과 뮤지션의 만남이 어색하지 않다. 게다가 오바마의 정치적 고향은 블루스의 메카인 시카고다.


2013년에는 흑인 역사의 달(Black History Month)을 맞아 비비 킹, 믹 재거, 제프 벡 등 블루스 거장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열린 퍼포먼스를 열었다. 말 그대로 올스타 밴드가 총동원된 가운데 오바마 대통령이 이벤트의 완성을 보탰다. 흥이 정점에 다다르자 버디 가이(Buddy Guy)는 오바마가 아폴로 시어터에서 알 그린의 <Let's stay together>를 부른 사실을 지적하며 <Sweet home Chicago>를 불러줄 것을 요청했고 대통령은 쑥스러운 기색을 보였지만 곧장 능숙하게 노래를 불러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품위 있으면서도 문화를 자연스럽게 즐길 줄 아는 오바마의 매력을 한껏 보인 이벤트다. 그래서인지 오바마는 흑인 최초 대통령의 재임기간을 4년 더 연장하는 데도 성공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취임 후, 블루스 거장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열린 퍼포먼스를 열었다. 음악으로 소통하는 리더의 모습은 국민을 편안하게 한다.

2위는 캐나다의 스티븐 하퍼(Stephen Joseph Harper) 전 총리였다하퍼는 피아노도 잘 치고 노래도 잘 불렀다첼리스트 요요마와 깜짝 협연을 하기도 했고캐나다를 방문한 브라이언 아담스(Bryan Adams)와 즉석 합동 공연을 벌이기도 했다비틀스와 에이씨디씨(AC/DC)를 좋아하는 총리는 “음악 연주가 가족의 평안을 가져 다 주는 길이라는 음악관을 가지고 있을 정도다하지만, 그의 음악적 가치관이 정책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는 임기 중인 2008년에 예술 문화 지원금 중 4500만 캐나다 달러(약 50억 원)를 삭감해 아티스트들의 맹비난을 받은 사례가 있다. 야당에서 하퍼 총리의 연주를 ‘정치쇼’라고 조롱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3위는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이다. 1991년 8월 의회 의사당 앞에 놓인 탱크 위에 올라가 보수파 공산주의자의 쿠데타를 규탄할 때의 모습은 20세기 세계사에서 손에 꼽히는 명장면으로 기억된다. 그 당시만 해도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 지도자로 역사에 남을 것처럼 보였지만 의외로 집권기에는 유머가 가득한 인간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록 콘서트 장에서 권위는 떨쳐 버리고 막 춤으로 폭소를 자아내는 모습은 공연장에서나 탱크 위에서나 그가 확실한 ‘무대 체질’ 임을 깨닫게 해 준다. 보드카를 시원하게 원 샷 때리고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모습은 마치 동네잔치에서 물 만난 옆집 아저씨 같았다. 옐친의 건전한 음주 가무에 러시아 국민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많은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캐나다의 스티븐 하퍼(Stephen Joseph Harper) 전 총리는 피아노도 잘 치고 노래도 잘 불렀다. 첼리스트 요요마와 깜짝 협연을 하기도 했다.

지도자들의 음악 친화적인 활동은 음악을 좋아하는 국민들에게 친근감을 준다. 부시 전 대통령은 컨트리 음악을 즐겼다고 하고 카터는 밥 딜런을 좋아했다. 레이건은 프랭크 시나트라의 딸인 낸시(Nancy)를 좋아했고, 케네디는 영국 민요 <그린 슬리브스(Greensleeve)>를 즐겨 들었고 트루먼과 닉슨은 피아노를 수준급으로 잘 쳤다. 


내년 고국에서 있을 대통령 선거 예비 후보들의 인생 곡이 알려졌다. 여당 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혜은이의 <제3 한강교>이고, 이낙연 민주당 전 대표는 양희은의 <한계령>이다. 야당 후보인 윤석렬 전 검찰총장은 송창식의 <우리는>이고 홍준표 국회의원은 남상규의 <추풍령>을 골랐다.


정치적 소통은 물론 사회 문화적 소통을 위해서라도 대통령 후보들의 음악적 취향을 밝히는 것은 좋아 보인다. 내년에는 ‘인자하고 품위 있고 우아한 대통령’이 좋아하는 대중 가수들과 어울려 함께 노래하고 소통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어린이들의 꿈이 다시, ‘대통령’이 되는 시대가 돌아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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