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현수 Oct 09. 2021

대선 예비 후보들의 애창곡


 “잘 고른 노래 한 곡, 백 마디 연설보다 낫다”는 말이 있는데 애창곡은 즐겨 부르는 노래 정도로 알고 있지만, 자신의 아련한 과거나 추억이 노래에 녹아 있기에 그 의미가 크다. 또한 그가 살아온 인생과 앞으로 어떻게 살겠다는 의지도 숨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재미 삼아 대통령 선거 예비 후보들의 애창곡을 살펴본다.


 국민의힘의 대선 후보는 윤석열과 홍준표로 좁혀지는 것 같다. 윤석열 후보는 노래 실력이 수준급으로 알려져 있다. 윤 전 검찰총장의 서울대 법대 79학번 동기들의 얘기를 담은 <구수한 윤석열>에는 윤 전 총장의 대학 시절 별명이 ‘윤라시도 석밍열’이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유명 성악가 ‘플라시도 도밍고’에 비할 정도로 노래를 잘한다는 의미다. 윤석열 후보의 애창곡은 송창식의 <우리는>이다. 이 노래는 1983년에 송창식이 작사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가사는 아내인 한성숙이 지었다. 둘은 서울 예술고등학교 동창으로 송창식은 성악과, 한성숙은 미술과를 다녔다. 


"우리는/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도 찾을 수 있는/ 우리는 아주 작은 몸짓 하나라도 느낄 수 있는/ 우리는 우리는 소리 없는 침묵으로도 말할 수 있는/ 우리는 마주치는 눈빛 하나로 모두 알 수 있는/ 우리는 우리는 연인"


'우리'라는 말은 우리 엄마, 우리 아빠, 우리 집, 우리 동네, 우리 회사처럼 여러 사람이나 무리를 가리킨다. 즉 말하는 사람이 자기를 포함하여 자기편의 여러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의 준말은 ‘울’로 쓰는데, ‘울’은 ‘얼’과 함께 하나의 민족을 이루는 핵심이 된다. 이처럼 ‘우리’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 민족이나 그 사회를 하나로 뭉치게 하는 뜻을 가지기도 한다.

 국민에게 ‘윤석열’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만든 것은 2013년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였다. 그는 위 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체포 영장 청구를 강행, 정직 1개월의 처분을 받는다. 그해 10월 국정 감사장에서 “검사장의 외압이 있었고 사건을 더 끌고 가기 어렵다고 생각했다”고 폭로한다. 이때 “나는 조직에 충성하지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다. 조직은 특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협력하는 인간의 집단을 말한다. 검찰 조직에 대한 애착과 그의 리더십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제 그는 검찰뿐만이 아니라 국민 모두를 ‘우리’로 만들어야 하는 숙제가 남아 있는 듯하다.


홍준표 후보는 SBS 드라마 ‘모래시계’에 등장하는 검사 박상원의 실제 모델로 알려져 있다. 검사 홍준표가 맡았던 슬롯머신 범죄 수사가 드라마 ‘모래시계’로 제작되면서 이름을 알리게 되지만, 정작 작가인 송지나는 “당시 집필할 때 취재차 만났던 여러 검사 중 한 분일뿐”이라고 밝힌다. 어쨌든 그 인기를 바탕으로 국회의원이 된 후, 경남도지사와 제12대 한나라당 대표를 역임했다. 홍준표 후보의 애창곡은 <추풍령>이다. 


“구름도 자고 가는 바람도 쉬어가는 / 추풍령 굽이마다 한 많은 사연 / 흘러간 그 세월을 뒤 돌아보는 / 주름진 그 얼굴에 이슬이 맺혀 / 그 모습 흐렸구나 추풍령 고개”


 추풍령은 1960년대에 가수 남상규가 불러 크게 히트 한 가요이다. 멜로디뿐만 아니라 가사도 좋아서 남상규뿐만 아니라 배호, 나훈아, 이미자 등이 불렀다. 전쟁을 겪은 세대들에게는 그 인기만큼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추풍령은 '추(秋)'와 '풍(風)' 자가 만나면서 묘한 의미가 되기도 한다. 원래 추풍은 일 년 내내 시원한 가을바람이 불어 추풍(秋風)이라 불렸다고 하는데, 또 다른 설에 의하면 남쪽 영남의 선비들이 이 고개를 넘어가면 추풍낙엽(秋風落葉)처럼 과거 시험에 떨어져 다른 고갯길로 돌아갔다는 옛말도 전해온다. 또한 예부터 추풍령은 백두대간 소백산맥 중에서 가장 낮은 고갯길이어서 영남의 관문으로 중요시되었던 곳이라 한다.

 지난번 19대 대선에서는 영남의 대표 수장이던 홍준표 도지사가 ‘추풍령’을 넘어 대통령에 도전했지만, 문재인에 밀려 낙선했다. 2020년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공천 갈등으로 대구에서 무소속 출마를 해 당선된 후, 어렵게 다시 복당해 대선 예비 후보가 됐다. ‘추풍령’은 예나 지금이나 넘기 어려운 고개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후보와 이낙연 후보가 경쟁하고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이른바 ‘공돌이’ 시절을 회상하며 혜은이의 <제3한강교>를 애창곡으로 뽑았다. 이 지사는 “열여섯 살 공장 야유회 때 볶은 돼지고기를 처음 먹어봤다”면서 “그땐 어려웠지만 희망도 꿈도 많았다”며 ‘희망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정치적 의미도 밝힌다. 1979년 발표된 혜은이의 <제3한강교>는 길옥윤이 작사 작곡을 했다. 


강물은 흘러갑니다 제3한강교 밑을/ 당신과 나의 꿈을 싣고서 마음을 싣고서/ 젊음은 피어나는 꽃처럼 이 밤을 맴돌다가/ 새처럼 바람처럼 물처럼 흘러만 갑니다”


이 노래는 당시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디스코 열풍의 트렌드에 맞춘 멜로디로 널리 사랑을 받았다. <제3한강교>는 노래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한남대교를 말한다. 한남대교는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는 경부고속도로 진입 역할을 했고 처음으로 강북과 강남을 연결한 다리이기도 하다. 이재명은 변호사 출신 정치인으로 사회 운동가로 활동하다가 성남 시장을 거쳐 경기도지사가 됐다. 이번 대선 주요 공약 중 하나가 기본 주택 공급 및 부동산 안정화 실현이 듯, ‘개발’ 정책에는 다른 후보보다 ‘전문’이라고 스스로 말하고 있다.   

제3한강교는 지금 강남권 개발이 시작되는 중심 다리이다. 강남은 1980년대 이후 서울이 세계적인 도시로 발전하는 발판이 되었지만, 반면에 아파트 투기, 사교육 열풍, 화려한 생활상 등 정책 특혜 따른 강북, 강남 간 불균등 발전이라는 문제를 낳게 되었다. 그동안 역대 정부가 강남 지역의 집값을 잡겠다고 강도 높은 부동산 대책을 쏟아냈으나 ‘강남 불패’가 더욱 견고해지고 있다.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강남’을 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제3한강교’를 잘 건너야 한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애창곡은 양희은의 <한계령>이다. <한계령>은 하덕규가 작곡하고 가사는 정덕수의 시에서 발췌한 것이다. 단순한 음계와 길지 않은 가사지만, 영혼이 담긴 듯한 노래다. 


저 산은 내게 우지 마라 우지 마라 하고/ 달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한계령(寒溪嶺)은 강원도 인제군 북면과 양양군 서면 사이에 있는 고개다. '한계'는 일반적으로 쓰이는 '한계(限界)'가 아니라 한자로 '차가운 시내'라는 뜻이다. 설악산 국립공원을 지나가기 때문에 경치가 아름답다. 특히 단풍구경을 하면서 지나가기에 좋은데, 미시령 터널이 뚫리고 나서는 통행량이 줄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용한다. 전남도지사를 거쳐 국무총리까지 역임한 이낙연 후보는 당 내에서 가장 강력한 대권 주자로 평가받았다. 현재는 이재명 후보보다는 낮은 지지율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 그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궁금해진다. ‘저 산은 내게 우지 마라, 우지 마라’라는 노래 가사가 자꾸 맴돈다.

매거진의 이전글 ‘택’도 없는 친구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