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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현수 Feb 17. 2022

‘이기는 곳’을 넘나드는 풍운아들.

예로부터 사람을 판단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한 것이 관상이다. 관상은 사람의 얼굴을 보고 그의 운명을 판단하는데, 얼굴뿐만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모든 형태가 관상이라고 한다.


“각하, 한 20년은 가겠습니다. 소신껏 하십시오.” 그 얘기를 들은 박정희 의장은 빙그레 미소만 지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그다음엔 어떻냐?”라고 물었다. 백운학(1921~1979)은 그 질문엔 입을 다물었다. 자리가 파한 뒤, 나가는 길에 백운학이 내 귀에 대고 속삭이듯 이야기했다. “이상한 괘인데요, 그 무렵에 돌아가실 것 같아요…”<중앙일보 창간 50년 기획, 김종필 증언록 ‘소이부답’ 중에서>


김종필이 죽기 전에 한 증언이다. 영리한 그가 박정희의 관상을 보면서 자기 관상을 보지 않았겠나? 김종필(JP)은 자신의 운명이 ‘대통령은 힘들다’라는 것을 벌써부터 알았을지 싶다. 박정희는 JP가 가까이 있으면 거북해했고, 없으면 아쉬워했다. 2인자의 정치는 파란과 견제, 고뇌와 보람이 섞여 있었다. JP는 박정희의 삼선 개헌에 반대했다가 박정희의 눈 밖에 난다. JP의 홀로서기는 박정희가 죽고 나서다. YS(김영삼), DJ(김대중)와 경쟁하며 ‘3김 정치’의 꽃을 피웠다. 하지만, YS, DJ와 달리 그는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2인자의 비련이나 노회함, 기회주의자로 비판받는다. 김종필의 마지막 드라마는 DJP 공동 정권이다. 호남과 충청이 지역 연합을 했다. 1997년 대선에서 캐스팅 보트를 쥔 JP는 이회창 대신 김대중의 손을 잡았다. 보수 세력에서 JP는 변절자라 욕했다. 


청구동 자택을 심야에 방문해 도와 달라는 DJ에게 JP는 이렇게 말했다. “호남의 한을 풀어줘야지요. 박 대통령이 김대중에게 진 빚 내가 갚아 드리겠다.” 당시 대선에서 김대중과 이회창의 격차는 ‘충정권의 표’, 39만 표였다. 70세의 JP가 연합 정치로 진보-민주의 시대를 열었다. “우리가 언젠가 남북통일을 해야 하는데 동서로 갈라져선 아무 일도 못한다. 호남이 정권을 잡게 해 수십 년 묵은 한을 풀어줘야 한다”고 주위를 설득했다. 그는 이를 해원(解寃)이라 표현했다. 원통할 원(寃) 자다. 그때 김대중 대통령 이후, 호남에서는 아직 대통령이 안 나오고 있다.


김종필, 그의 관상은 이마가 넓고 반듯해 관운이 좋은 상이라 한다. “윗사람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고 도움을 받아 자기 위치를 유지할 줄 알았다. 귀가 크고 위로 곧게 뻗은 사람은 재치와 지혜가 있고 대담하다. 귀가 크고 단단하면 오장육부가 튼튼하고 기운이 넘쳐 일도 잘 풀리고 복과 행운이 따른다. 코를 감싸고 있는 관골이 발달해 있으면 주변에 도움 주는 사람과 따르는 삶이 많고 말년까지 복운이 따른다.”고 한 운명 철학가가 말한다. 그는 92세까지 풍운아로 살며 ‘정치는 허업이다’라는 말을 하며 세상을 떠났다. 


김종필만큼의 풍운아는 박지원이라 생각된다. 나는 1999년에 그가 문화관광부 장관 시절에 김성일(MBC 무용단장)의 부친상 상가에서 보았다. 김성일의 누나는 연극배우 김성녀이고 매형은 극단 미추 손진택 대표였다. 당시 나는 유가족들과 문상 중이었는데, 그의 비서가 “박지원 장관이십니다”며 소개를 하며 분향소로 들어왔다. 생각보다 자그마한 키에 공무원증을 달고 고인에게 절을 하는 모습이 좀 특이했다. 그때만 해도 혹시 자기를 못 알아볼까 봐, 공무원증을 달았던 것이라 짐작이 된다. 그 뒤, 박지원은 4선의 국회의원을 하고, DJ

의 비서실장으로 2인자 정치도 한다.


'정치 9단' 박지원 국정원장은 2021년 국회의원에 낙선한 뒤, 여러 방송 매체를 오가며 시사평론가로 활동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낸다. 그러더니 나이 80세에 문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당당하게 국정원장에 취임한다. 

박지원은 DJ의 비서실장, 문화관광부 장관, 4선의 국회의원, 국정원장 등을 하는 관운 좋은 풍운아다.

풍수 지리학자 백재권이 밝힌 박지원의 관상이다. “그는 여우 상(相)이다. 일반 여우가 아니고 100년 묵은 여우다. 여우는 ‘전설의 고향’ 이야기에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동물이다. 여우가 100년 이상 살면 사람으로 둔갑하는 재주가 생긴다는 속설이 있다. 여우 관상은 머리 회전이 빠르고 임기응변이 대단하다. 전략가가 많고 잔머리도 잘 쓴다. 방금 전까지 싸우던 적과도 내일 손잡을 수 있는 관상이 여우다. 주변 사람들은 황당하겠지만 사안을 전략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필요하거나 이득이 되면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여우 관상을 지닌 사람이 정치에 입문하면 다선의원이 되고 중진으로 성장한다. 상대의 심중을 헤아리는 재주도 있어 주군과 동료들의 눈치를 잘 파악하기에 권력자의 측근으로 살고 본인도 권한을 얻을 수 있다. 그만큼 여우 관상은 흐름의 맥을 짚을 줄도 알며 다재다능하다.


여우는 거주할 굴을 팔 때 출입구를 여러 개 만든다. 만약에 있을지도 모를 적의 침략에 대비하고 도망가기 위함이다. 항상 경우의 수를 따져 제2, 제3의 상황을 계산하고 퇴로를 만들어 놓는 철저함도 있다. 박지원은 민주당 탈당 후, 문대통령과 사이가 멀어진 후에도 정책에서만큼은 등 돌림이 없는 행동을 취했다. 


또 다른 풍운아, 김종인은 책사로 불린다. 그를 당나라 출신 ‘풍도(馮道)’에 비유하곤 한다. 당나라가 망하고 송나라가 들어서기 전인 907년부터 70여 년간은 중국 역사상 대혼란기였다. 이 시대에 5개 왕조를 바꿔가며 10명의 황제를 섬긴다. 재상을 10번 이상이나 지냈다. 무법과 혼란의 시기에 부귀영화와 천수까지 누린 인물이 풍도다.


김종인은 1977년 관계에 입문해 장관과 청와대 수석, 국회의원도 비례대표로만 다섯 번이나 했다. 그는 여야를 넘나들며 정치를 했다. 자신을 인정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서 역할을 한다. 박근혜와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도 기여했다. 물론 ‘팽’당했다. 이번에는 윤석열 후보를 돕다가 30여 일 만에 물러 났다. 변절자, 배신자 소리를 들었지만, 능력을 인정받아 여야를 넘나들었다. 김종인의 모습에서 재상 ‘풍도’를 보게 된다. 유학자들은 풍도를 ‘희대의 간신’이라 비난했지만, ‘청렴하고 공정하게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는 좋은 평가도 받고 있다.

김종인은 보건사회부 장관, 5선의 국회의원(비례대표), 청와대 경제 수석 등 여야를 넘나들며 자신을 인정하는 곳이면 어디든 가서 역할을 한 책사이다.

백재권 교수가 본 김종인의 관상이다. 그는 야생 호랑이다. 평범한 호랑이가 아니다. 위엄이 있고 배짱도 두둑하다. 간혹 “나를 그 따위로 취급해” 하고 쳐다보면 상대는 오싹한다. 스케일도 커 중대하거나 큰 업무에만 관심이 간다. 작고 시시한 건 쳐다보지 않는다. 배고파도 토끼를 보고 몸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절대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갈 인물이다. 반면에 포기도 빠르다. 김종인은 어떤 평가를 받을까? 화려하게 살았어도 국민의 평가가 박하다면 잘 산 인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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