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짝’ 가수 진시몬
‘뽕짝’이라는 말은 1960~70년대에 ‘트로트’를 일컫는 비속어가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은 것인데, 기본적으로 2박자와 4박자 패턴인 '쿵/짝(강/약)' 리듬이 당시의 열악한 녹음 시설과 재생기기 때문에 사람들 귀에는 '뽕짝'으로 들렸던 것이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뽕짝’은 젊은이들에게 그리 인기가 없고 부모 세대들이나 좋아했다. 노래방 기기가 없었기에 노래를 부를 때면 젓가락을 두드리기 편한 구슬프고 처량한 템포가 인기 있었고, 삶에 지친 인생살이에 어울리는 단조로운 멜로디가 사랑받았다. 때문에 처음 듣는 노래도 어디선가 들었던 “그 노래가, 그 노래”인 듯 한 비난을 받기도 한다.
이미자, 나훈아, 남진, 하춘화, 설운도, 태진아, 주현미, 송대관, 현철 등의 ‘뽕짝’ 가수가 있었지만, 젊은이들에게 뽕짝이 사랑받게 된 건, 역시 장윤정이라는 가수가 등장하면서 다. 장윤정은 <1999 강변가요제> 출신으로 데뷔했으나, 1994년 트로트로 전향하기 까지, 긴 무명시절을 겪는다. 당시 젊은 가수가 트로트를 하는 것에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으나, 단숨에 트로트 4대 천황(태진아, 송대관, 설운도, 현철)을 제치고 엄청난 인기를 얻는다. 특히 그녀의 <어머나!>는 음악 프로그램에서 1위,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 1위 등을 휩쓸며 모든 연령에게 사랑받는다. 대학생 가수가 불렀기 때문에 2030 세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고, 그 해 연말 가요 시상식의 트로트 부문은 사실상 장윤정의 독무대였다. 하지만, 정작 장윤정은 <어머나!>의 신곡을 받고 3일 동안 엉엉 울었단다. ‘댄스 팝’을 부르던 그녀에게 ‘뽕짝’을 부르라고 하니…
2016년 토론토 공연, 수많은 팬들이 함께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3cHum5HJiY
장윤정이 데뷔하기 10년 전, 남이섬에서 열린 1989 강변가요제에 진시몬이라는 가수가 <캠퍼스에 외로움>으로 입상한다. 그 해, 록 발라드 곡을 모아 음반을 내지만, 별 호응을 못 받는다. 1996년까지 고된 생활을 하다가 선배 가수 김범룡(바람바람바람)의 도움으로 ‘세미 뽕짝’ <애수>를 발표하며 30만 장의 앨범을 팔며 히트를 친다. ‘발라드’에서 ‘뽕짝’으로 장르를 옮겨 큰 인기를 얻은 진시몬은 그 후, '애원', '도라도라', '내 여자'까지 앨범마다 히트하면서 노래방 애창곡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 하지만, IMF 이후 음악방송은 아이돌 가수들에게 밀려, 30대 중반의 ‘뽕짝’ 가수가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그가 속한 매니지먼트 회사마저 문을 닫는다. 40대 초에는 성대 결전 수술을 하면서 가수의 길을 접으려고 까지 하였으나, 오랜 기간 동안 그를 따라 준 팬들과 자신만의 ‘뽕짝’ 철학으로 꾸준히 외길을 걷는다. 그 사이, 좋아하는 음악 생활을 하기 위해 외식 사업을 시작했다. 제주 출신인 그는 제주 토박이 음식점 ‘제주바당’을 비롯해 양식당 등을 운영하며 나름 성공을 한다. 작년에 인수한 이태리 레스토랑 까슈는 인천 구월동에서는 알아주는 음식점이다.
토론토에 온 진시몬 2016년 4월 29일(금) 새벽 2시에 진시몬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보내주신 항공권 날짜가 11일인데, 5월 13일이 ‘여성의 밤’ 공연 아닌가요?” … 뭔가? 일이 뒤 틀린 거다. … <중략> … “그러면 12일로 항공권을 바꿔 줄 수 없나요? 제가 10일 밤에 일본 나고야에서 공연이 있어서요. 미처 확인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지금 새벽 2시고, 협회와 협의해야 할 일이어서…”라는 문자를 보냈지만, 잠이 올 리 없다. 우여곡절 끝에 스케줄이 조정됐고, 통화한 김에 몇 가지 물었다.
멋지고 세련된 매너의 트로트 가수 진시몬 진시몬이 밝힌 ‘뽕짝’ 철학은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음악을 한다”라며 “이 노래로 떠야지 하고 곡을 쓰는 게 아니라, 내게 벌어진 일, 내 주변에서 벌어진 일, 내 눈으로 본 일을 토대로 솔직한 곡을 쓰는 것”이라며 “거기에서 오는 나만이 가진 3박자가 있기 때문에 내 가사와 곡에는 일관성이 있다”라고 자신했다. “어려운 시간 속에서도 1년에 1곡 정도는 꼭 신곡을 냈다”는 말에 진지함을 느꼈다. 보통의 ‘뽕짝’ 가수와는 다른 정체성이랄까? 그는 “대중에게 잘 보여 주려고 노력해서 되는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잘해서 잘 보여 줘야, 대중이 의미 있는 가수로 평가해 주는 것 같다. 쫓아가다 보면 자신의 색깔이 없어지지만, 내가 내 것을 만들어 가다 보면 팬들은 늘 기다려 준다.”라고 말한다. 라디오 DJ를 오래 해서인지 조리가 있다. 아니면 법대 출신이라서…
“말은 안 하지만, 장윤정만큼 진시몬도 뽕짝을 처음 부르면서 여러 갈등이 많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는데, 내 짐작이 틀린 것 같다. 토론토에 와서 4박 5일을 같이 했는데, 여태 만났던 가수 가운데 가장 멋지고 세련된 매너의 트로트 가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