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디 인생 너훈아

가수 너훈아, 김갑순으로 돌아가다.

by 황현수


김갑순. 김갑순은 모창 가수 너훈아의 본명이다. 그가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2009년 가을, 캐나다 에드먼턴에서다. 그곳 행사에 너훈아를 3박 4일의 일정으로 초청했다. 공항에서 보자마자 “황 국장님, 이번에 못 올 뻔했습니다. 오기 전에 병원에서 1주일 입원했었어요.”하며 “갑자기 몸살감기에 걸려 죽는 줄 알았다.”라고 한다. 가슴 철렁한 얘기였지만, 애써 태연 한 척했다. 그곳 교민 행사에 연예인이 온 것이 처음인 중요한 행사였는데, 만약 그가 못 왔다면 행사를 기획한 나로서는 큰 낭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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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공연을 잘 마치고 함께 온 연예인과 함께 관광 일정이 있었는데, 너훈아는 이틀 동안 방 안에서 꼼짝을 못 한다. “죄송합니다. 저는 몸이 피곤해서 잠을 좀 자겠습니다.” 떠나기 전날 저녁 식사를 하며 그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몸이 망가졌어, 술도 안 하잖아?”, “제 집사람과 아들이 중국에 유학을 갔어요. 저도 기러기 아빠입니다. “하며 웃는다. “혼자 있다 보니 자연스레 식사도 거르고, 주로 밤에 업소에서 일하다 보니 새벽에 들어가고, 낮에는 행사 다니고, 또 업소 가고...”. 다른 가수처럼 매니저가 있지 않아, 퀵서비스 오토바이를 불러 타고 다니지만, 그래도 일 없었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3년 전, 간암 3기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이었다고 하니, 그때 그는 이미 간암과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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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초에 <OKBA여성의 밤> 출연 섭외를 하기 위해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훈아 씨! 이번 토론토 공연, 아주 중요합니다. 요즘 바쁘실 텐데 공연 스케줄 확실히 해주셔야 합니다.” “아! 걱정 마이소. 지가 벌써 가수 생활 20년입니데이. 사실 지가 좀 바쁘긴 바쁘지만도 토론토는 처음 아임니껴? 어제도 CF 한편 찍었음 데이!” 하며 너스레를 떤다. 전화를 끊으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너훈아는 몇 달 후, 가수 김세환과 함께 한 <OKBA 여성의 밤> 공연에서 여성 팬들에게 둘러싸여 옷을 찢길 정도의 인기를 받는다. 노래를 부르다 흥이 나서 관객석으로 내려왔는데, 20여 명의 팬들이 노래가 끝날 때까지 에워싸는 바람에 옷을 찢기며 탈출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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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말을 쓰는 너훈아는 충청도 논산이 고향이다. 논산 농고를 졸업하고 고향에서 축산업을 하다 실패하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온다. 그리고 밤무대에서 허드렛일을 하다가 1988년부터 무명 가수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다가 귀인(?)을 만난다. 바로 코미디 계의 대부 김형곤의 눈에 띈 것이다. 김형곤은 김갑순의 진짜 재능을 알아보았다. “자네, 나훈아를 모창해 봐.” 김형곤의 권유로 나훈아를 흉내 내는 모창 가수로 변신하여 1991년에 ‘SBS 나훈아 모창대회’에서 인기상을 수상하며 제법 큰 무대의 출연 섭외가 잦아졌다. 진짜 나훈아를 닮기 위해 노래는 물론 말씨, 얼굴까지 성형을 한다. 평상시의 대화까지도 나훈아의 고향인 부산 사투리를 썼다.


트로트 황제 나훈아는 2008년 초, 기자회견장에서 흥분해서 바지를 벗으려는 해프닝을 한 후 자취를 감추고 사실상 은둔 생활을 한다. 덕분(?)에 김갑순은 그를 대신해 각종 행사 및 공연, CF에도 출연해 형편도 좀 펴졌다. 하지만, 남을 패러디(Parody)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그리 마음 편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이 암을 키운 원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연예인이 아닌 평범한 우리도 누군가를 흉내 내고 살고 있다. 다만, 누구를 흉내 내는지 조차 모르면서 말이다. 그의 부음을 접하면서 마음이 착잡하다. “아들 녀석이 공부를 잘해 너무 좋아요.”는 말이 자꾸 맴돈다.

너훈아 님. 당신이 흉내 낸 웃음 속에 정직한 삶이 숨어 있었음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이제 김갑순으로 돌아가서 마음 편히 잠드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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