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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현수 Jul 07. 2020

홍대 앞에서 좀 놀았죠.

'홍대 문화'를 만든 사람들

홍대 문화’를 만든 사람들 


  ‘홍대’하면 불야성을 이루는 먹자골목, 붐비는 인파, 춤과 인디 밴드 공연, 진하게 남을 의식하지 않고 키스하는 젊은 커플, 프랑스 풍 와인 카페, 개성 있는 머리 스타일 등이 그려진다. 하지만, 1970년대 초 만 하더라도 비가 오면 장화를 신지 않고는 진흙에 신발이 박혀 걷기가 힘들 정도로 개발이 덜 된 후미진 곳이었다. 당시는 미대생들의 작업실과 허름한 대폿집, 당인리 화력발전소에 하루에 두세 번 다니는 기차, 그 길 옆에서 쭈그리고 앉아 텃밭에서 기른 야채를 파는 아줌마들, 미대 입시 학원, 라면과 만두를 파는 분식점 등이 자리했던 곳이다. 

   그런데 요즘은 ‘홍대 앞 문화’가 생길 정도로 모습이 바뀌었다. 그곳에서 20여 년째 카페를 하는 터줏대감의 말로는 “홍대 미대에서 실기 시험이 없어진 후로 이곳이 변했다”라고 푸념을 한다.

“한때는 미대를 가려면 홍대 앞에 있는 입시 학원을 가야만 했을 정도로 미술학원이 많았는데, 미대에서 실기 시험을 보지 않자 학원들이 떠 난 자리에 카페가 들어섰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주변 신촌 근처의 연세대나 이화여대 앞보다 월세가 싸다 보니, 주머니 가벼운 젊은이들을 상대로 한 클럽과 음식점들이 들어 서기 시작했고, 물(?) 좋은 젊은이들과 연예인들이  다닌다는 입소문이 상가 번영을 보탠다.

 기존 건물을 단장하고, 새로운 거리를 조성하면서 과잉 개발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됐는데, 그 안에서  자생적으로 “홍대 앞 문화’가 꽃피우게 된다. ‘홍대 앞’이 ‘홍대 앞’으로 불리게 된 건, 휴대폰 시대가 되면서 “홍대 앞으로 와!” 하는 데서 연유하는데, 사실 ‘홍대 앞’ 문화는 70~80년대에도 있었다.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삶의 질을 높여주는, 자유 분망함이 있는,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을 찾아 모여드는 이미지, 그런 것들이 쌓여 ‘홍대 앞 문화‘의 토양이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이곳 토론토에도 ‘홍대 앞’ 문화를 만든 사람들이 있다. 지금은 다 왕년의 이야기이지만…  “아빠가 말이야, 왕년에 그림 좀 그렸지. 너 태어나기 전인데…  전시회도 하고 그랬지. 한국의 아빠 친구들은 다들 알고 있지.” “…  …” “듣고 있냐?” “ 왜? 그렇게 쳐다만 봐! 안 믿겨?” ‘왕년에 호랑이 안 잡아 본 노인네 없다’고 홍대 출신들이 술 한잔 걸치면 나오는 대화들이다.  그래서 ‘진짜 왕년에 그랬는지?’ 한번 판을 벌렸다. 솔직히 말하면 진짜 고수들도 있지만, 다 ‘왕년에 호랑이 잡았다는’ 분들도 있다.  

   18명의 홍대 출신 동문들이 추억과 꿈으로 만든  작품을 모아 지난 11월에  한국일보 도산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이번 전시회는 회화, 건축, 사진, 설치미술, 공예, 판화, 그래픽 디자인, 컴퓨터 그래픽, 일러스트레이션, 종이조각 등 각 분야의 다양한 작품들을 선 보였다. 출품 작가는 강정이, 고희승, 김윤정, 김주용, 김진희, 김치홍, 김흥수, 김희자, 노성윤, 박일수, 손창균, 여정웅, 오영숙, 이용석, 한숙경, 한호림, 황영자, 황현수이다.  

토론토에 살고 있는 ‘홍대 앞 문화’를 만든 사람들이 바쁜 이민 생활 속에서 모처럼  숨 고르는 여유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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