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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현수 Jun 21. 2020

소피아 로렌의 리즈 시절

안국태 선생을 기리며...

안국태 선생이  <나폴리의 향연>    

  영화 <나폴리의 향연>의 여주인공, 소피아 로렌. 이 영화가 제작될 때  그녀는 24세였다. 1934년 생인 소피아 로렌은 나폴리만의 북부에 있는 작은 마을, 포츠 올 리에서 태어났다. 1949년, 그녀가 15세였을 때 나폴리에서 <바다의 정신>이라는 영화 촬영이 있었다.  연기를 너무나 하고 싶었던 그녀는 감독인 조르쥬 비안키한테 달려가 영화에 출연시켜 달라고 애원한다. 작은 역을 받은 그녀는 카메라 앞에서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대담한 연기를 펼치는데, 그것이 마음에 든 감독은 로마로 가서 테스트를 받을 것을 권한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로마의 큰 촬영소인 치네칫타로 간다. 거기서 우연히  <쿼 바디스>를 촬영하러 온 미국의 마빈 르로이 감독의 눈에 든다. 현장에서 테스트를 받은 그녀는 큰 배역을 맞게 되지만, 안타깝게도 영어를 하지 못해 36시간 동안 어머니와 함께 엑스트라 역만 할 수밖에 없었다.

 경쟁이 심한 영화계에서 어떻게 해서라도 이름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한 어머니는 딸을 미스 로마 콩쿠르에 출전시킨다. 거기서 준 미스 로마로 뽑힌 소피아는 이후 여러 영화에 출연하지만, 큰 배역은 하지 못한다.  그러다 1952년 여름 그녀에게 운이 돌아왔다. 

<나폴리의 향연>이 상영되면서 소피아 로렌은 베를린, 할리우드, 런던, 파리 등 여러 나라의 영화사로부터 출연 제의를 받아  대 스타가 된다.

  조반니 룻카루디 감독의 <해저의 아프리카>의 주역으로 선발된 것이다. 이후 오페라 영화 <아이다>의 주연으로 출연하며 그의 출연료는 10 여배로 뛰어오른다. 그 뒤, <나폴리의 향연>이 상영되면서 그녀의 변화는 정말 한 편의 영화 같다.  베를린, 할리우드, 런던, 파리 등 여러 나라의 영화사로부터 출연 제의를 받는 대 스타가 된 것이다. <나폴리의 향연>은 소피아 로렌이 한국에 알려진 영화이기도 하지만,  이태리 민요인 ‘산타 루치아’ ‘오 솔레미오’ ‘돌아오라 소렌토로’ ‘푸니쿠니 푸니쿨라’ ‘순애’등의 노래가  한국인들에게 널리 불려지게 되는 영화이기도 하다. 2시간 내내 흐르는 감미롭고 애절한 음악이  전쟁 후의 어려웠던 우리네 감성과 맞아떨어진 때문이었다. 

토론토  고 안국태의 칼럼집

 지난 8월에 세상을 떠난 안국태 선생은 소피아 로렌이 주연한 「나폴리의 향연」에 대해 이런 글을 썼다.   그의 칼럼집, ‘친구여 그리웠던 시절이여’의 149페이지다.

 “중학 시절에 있었던 음악 영화 <나폴리의 향연(Carosello Napoletano)>이 떠 오른다. 사라센의 해적에게 유린당한 3백 년 전의 나폴리를 배경으로 서글픈 「미키 렘마」의 노래로 시작해, 흥겹기가 이를 데 없는 「마레키아레」로 끝맺은 이 영화는 세계의 여인들이 즐겨 부르던 이탈리아 가곡을 골고루 수록했다. 그중에서도 카르딜로의 「무정한 마음(Core’ngrato)」은 어느 여인의 마음속에 서도 쉽게 지워질 수 없는 것이었다.


카타리!  카타리! 하염없는 내 맘은 그대 찾아/

이 밤도 남 모르는 외롬에 싸였네/

이 밤 드새면 그대 환영에/

나는 내일도 몸부림치리.


 환희와 행복의 거리가 나폴리에서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다. 범죄와 윤무의 거리에서 가진 그들의 화합이 이 거리를 노스탤지어의 거리로 복원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냥 회한과 종말의 거리로 치닫고 마는가? 이런 넋두리를 하면서도 어렵게 가진 이번 회의를 통해 행여나 우리 세계가 앓고 있는 고질병을 치유하고 환부를 도려 낼 묘안이 마련되기를 아직도 기대해 보는 것이다.”<1994.11.25.> (149p)


  당시의 배경을 알아본다.  1994년 11월 22일, 이탈리아의 남부 도시 나폴리에 전 세계 138개국의 치안, 법무 행정가들이 「국제 범죄 조직에 관한 세계 관료 회의」 참석 차 모인다. 막강 마피아 ‘카모라 갱단’의 본거지인 나폴리, 범죄 세계의 심장부를 ‘국제 범죄 조직 퇴치’의 이벤트 장소로 골라 잡은 것이다. 꼬집어 말해서, 어떻게 하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까를 의논하고자 모인 생쥐들의 한마당이었다. 결국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고, 아직도 국제 범죄 조직들이 판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결과는 신통치 않았던 것 같다.

막강 마피아 ‘카모라 갱단’의 본거지인 나폴리 해변

   ‘범죄 퇴치 국제회의’라는  딱딱한 주제를 영화「나폴리의 향연」을 이야기하며 글 속에 녹여 놨다.  고인의 예술적 감성과 재치, 풍부한 지성에 머리가 숙여진다. 

아직도 안국태 선생의 죽음이 믿어지지 않는다.  “황형, 나 요양원으로 갑니다.” 그때, 6월의 마지막 통화가 이처럼 ‘무정한 마음’이 될 줄은 몰랐다.  그가 중학생 때 수집한 영화 포스터를 평생 간직했듯, 우리도 오래 동안 그를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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