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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현수 Jul 12. 2020

통일, 도대체 할 수 있나?

이민 2세에게 통일은 또 다른 비전의 기회

통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난해, 한 음식점에서 친한 후배를 우연히 만났다. 뒤 자리에 있던 그가 “선배님 잠깐만 이리로 와 보세요?” 하며 부른다. “인사 나누세요. 저랑 같이 일하는 분들인데, 이북 분들이에요. 이분은 고향이 원산이고, 이분은 회령. 아! 그러세요? 저희 어머니도 고향이 함경북도 회령인데…” 갑자기 대화가 편해졌다.  후배가 나를 MBC에서 근무했다고 소개하니 북에서 MBC 프로그램을 보았다고 한다. 술도 한잔 걸친 터라, 격의 없는 이런저런 대화가 이어졌다.  그들은 후배의 회사에서 일하는 북한 이탈 주민들이었다.  

두만강을 건너 연길과 중국 대륙을 거쳐, 캄보디아 국경까지 그 먼길의 숨 막히는 여정을 거쳐 남한에 도착 후, 또다시 이곳 캐나다에 정착하기까지의 시간.  짧은 대화이었지만, 그들의 역경과 고난의 세월을 읽을 수 있었다.

  

 벌써 30여 년 전이다.  MBC방송문화연구소에 근무할 때, 이우승라는 통일 자문 연구원이 있었다.  그가 하는 일은 ‘방송이 통일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것이었는데, 당시의 상황으로 대부분 바깥세상에 알릴 수 없는 내용 들이었다. 1989년 독일이 통일이 되자, 한국도 바로 통일이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MBC도 통일을 대비해야 한다며, 독일 뮌스턴 대학 출신의 젊은 학자를 객원으로 모셔온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통일에 대해 관심이 시들해지자, 그도 소리 없이 회사를 그만두었다.  지금은 한세대 교수로 있는 그는 “통일을 하기 위해서는 방송의 역할이 크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곤 했다. 그의 책에서 옮긴다.

 “동독은 1981년부터 그전까지 금지하던 서독 방송 시청을 허용한다. 당시 동독은 서독의 TV 시청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새콤(SECOM) 방식의 동독 수상기로 펄(PAL) 방식의 서독 TV 방송을 흑백으로 시청할 수 있었고 $100 정도의 보조 장치를 부착하면 컬러 방송도 시청이 가능하였다.  당초 동독 정부는 국민들의 체제 불안 요인이 될 것을 우려 서독 방송 시청을 금지시켰는데 그것이 오히려 가장 큰 불만이 되었다. 따라서 국민 불만을 해소하는 방안으로 이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의 동독 정부는 사회주의 최고의 선진 복지 국가라는 자부심과 사실상 서독 방송 시청을 금지시킬 방법이 없었다. 그러므로 실효성 없는 금지보다 공식적으로 서독 TV 시청을 허용하고 이런 자신감을 국내외에 과시하여 독립적인 자주 국가로서 인정을 받고 싶어 했다.

서독 TV는 동독의 혁명 당시의 각 지역에서의 시위 상황이나  지도부의 동향, 부패한 고위층 호화 생활, 동독 주민들의 통일 열망 등을 생생히 보도 함으로써 통일 열망을 부추긴다.

 하지만, 동독 주민들은 서독 TV를 통해 자유롭게 세계의 모든 소식을 알게 되면서 서독 체제를 동경하며 동독 체제에 불만을 갖게 된다.  동독 주민의 서독 TV 시청이 많아지자 서독 연방 정부는 동독 주민들을 위한 프로그램 제작을 지원하게 되는데, 특히 미국 공보처가 운영하는 리아스( RIAS) 라디오 방송은 동독의 중심인 서 베를린에서 전파를 쏘아 그 영향력이 컸다. 서독 TV는 동독의 혁명 당시의 각 지역에서의 시위 상황이나  지도부의 동향, 부패한 고위층 호화 생활, 동독 주민들의 통일 열망 등을 생생히 보도 함으로써 통일 열망을 부추긴다.”

북한에서 이탈 한 많은 주민들이 남한 TV 프로그램을 보고 탈북을 결심하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상 북한 TV 수상기로는 남한 방송을 볼 수 없다.  전파 방식 자체가 기술적으로 다르기 때문인데, 대개 중국 연변을 통해 밀수입된, 한국 TV 프로그램 비디오를 보았다고 한다.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서도 한국 TV 프로그램을 접 할 수 있을 것이니, 통일의 열망은 더욱 힘을 모을 것 같다.

  언론에 따르면 2020년 3월 말 현재 한국에 3만 3,000여 명의 북한 이탈 주민이 있고, 토론토에도 300여 명의 북한 이탈 주민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배려와 지원이 턱없을 뿐만 아니라 인식도 썩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북한 정권을 찬양하는 이들은 탈북자를 배신자라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북한 정권을 혐오하는 이들은 탈북자들에게 같은 감정을 갖는 경우도 있다. 

    주위에서도 이제 쉽게 그들의 동향을 들을 수 있고 자연스레 공동의 관심사가 되기도 한다.  독일의 경우 철조망을 넘은 이주자들의 성공적인 정착이 독일의 통일을 앞당기는 계기가 되었음을 보여줬듯이, 이곳의 북한 이탈 주민들에 대한 따뜻한 눈길과 배려가 필요할 것 같다. 


 캐나다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통일이 뭐 그리 주요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남북통일이 우리 2세들의 미래에 또 다른 ‘비전의 세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돌아가는 남북 정세를 보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통일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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